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화
형석이가 맞아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밥을 먹던 날 저녁, 그날따라 일찍 돌아온 형원이 형이 얼굴을 보더니 분위기를 눈치 챘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잠자리에 들면서 비로소 이야기를 꺼냈다.
"형석아! 많이 아팠냐? 아버지에게 많았다면 엄청 아팠을 건데."
"……"
형석인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형원이 형이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형석이 자신이 그러지 않았다면 고무장갑을 찢어 놓을 사람은 형원이 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 실은 아침에 학교에 가면서 새벽에 엄마가 가마솥에 넣어 둔 고구마를 꺼내 먹으려고 뚜껑을 열다가 뜨거워서 놓치는 바람에 뚜껑 모서리가 고무장갑에 내리 찍혀서 그랬어."
"……"
형석인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할 힘도 없었다.
아침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던 것과 어머니에게 맞은 일 그리고 아버지에게 작대기로 죽도록 맞은 일이 정신이 가물 해지며 깊은 잠에 빠질 때까지 녹음기를 틀어 놓은 듯 형석의 머릿속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이틀 후, 어머니는 아버지의 월급날 갚아 주기로 하고 형석이의 육성회비를 꽃집아주머니에게 빌리시는 것 같았다. 얼마 안 되는 돈이었지만 그것마저 빌려서 주어야 하는 어머니의 현실을 알면서도 형석은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에게 맞은 지 한 달이 넘었지만 형석인 아직도 조금씩 왼쪽 다리를 절었다.
어머니가 파스를 사다가 붙여주곤 했지만 걸을 땐 심하지는 않아도 왼쪽 다리와 허리 사이가 결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직도 형원이 형이 고무장갑을 찢은 장본인지 모른다.
형원이 형이 간곡하게 부탁을 하고 또, 형의 애장품이었던 소형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받는 대가로 이왕 맞은 것이니 그냥 함구하기로 한 것이다.
라디오라고 해봐야 형원이 형이 어머니께 참고서 산다고 거짓말을 해서 타낸 돈으로 중고 책을 사고 남은 돈으로 조립식 라디오를 구입해 부모님 몰래 밤마다 인두로 지지고 볶더니 겨우 두 개의 채널만 나오는 라디오였다. 그것도 플라스틱으로 된 라디오 덮개가 부러져 검정 고무줄로 칭칭 감아 놓은 보잘것없는 라디오였다.
그러나 형들이 늦은 날이나 아버지가 술을 많이 드신 날에는 어스름한 저녁에 소를 데리러 가야하는 형석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친구가 될 것 같았다.
"야! 엄마나 아버지가 아시는 날에는 다시 압수다. 알았지?"
형원이 형은 고물 라디오였지만 자신이 직접 납땜하여 만든 것이어서 그런지 아까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것으로 형석이의 누명 사건은 일단락이 된 셈이었다.
11월 말, 밤늦게까지 평상에 온 식구가 둘러앉아 이불을 덮고 어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던 형석이가 잠을 깼을 때는 큰방이었다.
꽤 추운 날씨였지만 가을 밤 하늘의 별들이 쏟아질 듯 무수하게 반짝이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렇게 하늘이 아주 맑아 별빛이 유난히 좋은 날에는 이불을 꺼내와 평상에 둘러 앉아 덮고는 옥수수나 찐 감자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방문을 열고 나온 형석인 깜짝 놀랐다.
첫눈이 와서 온통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처럼 소복이 눈이 쌓인 광경을 형석인 지금껏 보지 못했다.
마당엔 온통 메리의 발자국이 옴폭 옴폭 들어가 있었다. 형석이가 마루 한쪽에 놓여 진 운동화를 마당에 내려놓고 신발을 신으려 하자 메리가 달려와 킁킁거렸다. 메리의 코에는 하얀 눈이 조금 묻어 있었다.
"이 가시내야! 아침부터 어딜 그렇게 쏘다니다 왔냐?"
