제 5 화
태식이 돌보는 아이는 ‘진석’이라는 아이였다. 진석이는 7살 때부터 근육병을 앓기 시작했다고 했다. 처음엔 걸으면서 자꾸 넘어져 엄마로부터 야단을 맞기도 했다는 진석이는 차츰 넘어지는 횟수가 잦아지자 이상하게 여긴 어머니가 진석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 진료를 받고 난 뒤 근육병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17살, 여느 아이 같으면 고등학교 2학년쯤 되었을 진석이는 그 후 10여년을 누워서 지내야 했지만 그래도 성격은 매우 밝고 장난기 어린 아이였다.
처음 3년간은 카톨릭 계통의 보호소에 있었다는 진석이는 그곳에 있었던 3년간이 지옥 같았다고 했다. 처음 진석이를 만났을 때 태식은 진석이에게 물었었다.
“왜? 그곳은 종교계통이라 아무래도 다른 곳 보다 시설도 좋고 잘 해 주었을 것인데 뭐가 그리 지옥 같았어?”
태식의 질문에 진석이는 그곳의 시설은 다른 곳보다 훨씬 좋았는지 모르지만 밤마다 겪어야 했던 고통이 문제였다고 했다. 그것은 근육병환자들이 공통적으로 겪어야 했던 괴로움이기도 했다. 자신의 의지대로 손가락하나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근육병환자들은 신경계통은 보통사람과 같이 그대로 제 기능을 하고 있는 터라 모기에 물려 가려운 부분이나 고통스러운 부분이 생기면 긁어주거나 만져주어야 함에도 제 스스로 긁거나 만질 수 없었다. 그러기에 돌보는 이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함에도 카톨릭 계통이었던 그 보호소에서는 취침에서 기상시간 까지 1인당 3회 이상을 부르지 못하도록 규정을 해 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3회 이상을 다 써버린 아이들은 고통스러운 부분이나 불편한 부분이 생겨도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고 그 어려움을 홀로 감내해야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곳으로 온 후로는 자원봉사자들이 매일같이 찾아오고 밤이면 돌보는 누나들이 따로 있어 언제든지 불러도 불평이 없이 보살펴 준다고 했다. 물론, 시설은 지난번 있던 곳보다 좁고 빈약하기는 하지만 그곳에 비하면 이곳은 천국이라고 진석이는 말했었다.
태식과 문희가 찾아 간 그날 진석이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앉아 있었다. 태식이 도착한 그 시간 바로 직전에 다른 자원봉사자가 와서 진석이를 돌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진석아! 형 왔어.”
“태식이 형!”
진석이는 태식이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보자마자 태식이를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태식이 가까이 가자 진석이는 성기 끝부분에 소변이 약간 흘러내린 것 같다고 닦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태식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물휴지를 두 장 빼내어 들고 진석이의 바지를 내려 성기의 끝 부분을 닦아주었다. 진석이를 비롯한 근육병환자 대부분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다. 길어야 30세 초반까지 살 수 있다는 이들은 자원봉사들에게 스스럼없이 자신의 불편한 부분을 말하곤 했는데 자기 스스로 전혀 움직일 수 없는 그들의 갑갑증을 풀어내기에는 그래도 역부족인 듯싶었다.
“누구야?”
“으응, 형하고 같이 자원봉사 나온 문희 누나야.”
“형 애인이야?”
진석이는 뒤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문희가 궁금했던지 태식에게 장난스럽게 물었다.
“아냐! 그냥 같이 온 자원봉사자 누나야.”
“치, 그런데 형 얼굴이 왜 빨개지는데? 형, 저 누나 좋아하는구나?”
진석이는 누워서만 지내는 아이여서 그런지 느낌이 남다른 아이였다. 태식이 몇 번 문희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던지 조용히 태식의 귓가에 대고 말을 했다.
“누나! 나 물수건으로 얼굴 좀 닦아줘!”
진석이는 뒤에 서 있던 문희에게 응석을 부리듯 깨끗한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아 달라고 부탁했다.
“저기, 침대에 걸린 수건을 가져다가 화장실에서 적시면 될거예요.”
태식은 문희가 당황하지 않도록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문희가 침대위에 걸린 수건을 들고 화장실쪽으로 가자 진석이가 다시 태식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형! 저 누나 예쁜데? 좋아한다고 이야기 했어?"
"야! 이 녀석이…”
태식은 순간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당황했지만 진석이의 그런 장난스러운 말이 싫지는 않았다.
