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9. 26 (화)
■ 예레미야 6:1-15
[ 솟구치는 죄악의 샘 예루살렘 ]
견고한 성이라고 여겼던 예루살렘도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닙니다. 북방에서 부터 단을 거쳐 밀려오는 바벨론 군대의 소리가 예루살렘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가운데로부터 피난하라"고 외칩니다(1). 베냐민지파는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는 곳에 성읍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베냐민지파에 대한 피난의 경고는 대적들이 예루살렘에 임박해 있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신의 고향인 베냐민지파 사람들에게 남쪽 드고아와 벧학게렘으로 도망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선지자의 소리는 하나님은 멸시하면서도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무사할 것이라는 믿음이 헛된 것이라는 증거였으며, 그러한 허황된 믿음에서 떠나 진실한 믿음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시온의 딸이라 불리는 예루살렘성은 하나님보시기에 아름답고 우아한 곳이었습니다(2). 마치 아버지가 사랑스러운 딸을 바라보듯 그러한 아름답고 우아한 곳이 이제 전쟁의 폐허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제는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목자들의 새로운 목축지가 되었습니다(3). 양 떼를 몰고오는 목자들은 곧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쓰시는 바벨론이었습니다. 이를 양떼를 몰고 오는 목자로 말씀하신 것은, 예루살렘의 풍성한 재물들이 모두 바벨론 군사들의 먹잇감이 될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고통의 전쟁'을 지휘하시는 분이, 이스라엘을 위해 싸워 오셨던 하나님이셨습니다. 전쟁이 없을 것이라 여겼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므로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던 이스라엘이 이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두려워 떠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완전한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어둠의 세력도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에 안주하며 죄인 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죄악을 마음껏 행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며 성령을 훼방하는 죄로서 구원에서 멀어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완전한 구원의 끈을 스스로 놓아버린 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은혜로 주신 것을 쾌락을 위해 사용하며, 약속 안에서 주신 것을 자기 욕심을 따라 스스로를 배불리는데 사용하면, 자신의 누렸던 모든 것들을 대적들에게 잃게 될 것입니다. 견고한 성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바벨론의 지휘관이 되셔서 "너희는 그를 칠 준비를 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었구나. 일어나라 우리가 밤에 올라가서 그 요새들을 헐자"고 말씀하시며(4-5), "너희는 나무를 베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목책을 만들라 이는 벌 받을 상이라 그 중에는 오직 포학한 것뿐이니라"고 바벨론의 군대를 지휘하십니다(6). 이스라엘을 지키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바벨론을 이끄셔서 징계하십니다. 사랑하는 백성을 고통과 죽음으로 징계할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의 마음은 참담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마치 바벨론의 군대장관이 되셔서 지휘하시는 것처럼 묘사하면서도 자기백성의 죄악을 징벌하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목책은 곧 공성무기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그 앞에 쌓아두는 것으로서, 예루살렘성을 파괴시키기 위하여 바벨론의 공성무기들이 마치 성벽처럼 둘려 있음을 묘사한 것입니다. 무너진 도성으로 들어간 바벨론의 군사들은 뜨거운 대낮부터 한 밤중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예루살렘을 유린합니다. 아름답고 우아한 시온의 딸 예루살렘이 피와 비명이 가득하며, 폭력과 탈취와 질병과 살상이 계속됩니다. 이는 솟구치는 신선한 샘물을 내야할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이 오히려 가장 추악한 악을 생산해내는 곳으로 만들었기때문입니다(7).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처럼 죄악을 만들어내는 이스라엘의 행위를 질병과 살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죄악은 끊임없이 솟아나 온 도성을 적시는 것처럼 급속도로 번지고 삶을 잠식해 갑니다. 또한, 피할 곳이 없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군사들이 대낮부터 밤에 이르기까지 예루살렘을 유린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밤낮으로 고통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결실을 쾌락의 음식으로 바꾼 이스라엘의 삶이 한 때는 자유로운 것같았고, 한 때는 즐거운 것같았으나, 결국은 참혹한 고통이 되었습니다. 은혜로 주신 것을 은혜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하신 목적에 따라 주신 것을 선하신 목적에 합당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나를 위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중에 고통은 어둠처럼 찾아올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고 하였습니다(애3:33). 그러므로 바벨론을 통해 이스라엘을 고통스럽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스스로 고통을 자초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8). 심판 중에도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향한 눈물의 호소와 같습니다. 끝내 듣지 않는다면 감사와 찬양이 넘쳤던 풍요의 땅이 황폐한 땅이 되게 하실 것이며, 질서가 무너지고 혼돈이 찾아 올 것입니다. "어쩔 수 없었다", "몰랐다"라는 핑계에 익숙해진 인생이 끝내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지 않는다면 처참하게 무너져 황폐해질 것입니다. 포도원에서 수확을 하는 사람들이 포도알 하나까지도 남김없이 광주리에 담듯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통해 예루살렘을 철저히 심판하실 것입니다(9).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되고 땅은 황폐하게 되며 남녀노소 관계없이 벌거벗겨진 채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벌겨벗겨진채 끌려간다는 것은 그들이 움켜쥐고 있었던 것 중 하나도 가지지 못하고 잃어 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결과는 육체적으로는 규례를 따라 할례를 받았으나 영적인 귀에는 할례를 받지 않아 말씀을 곡해하여 들었고 선하게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10). 백성들은 물론이고 영적으로 민감해야 할 제사장이나 선지자들까지도 타락하여 자기 배를 불리고 쾌락을 쫓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11-13). 말씀을 은혜로 받지 못하고 나를 향한 공격이나 저주로 받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영적인 귀가 닫혀 있으면 이처럼 회개를 위한 마땅한 말씀을 곡해하여 듣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루살렘의 죄악은 깊은 내상을 입고 쓰러진 중환자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지도자들은 평안하다 괜찮다만을 외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안심시키기에 바빴습니다(14-15). 또한, 지도자들은 백성들보다 더 더럽고 추악한 일을 하면서도 전혀 수치를 느끼지 못할만큼 중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는 곧 치료를 해야 할 의사가 스스로 자기 몸을 관리하여 못하여 중병에 걸린 형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인기몰이를 하지 않고 정직하게 말씀을 전하며, 돌팔매질을 당하더라도 내 영적인 상태를 진실하게 진단할 수 있는 목회자들이 세워질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 환란이 면전에 있으나 깨닫지 못하고, 고통이 육체를 덮고 있으나 하나님을 찾지 않는 어리석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심판에 있지 않고 구원에 있음을 알면서도, 그것을 오히려 죄악을 행하는 기회로 삼으려는 미련하고 악한 인생임을 고백합니다. 영적인 귀가 열려 심판의 말씀이라도 은혜로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