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석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형들은 학교에 가고 아버지는 일 나가시고 계시지 않았다. 어머니만 땔감이 가득 쌓인 새까만 부엌에서 가마솥을 닦고 있었다.
“일어났냐? 밥 먹어라!”
형석은 새벽녘에야 잠이 들어서인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러나 방 한복판에 걸린 벽시계가 이미 7시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꾸물거리다가는 학교에 늦을 것 같았다.
형석은 눈곱도 떼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벌떡 일어나 샘을 향해 뛰어나가 펌프질을 몇 번 하고는 콸콸 쏟아져 나오는 샘물을 받아 얼굴에 갖다 댔다.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형석의 집 샘물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물맛이 좋기로 소문나 간혹 길을 묻는 사람들이나 담 너머 사는 사람들이 놀러와 물을 마셔보고는 감탄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형석은 늘 다른 집에 가면 수도꼭지만 틀어도 쏟아져 나오는 물이 늘 부러웠었다. 더욱이 목욕할 때마다 가마솥에 물을 끓여 목욕을 해야 했고, 그것도 형제들이 번갈아 가며 씻은 물에 씻고 또 씻다가 마지막에 맑은 물로 헹구는 것이었다. 그래저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는 바가지로 물을 퍼 몸에 부어야 했는데 한 여름철에도 입술이 새파랗게 질릴 만큼 지하수는 얼음처럼 차가웠기 때문에 형석은 하루빨리 담 너머 새로 생긴 연립주택 같은 집으로 이사 갔으면 하는 게 소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형석의 바람일 뿐 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었다.
빨랫줄에 걸린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는 동안 문득 부엌에 계시는 어머니의 긴 한숨소리를 들었다.
“휴, 또 쌀이 떨어져가네.”
그랬다. 사실 형석의 집은 공과대학 옆쪽에 한 마지기도 안 되는 논에 벼농사를 짓기는 했지만 그것도 돈에 쪼들려 내다팔고 쌀집에서 외상으로 매달 혼합 곡 80kg 한 가마씩을 가져다가 먹곤 했다. 어쩌다 아버지가 외상 술값이 많이 밀려 월급을 가져다주지 않는 달이면 쌀집 아저씨에게 험한 소리를 들어가며 사정을 해야 겨우 한 가마를 가져올 수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하루 일과 중의 하나는 늘 쌀자루에 쌀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한 달 동안, 한참 먹는 나이에 80kg 한 가마는 여섯 식구가 먹기에는 작은 분량이었다. 더욱이 군것질을 전혀 하지 않고 먹는 것이라고는 밥밖에 없었던 터라 늘 허기진 듯 밥을 먹었고 또, 밥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살펴가며 걸신들린 듯 먹곤 했다.
“아버지 오시면 쌀집 아저씨에게 쌀 한 가마 갖다 달라고 부탁하라고 해야겠다. 도대체 쌀 걱정 안 하고 살날이 언제나 올는지 원…”
형석은 어머니의 푸념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가방을 챙겼다.
‘오늘 육성회비 가져오라고 했는데…’
한 달에 삼백 원씩 내는 육성회가 벌써 석 달째 밀려 있다. 틀림없이 오늘 학교에 가면 선생님께 손바닥을 맞든지 혼날 것이 분명하였다. 그렇다고 아침부터 쌀 걱정하는 어머니에게 육성회비 달라고 채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형석은 내심 걱정이 되었다. 지금 돈이 없는 줄 알면서도 어머니에게 달라고 이야기해 보았자 어머니 속만 상할 것은 분명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아버지 월급날이 되려면 보름이나 남았다. 그때까지 참고 견뎌야 하는데 학교에서 선생님께 야단맞을 것을 생각하니 꿈만 같았다.
아니, 선생님께 야단을 맞는 것 보다는 아이들 앞에서 육성회비를 안 냈다고 혼자 일어나는 것이 너무나 창피한 일이었다.
형석은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학교에 가려면 오십 분 정도를 걸어서 가야 하기 때문에 더 지체했다가는 지각하기 때문이었다.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알았다! 엄마 오늘 밭 매러 간다.”
어머니는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산의 산비탈을 일구어 열무를 심어 놓고는 가끔 김을 매러 가시고는 했다.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는 책가방을 매고 형석은 집을 나섰다.
메리가 나와 꼬리를 흔들며 바지를 핥아냈다.
“저리 가! 이 개새끼!”
평소에 무척 메리를 좋아하던 형석이었지만 오늘은 다가오는 것조차 짜증이 났다. 아니 메리가 싫었다는 것보다는 형석이 자신에게 짜증이 더 나서였다.
늦가을, 탱자나무 울타리엔 샛노란 탱자들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일부는 땅에 떨어져 검게 퇴색되어가고 있었다.