메리는 금빛 털을 가진 암컷이었다. 등 쪽의 털은 굵은 진갈색으로 반짝거렸으며 귀가 꼿꼿이 세워진 아주 영리하고 충성스러운 개였다.
메리가 아주 새끼 때에 어느 외국인이 찾아와 고국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개를 데리고 갈 수가 없다며 이곳에서 키우라고 주고 갔다는 것이다.
어떤 품종인지 또, 순종인지 잡종인지도 몰랐지만 메리는 어렸을 때부터 아주 영리하고 주인을 잘 따르는 개였다.
'끼-잉.'
메리는 눈이 소복이 쌓인 마당에 엎드리며 쓰다듬어 달라는 듯 꼬리를 치며 조금씩 기어서 형석에게 다가왔다.
형석인 메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샘으로 갔다.
샘 주변에는 온통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변해 있었다.
지하수를 펌프로 퍼 올려서 쓰기 때문에 기온이 떨어지는 날 펌프질을 하여 물을 퍼 올리면 물에서 하얀 김이 올라오기 때문이었다.
형석은 세숫대야를 갖다 대고 몇 번의 펌프질을 하여 물을 받아 세수를 하였다.
물이 무척 따뜻했다.
물론, 물이 따뜻한 것이 아니라 날씨가 상당히 추웠기 때문에 지하에서 올라온 물이 상대적으로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부엌에서는 어머니가 도시락을 수북이 쌓아 놓고 밥을 담는 모습이 보였고 형만이 형은 이 추운날씨에도 웃통을 벗고는 자신이 직접 시멘트와 모래를 섞어 깡통에 부어 담아 만든 역기로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었다. 아직 형원이 형은 이불 속에서 일어나지 않은 듯 어머니의 고함소리가 귀를 울렸다.
"야, 안 일어날래!"
"음매-."
형들이 자고 있는 작은방과 벽 하나 사이로 있는 외양간에서 소가 어머니의 고함소리에 장단을 맞추었다.
형석인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며 마당을 통해 뒤뜰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버지는 형석이 다가서는 줄도 모르고 쇠 브러시로 열심히 소의 등을 긁어 주고 계셨고, 아버지의 소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쇠죽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기다란 혀를 내밀어 쇠죽을 이리저리 훑어가며 먹는 모양이 대견스러운 듯 아버지는 많이 먹으라며 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기서 뭐하냐? 빨리 가서 학교 갈 준비하지!"
형석은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치, 누가 뭐 아버지 소를 훔쳐 라도 간 데나? 저놈의 소 어디서 뭐 잘못 먹고 콱 뒈져 버렸으면 좋겠다.'
형석은 행여 아버지가 들을세라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아침밥 상이 들어오자 온 식구가 둘러앉아 아침식사를 했다.
오늘 아침 밥상엔 김치와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멸치젖에 매운 고추를 썰어 넣고 고춧가루와 양념을 섞어 버무린 것과 감자 된장국이었다.
형석인 감자 된장국을 무척 좋아 했다.
굵고 큰 감자는 내다 팔고 구슬처럼 조그만 감자들만 모아 된장국을 끓이곤 했는데 껍질도 벗기지 않은 채 끓인 된장국의 맛은 일품이었다.
"빨리 먹고 학교에 가라! 지각하겠다."
어머니가 채근하기 시작했다.
형들은 교복을 입은 채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더니 바쁘게 일어나 사라지고 방안엔 형석이와 어머니, 아버지만 남아 있었다.
"오늘은 제발 술 먹지 말고 들어와요. 한겨울에 눈밭에서 죽기 싫으면…"
어머니가 투덜거리듯 아버지에게 말했다.
요즘 또다시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늦어지는 날이 많아지고 있었다.
벌써, 이번 달만 해도 형석이가 소를 외양간에 끌어다 놓고 한 시간 이상을 걸어가 술집 앞에서 아버지가 술을 다 드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온 것이 서너 번은 되었다.
