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추反芻 (3) / 안해원 중편소설

autom20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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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편 》

태식은 자신도 모르게 화안동쪽으로 차를 몰고 있었다. 그것은 막연함이었다. 자신의 집은 반대쪽 동민동임에도 갓길 쪽으로 차를 바짝 붙여 인도 쪽을 살피고 갔다. 문희가 간지 이제 막 20여 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걸어가고 있다면 혹시 만 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K시의 밤거리는 한산했다. 때늦은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이 버스정류장에 모여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었고 정류장 앞 가판대에서는 귀걸이며 목걸이 등을 팔고 있었다. 태식은 인도 쪽을 계속 응시하며 운전하기에는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200여 미터씩 가다가 인도 쪽에 차를 세우고 살펴보기로 했다. 그러나 화안동 백악산 가까이 왔음에도 문희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다. 태식은 포기하고 그냥 돌아가려다 문득, 지갑을 다시 한 번 보았다. 태식은 지갑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결심을 한 듯 백악산 중턱 마을이 있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여기까지 온 바에야 입회원서에 있던 주소지로 찾아가 볼 결심을 하였던 것이다. 가파른 도로는 갈수록 좁아져 가고 동네 어귀에 접어들자 더 이상 차로는 갈 수가 없었다. 태식은 자동차를 반디슈퍼 옆에 주차시켰다. 슈퍼 앞에는 조그마한 평상을 내어 놓았는데 주인아주머니로 보이는 여자가 부채를 부치며 간혹 날아드는 모기들을 쫓고 있었다.
“저, 혹시 여기에 서문희라는 아가씨가 사는 곳 모르세요?”
슈퍼 아주머니는 태식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왜 찾느냐는 듯 멀뚱멀뚱 쳐다 볼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태식은 그제야 슈퍼 안으로 들어가 캔 커피 하나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캔을 따 내며 한 모금 들이마셨다. 허름한 슈퍼였음에도 캔커피는 제법 시원하게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태식은 슈퍼 아주머니에게 다시 물었다.
“혹시, 서문희라는 아가씨 모르세요?”
“아는데?”
아주머니는 초면인 태식에게 대끔 반말로 대꾸를 했다.
“뭐할라고 그라요?”
경상도 말씨를 쓰는 아주머니는 태식을 경계하듯이 재차 물었다.
“예, 문희씨가 지갑을 놓고 가서 가져다주려고 왔어요.”
“오메 문희 애인인갑네?”
“아뇨, 저 그게 아니라….”
“하모?”
슈퍼 아주머니는 태식이 물어 본 말에는 정작 대답을 하지 않고 끈질기게 태식이가 누구인지를 물어 보았다.
“저, 그게 문희씨와 같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입니다.”
“그라요? 조기 저 사거리에서 왼쪽 골목으로 가면 두 번째 파란 대문이라요.”
평상에 앉아 손에 든 부채를 휘둘러 가며 문희의 집을 가르쳐 주는 슈퍼 아주머니는 허연 허벅지를 드러낸 채 빤히 태식의 얼굴을 기억이라도 해 놓듯 쳐다보며 말을 했다.
“감사합니다. 얼마죠?”
태식은 캔커피 값을 지불하고 슈퍼아주머니가 가르쳐 준 방향으로 걸어 올라갔다. 손에는 문희의 빨간 지갑이 들려져 있었다.
사거리에서 왼쪽 골목으로 접어들자 겨우 두 사람정도가 지나갈 정도로 길은 좁아졌다. 두 번째 파란대문이 보였다. 그것은 대문이라 할 것도 없을 만큼 작고 초라하게 녹이 슬어 덜렁거리고 있었다. 슬레이트지붕을 한 문희의 집은 블록으로 쌓은 집이었고 지은 지 오래된 집은 여기저기 블록이 떨어져 나가 있었으며 습한 냄새가 났다.
태식은 문희집 안쪽을 들여다보았으나 합판으로 짜여 진 방문은 사람이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다만 문 앞에 신발이 놓여진 것을 보아 문희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태식은 이왕 온 김에 아예 문희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문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태식은 혹시 집안에 벌써 들어갔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담너머로 집안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남 미행하시는 게 취미인가 보죠?”
깜짝 놀란 태식이 뒤돌아보았을 땐 문희가 등 뒤에서 노려보듯 태식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이걸 갖다드리려고 하다 보니 여기까지….”
“됐어요!”
조금 전의 다소곳한 성격과는 달리 문희는 매우 쌀쌀맞게 태식의 손에 든 지갑을 빼앗듯이 가져가며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니, 저 문희씨?”
태식이 문희의 뒤에서 불렀지만 문희는 못들은 척 하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태식은 하는 수 없이 돌아서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