초록빛의 작은 탱자열매를 따서 얇게 썰어서 말린 다음 한약방에 내어다 파신다고 몇 가마씩을 따내는데도 온통 울타리가 탱자나무로 둘러있는 터라 이맘때쯤이면 집 주변에 탱자향기가 가득하였다. 형석이 탱자나무 울타리를 지나자 새콤한 냄새가 콧속을 찔렀다. 형석은 학교 가는 길에 항상 노랗고 예쁜 탱자열매를 두 개정도 따서 학교 도착할 때까지 손으로 주물러 말랑말랑해져 감촉이 좋아지면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가 같은 반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곤 했다.
특별히 친구들에게 과자를 사줄 수 있는 형편이 안 되는 형석인 탱자나 더러 청개구리를 잡아서 유리병 속에 담아 아이들에게 주는 것을 즐겼다.
그러나 오늘은 왠지 학교에 가서 아침 조회시간에 선생님께 야단맞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탱자나무 울타리를 벗어나자 외국인 교수들이 기거하는 숙소가 나왔다. 그곳 옆에는 새빨간 홍 단풍나무 여러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형석은 갑자기 학교에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석은 자신도 모르게 외국인 숙소 앞 작은 산을 향해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그곳은 산이라 할 수 없는 작은 동산이었고 집 바로 앞에서도 훤히 보이는 곳이었기 때문에 형석은 혹시 집 마당에서 어머니가 볼까 봐 허리를 숙이며 집에서 보이지 않을 곳으로 길을 잡아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황토색 갈대가 푸석거리며 작은 바람에도 휘휘 날리고 있었고 잠자리떼가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무언가 열심히 찾고 있는 듯 부지런을 떨고 있었다. 형석은 동산 한 복판에 오십 년이 넘었다는 커다란 소나무 밑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침이었음에도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한 쌍이 형석의 출현에 깜짝 놀라며 옷매무새를 얼른 가다듬으며 일어나고 있었다.
형석은 내심 모른 체하며 집이 보일만한 쪽으로 걸어가 작은 무덤 옆에 가방을 벗어 놓고 무덤 한쪽에 배를 대고 엎드려 마치 전쟁터의 군인이 능선 너머 적군의 상황을 살피듯 조심스럽게 집 쪽을 살펴보았다. 멀리 집 마당 앞에서 어머니가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시는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가 형석이 있는 산 쪽을 자꾸 쳐다보고 계시는 것 같아 형석은 얼른 몸을 숨겼다.
불안했다.
‘엄마가 봤으면 어떡하지?’
‘그래, 엄마가 보셨을 리가 없어…’
‘만약 보셨다면 벌써 회초리를 들고 쫓아 오셔도 열 번은 쫓아 오셨을 거야.’
형석은 안심이 되면서도 혹시 몰라 다시 머리를 내밀어 집 쪽을 응시했다. 다행히 여전히 어머니는 무언가를 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계셨다.
이내 형석은 안심을 하고는 무덤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조금 전 그 대학생들이 소곤거리며 킥킥대고 가끔은 껴안기도 하고 기대기도 하더니 여학생이 남자의 길게 뻗은 다리를 베고 아예 풀밭에 눕고 있었다.
“쳇, 엄마가 비싼 밥 먹여서 학교 보내 놓으니깐 아침부터 와서 연애질이라니.”
형석은 괜스레 심통이 났다.
그러나 자신도 지금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머쓱해지자 책가방을 열어 보았다. 자연책, 산수책, 국어책 등 오늘 공부할 내용의 책들과 낡고 금이 간 플라스틱 필통과 공책 몇 권이 들어 있었다.
‘지금쯤 2교시 자연 시간일 텐데.’
불현듯 수업시간 생각이 들자 학교에 가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러나 형석은 이내 선생님의 모습을 생각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은 한 번도 형석에게 관심을 가져 준 적이 없다.
형석이의 집에 전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반에서 학교와 집과의 거리가 가장 먼 형석이었기에 지난번 가정방문 때도 제외되었다.
더욱이 같은 반 친구들도 형석의 집이 멀었던 관계로 방과 후 집에 놀러 오는 일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같은 반 친구들도 형석의 집을 아는 아이가 없었다.
형석은 잠깐 동안 자신이 학교에 가지 않으면 선생님이 집에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내 안심을 했다.
“아이참, 내가 왜 학교에 가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학교에 갈까?”
형석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그러나 이제 학교에 간다 하더라도 4교시가 끝날 때쯤에야 도착할 것이고 점심시간이 지나고 한 시간만 더 공부하면 하교하는 시간이었기에 한 시간을 공부하기 위해서 학교에 가기는 싫었다.
그것보다 형석은 아프지도 않으면서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집중되는 아이들의 시선과 선생님의 추궁이 더 두려웠다.
“그래, 그냥 여기 더 있다가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집에 가자.”
형석은 굳게 마음을 먹었다.
‘혹시, 엄마가 밭일을 가시면 몰래 집에 들어가 있어도 되는데…’
형석은 아침에 어머니가 밭일을 가신다는 말씀이 떠올라 다시 무덤에 엎드려 건너편의 집을 살펴보았다.
웬일인지 어머니는 아직도 일을 가시지 않고 빨래를 털어 빨랫줄에 널고 계셨다.
“왜, 아직 가시지 않는 거지?”
