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9. 28 (목)
■ 예레미야 7:1-15
[ 하나님께서 거하실만한 성전이 되도록 ]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4). 말씀이 선포되지만 그 말씀을 듣고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는 백성들이 예배하는 곳만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일뿐, 청종없는 곳은 성전이 아니라고 선언하십니다. 아무리 말씀이 선포되고 예배하는 자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라 하여도 행함이 없으면 종교시설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러한 곳에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임재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곧 선하신 역사도 없다는 것입니다(1-2). 길과 행위가 바른 곳만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인정되고 그렇지 않는 곳은 폐하실 것입니다(3).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대하여 "우리 절기의 시온 성을 보라 네 눈이 안정된 처소인 예루살렘을 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여호와는 거기에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 그 곳에는 여러 강과 큰 호수가 있으나 노젓는 배나 큰 배가 통행하지 못하리라"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선포하셨습니다(사33:20-21). 그러나 이제 예루살렘 성전을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거짓 성전이라 선언하시고 폐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눈에 보이는 건물이 하나님의 성전이 아니며, 말씀을 받고 그 말씀에 청종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이는 곳이 진정한 성전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방황하며 장막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을 근거로 성전을 짓고 예배할 수 있었다는 것은 곧 정착생활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스스로 얻을 수 없는 은혜를 하나님으로 부터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은혜를 관습법처럼 만들어 형식적인 종교생활의 장소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성전을 거짓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하는 곳은 건물일뿐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곳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적인 각성을 이루고 선하신 뜻에 따라 순종하는 자들의 모임이 진정한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충성을 맹세한다 하여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믿음이 없다면 합당한 성전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의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5). 하나님께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않는 것"입니다(5-6). 정의를 행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으로서, 이웃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며 본을 보이고 입술로만이 아니라 행함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는 것입니다. 또한, 약자들을 보호하고 도우며 우상숭배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로서 성전된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세상 속에서 약자들을 보호하고 본을 보이도록 명령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비천한 자로 세우시지 않고 존귀한 자로 세우셨으며, 가난한 자로 세우시지 않고 부요한 자로 세우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없는 특권을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특권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의 정욕을 채우는데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주신 특권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을 때에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성전의 약속을 지키실 것입니다(6). 은혜로 선택하셨고, 은혜로 애굽에서 구원하셨으며, 은혜로 광야에서 인도하셨으며, 은혜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정착하도록 하여 기업을 이루고 성전된 삶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는 자들 가운데 거하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에는 율법에 따라 행하는 것이 요구되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서 삶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않고 이웃에게 공의를 행하며, 과거 자신들과 같이 멸시받고 천대받은 고아나 과부와 같은 자들에게 받은 은혜를 베푸는 것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같은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하나님 앞에 매 주마다 빠짐없이 예배하고 봉사하는 자라할지라도, 자신의 삶을 통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전하지 않는 자의 삶에는 성령의 역사도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서 성회로 모이고 제사하는 모든 행위를, 하나님께서는 "무익한 거짓말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십니다(8). 이스라엘은 바알에게 분향하며 음행과 거짓과 도둑질과 살인을 일삼으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자부하였습니다(9-10). 이는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성전은 흔들리거나 폐해지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심판은 결단코 없을 것이라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자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마음껏 노략질을 하고 잡히지 않을 안전한 소굴로 피신하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고도 성전에 들어가 우리는 구원을 얻은 자라 심판은 없을 것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성전을 '도둑의 소굴"이라고 말씀하십니다(11).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흔들리지 않으며 안전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확증이 정욕대로 살아도 문제없다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삶이 성전된 삶을 도둑의 소굴로 만드는 것이며 성령이 임재하지 않을, 성령훼방죄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은 성도에게 닥친 죽음같은 고난을 이겨내는 능력이 됩니다. 그러나 구원에 안주하며 마음껏 죄를 짓고도 평안을 구하는 것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실로는 처음으로 여호와의 성전이라 불렸던 도시입니다. 안식의 장소라 불리는 실로는 엘리 제사장 때에 블레셋에게 법궤를 빼앗길 때까지 이스라엘의 중앙 성소가 있던 곳이었습니다(삼상4:3). 즉, 여호와의 법궤가 자신들의 승리를 위한 수단이 되기 전까지는 실로는 예배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법궤를 자신들의 수단으로 삼은 후로부터는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12). 우리 개개인의 삶과 가정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이며, 교회는 예배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잘먹고 잘살기 위한 수단이 되는 순간부터 폐허의 장소가 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실로를 반면교사로 삼도록 하십니다. 실로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난 것과 같이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일어날 수 있으며, 오늘 우리의 예배 중심지라 할 수 있는 교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씀하셔도 듣지 않고 불러도 대답이 없는 곳에서는 그곳이 어떤 곳이라 하여도 버려둠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13-15). 오늘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참 성전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하는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기도>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서 거하실만한 성전이 되고, 이웃들에게 그 사랑과 은혜를 전할 수 있는 영적인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종교적인 생활만을 하며 구원의 흔들리지 않음을 이유로 죄를 범하는 가증한 삶이 되지 않도록 성령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