“남자가 뭐 그래? 그냥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이야기 하면 되지. 내가 말해 줄까 형?”
“아니오! 됐습니다. 그대 일이나 신경 쓰십시오.”
태식과 진석이가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문희가 젖은 수건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진석이에게 다가서서 그의 머리를 한 쪽 손으로 올리고 얼굴을 닦아 주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사뭇 진지함이 배어 나왔다. 오랫동안 뇌성마비장애인인 오빠를 돌보아 온 그녀는 아무 스스럼없이 진석이를 대하고 있었다. 그런 문희의 태도에 진석이도 마음 편하게 받아들인 듯 했다.
“누나? 태식이 형이 누나 좋아한데.”
얼굴 구석구석을 닦아주던 문희에게 진석이는 기어코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웃으며 말을 했고 순간, 뒤에 한 걸음 물러나 진석이의 침대를 살피고 있던 태식은 온몸의 털이 공중으로 솟아 오른 듯 했다.
“그래? 그럼 직접 말하라고 해라. 왜 남자답지 못하게 어린 동생을 시켜서 말한데?”
“키킥, 원래 형이 약간 소심하거든 마음씨 넓은 누나가 이해해야지. 나중에 누나가 좋아하는 꽃 사들고 정식으로 프러포즈할거라고 나한테 그러던데?”
진석이는 자신의 말을 받아주는 문희가 편안하고 재밌었던지 태식이가 말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자신에게 이야기 한 것처럼 문희에게 말하고 있었다.
“야! 너 정말 그럴래? 이 녀석…”
태식은 침대를 정리하다 진석이 쪽을 돌아보며 진석이의 머리를 슬쩍 쥐어박았다.
“아.”
진석이는 아프지 않았음에도 무척 아픈 듯 엄살을 부렸다.
문희가 얼른 진석의 머리를 만져주며 빙긋 웃었다.
“아니, 왜 애를 때리고 그러세요?”
“그러게 말예요. 형이 비밀이라고 그랬는데 내가 누나 한테 말해서 그런가 봐요.”
“누나는 수선화를 좋아한다고 이왕 프러포즈할거면 수선화꽃다발로 하라고 전해줘.”
문희는 진석이의 손과 발을 닦아주며 마치 태식이 자리에 없는 것처럼 말했다.
“형! 누나가 이왕이면 그 꽃다발이 수선화였으면 좋겠데.”
태식은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자신의 마음속에 숨겨진 말을 진석이가 대신 해 주는 상황이 우습기도 했지만 문희가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래, 기대하고 있으라고 해라.”
“누나! 기대하라는데?”
진석이는 신이 났는지 연신 태식과 문희의 중간에서 중계방송을 하고 있었다. 비록 머리는 휠체어에 고정된 채 돌아보지 못했지만 태식은 진석이가 환하게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날, 태식과 문희는 함께 진석이의 목욕을 시켜주었다. 벌써 음모가 가뭇하게 올라와 있는 진석이의 벗은 몸을 보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문희는 진석이의 몸 구석구석을 비눗물로 깨끗이 닦아주고 있는 태식이를 도와 물의 온도를 맞추어 주고 비누를 가져다주는 등 차분하게 일을 도와주었다. 진석이를 목욕시키던 태식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는 것을 보자 문희는 들고 있던 수건으로 태식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태식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깜짝 놀라 머리를 감기며 한 쪽 손으로 들고 있던 샤워기를 놓쳐버렸고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에이, 데이트는 나중에 하면 안 돼?”
진석이가 웃으며 투덜거리듯 말했고 태식과 문희는 서로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진석이로 인해 두 사람은 갑작스럽게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날 진석이와 다른 근육병환자들이 식사하는 것을 도와주고 난 다음에야 봉사활동을 마칠 수 있었다. 밖은 벌써 어둠이 내려앉고 태식은 진석이에게 다음 주에 다시 오겠노라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벌써 자원봉사자들이 탄 버스가 시동을 건 채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민석 회장이 버스 앞에서 태식을 기다리다 태식이 나오는 것을 보고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네며 문희씨는 간사님이 집에까지 모셔다 드렸으면 좋겠다며 급히 버스를 출발시켰다.
“제가 집에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그럼, 숙녀를 이곳에 혼자 남겨두고 가시려고 했나요?”
문희, 그녀는 처음 보았을 때와는 달리 상냥하게 태식을 대하고 있었다. 그녀의 어느 곳에서도 그늘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밝은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