형석은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항상 형들이나 형석이 잘못하면 용서하시는 법이 없이 여지없이 회초리를 드셨기 때문이다.
‘엄마가 나를 보았으면 어떡하지?’
들키고 난 후의 변명거리를 생각해 보아도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래, 만약 어머니가 학교에 가지 않고 집 앞동산에 있는 것을 보셨다면 소리를 지르며 당장 회초리를 들고 쫓아 오셨을 거야.”
형석은 자신을 또 한 번 안심시키며 스스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어제 새벽녘에서야 잠자리에 들어서인지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무덤 옆은 무척 아늑하게 느껴졌다.
늦가을, 바람이 차갑기는 했으나 무덤 옆은 바람이 들지 않아 포근하고 따사로 왔다.
형석은 중얼거렸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혼자 이렇게 있다는 것이 삭막하기도 했고 불안하기도 해서인지 형석은 그런 기분을 없애기 위해 노래를 부르며 옆에 듬성듬성 자라있는 질경이를 뜯고 있었다.
스르르 잠이 오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은 희미해지기 시작하고 옷깃에 묻어나는 햇살이 살갗에 따스하게 닿는 느낌이 참 좋았다.
형석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울긋불긋 꽃 대궐 자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뻐꾹, 뻐꾹."
얼마쯤 잤을까? 바로 옆에서 울어대는 뻐꾸기 소리에 잠을 깼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옷에 묻은 마른 풀잎을 털며 일어서다 문득, 형석인 가방 속에 있는 도시락이 생각이 났다.
형석인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도시락을 먹지 않고 가면 어머니께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움에 다시 자리에 주저앉아 책가방을 열었다.
그리고는 노란색 양은 도시락을 꺼내고 김치가 담긴 유리병을 꺼내어 놓았다. 양은 도시락 뚜껑을 열자, 도시락 가장자리에 밥알들이 벌써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고 젓가락이 가로질러 놓여 있었다.
혼합 곡으로 지은 밥은 식으면 더 새까맣게 보였다.
형석은 다시 뚜껑을 닫고는 점심때가 되자 산으로 하나 둘씩 올라오는 사람들을 피해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으로 가서 앉았다.
다시 도시락 뚜껑을 열고 김치가 담긴 유리병 뚜껑을 열었다.
“퐁.”
유리병 뚜껑을 열자 신 김치에서 나오는 가스로 인해 경쾌한 소리가 났다.
형석은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학교에서의 점심시간도 아이들과 삼삼오오 모여 서로 싸온 도시락 반찬을 나누어 먹었지만 어느 때 인가 한 녀석이 코를 막으며 말했다.
“야! 넌 왜 항상 신 김치냐?”
“네 도시락에서는 썩은 냄새가 난다야”
그러자, 아이들은 모두가 웃어댔다. 형석은 그 후로 늘 혼자 점심을 먹었다.
같이 먹을 땐 솔직히 날마다 신 김치만 싸오면서 아이들의 맛있는 반찬을 집어 먹는다는 것이 눈치도 보였기에 차라리 혼자 먹는 것이 형석이 에게는 더 편했던 것이다.
지난봄 소풍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어머니가 소풍가는 날 아침에 특별히 어묵을 쌌다고 하셔서 평소에 먹지 못하는 반찬이라 내심 무척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막상 둘러앉아 뚜껑을 여는데 대부분의 아이가 김밥 아니면 예쁜 색깔의 볶음밥을 싸왔던 것이다. 평소 보리밥을 싸오던 아이들도 그날만큼은 하얀 쌀밥에 계란부침을 덮어서 싸왔었던 것이다.
그런데 옆에 있는 진구란 놈이
"넌 오늘도 꽁보리밥이냐?" 하고 웃자, 선생님이 "형석인 평소에 집에서 맛있는 것을 많이 먹기 때문에 소풍 때도 보리밥을 싸오는 모양이구나!" 하시는 것이었다.
그러자 둘러앉은 모든 아이들이 한바탕 웃었던 일이 있었다.
형석은 창피하고 속이 상했다. 그래서인지 그날 소풍에서 돌아올 때 까지도 기분이 쉽게 풀리지 않았었다.
형석인 도시락 가장자리에 새까맣게 물이든 밥을 젓가락으로 덜어내고 한 젓가락 떠서 입에 넣고는 김치를 집어 먹었다. 시큼한 김치 맛이 정말이지 짜증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형석은 이내 마음을 바꾸었다.
불현듯 어느 날 아침, 부엌에서 도시락을 싸며 어머니가 하신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오메, 내 새끼들…, 맨날 신 김치만 먹어서 얼마나 질릴까? 나두 냄새도 맡기 싫구만…”
형석은 그때 알았다. 매일 신 김치만 싸주시는 어머니 마음도 아프시다는 것을, 그 후로 형석인 늘 도시락밥과 함께 김치까지 일부러 깨끗이 먹어 치웠다.
형석인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밥과 김치를 몽땅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엄마, 미안해.’
형석인 자신이 어머니께 더 큰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