어린 아들이 그렇게 술집 앞에서 기다려야만 그나마 아버지는 서둘러 일어서는 편이었기에 어머니는 늘 어린 형석일 보내기 일쑤였다.
"이 여편네가 아침부터 또 지랄이네."
갑자기 아버지의 말이 거칠게 나왔다. 형석이도 속으로 아침부터 어머니가 좀 말씀을 심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석인 빨리 아침밥을 마저 먹고 일어나 학교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괜히 더 오래 있다가는 불똥이 자신에게 튈 수도 있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양반이 얘 앞에서 그게 할 소리요!"
"그 소리가 지금 맨 날 술 먹고 들어오는 게 보기 싫으니까 나가서 얼어 뒈지라고 하는 소리 아녀?"
"그래! 나가서 죽으라고 하는 소리요! 허구 헌 날 술만 마시고 집안 살림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겨울인데 형만이 운동화가 다 찢어져서 지가 철사로 꿰매어 신고 다는 걸 알기나 하요? 애비라고 하나 있는 것이 애새끼들이 어떻게 학교에 다니는지, 여편네가 어떻게 밥상을 차리는지도 모르고, 그래! 술집 여편네가 그렇게 잘 해줍디까?"
어머니는 따지듯이 아버지를 노려보며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이 년이 아침부터 재수 없게…"
"쾅!"
양은 밥상이 들어 올려 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어머니의 얼굴에 김치며 된장국이 범벅이 되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버지 참으세요, 하지마세요!"
형석은 아버지에게 매달렸다.
"오냐! 이놈아 죽여라, 차라리 죽여라! 차라리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낳겠다!"
평소에 아버지에게 존대 말을 쓰던 어머니도 울부짖으며 아버지에게 막말을 하고 있었다.
형석인 무서웠다. 하필 아무도 없을 때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걸 형석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어머니를 때리곤 했었다. 그것은 형들과 형석이가 말려도 소용없는 일이었고 가끔 그러한 일이 되풀이 되곤 했다.
"그래! 이 쌍년아 뒈져라! 니 소원대로 해주마!"
순간, 아버지는 옆에 있던 유리로 된 재떨이를 집더니 어머니의 정수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퍽."
"아악!"
"……"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그것은 태풍의 눈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머니의 얼굴로 붉은 피가 흘러 내리더니 이내머리에서 마치 분수처럼 피가 솟아올라왔다.
"쿵!"
우악스럽게 큰 재떨이가 피가 묻은 채로 방바닥에 떨어졌다.
"뒈져라, 뒈져!"
아버지는 뒤도 안돌아 보고 방안을 나가더니 자전거를 타고 휑하니 집을 나가 버렸다.
"……"
방안은 너무 조용했다.
형석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
어머니는 방안에 쓰러져 머리를 움켜쥐고 아무 소리도 없었다.
머리에서 나오는 피는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울컥울컥 솟구쳐 나오고 있었다. 어머니의 손에는 붉은 선혈이 끈적끈적하게 묻어 나오고 방바닥엔 피가 서서히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엄마! 엄마!"
형석인 어찌할 바를 몰랐다. 너무 무서웠다.
사람에게서 그렇게 많은 피가 나오리라는 것을 생각조차 못했다.
형석은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순간, 죽은 것 같았던 어머니가 무어라 말을 하고 있었다.
"꽃…지입, 꽃…집."
형석은 그제야 어머니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았다.
"엄마, 알았어요! 알았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형석은 그대로 뛰어나와 연립주택 쪽으로 가는 담장을 넘었다. 꽤 높은 담이었음에도 형석은 마치 어른처럼 훌쩍 담을 넘어서 달리기 시작했다.
"엄마! 죽지 마-, 죽지 마-"
달리고 있는 형석의 눈엔 그제 서야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고, 그런 탓에 뿌옇게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자꾸만 손으로 닦아내며 달려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