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9. 25 (월)
■ 예레미야 5:20-31
[ 무섭고 놀라운 일에 대한 진노 ]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유다를 향해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들을지어다"라고 호소하도록 하십니다(20-21).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사고의 능력과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였습니다. 창조하신 모든 만물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흘러가고, 정하신 법칙대로 살아감을 보면서도, 그 모든 만물보다 뛰어나게 지으시고 택하신 이스라엘은 정작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인도하심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모든 만물뿐만 아니라, 애굽에서 이끌어내시고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까지의 모든 과정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증거들이 있으나 그들은 무감각하였고, 때로는 채찍을 맞으면서도 스스로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리미야 선지자가 활동하기 전 시대의 이사야에게도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고 선포하도록 하셨습니다(사6:9). 이는 지속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듣도록 촉구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말씀을 듣지 않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순종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삶의 장식물쯤으로 여기며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을 뿐, 정작 하나님의 경외하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수 없이 예배의 자리에 있었고, 수 없이 기도의 자리와 찬송의 자리에 있었으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며 말씀을 내 삶에 실상이 되록 노력했던 때가 얼마나 있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보며 그 분의 위대하심을 깨닫고, 선포되는 말씀을 들으며 죄악에서 돌아설 것을 결단하고 만물에게는 없는 지각으로 선과 악을 분별하여 행하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눈으로 보이는 것을 탐하였고, 내 귀에 들리는 주의 종들의 말을 허풍과 같이 여겼으며, 성경말씀을 세상의 지식보다 더 가볍게 여기며 묵살해 왔음을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거대한 바다나 가친 파도, 높은 산이나 토네이도와 같이 아무리 강한 혼돈의 세력이라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넘지 못하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주권에 복종합니다(22).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러한 모든 만물들을 이용할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하나님으로 부터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눈과 귀를 닫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보았습니다. 마땅히 경외하고 두려워해야 할 분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욕심대로 행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배반과 반역이라고 말씀하십니다(23).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았고 만물에 대한 권리를 위임받았지만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행했으며, 무감각했고 무지했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셔서 풍성한 곡식을 거둘 수 있도록 해주셨고, 백성들을 위하여 추수의 기한을 정하셔서 심을 때와 거두어 먹을 때를 주셨지만 그 누구도 이것이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기를 싫어하고 자신들의 수고와 노력에 의한 결실이라고 생각했고 자만했습니다(24). 마당히 경배받으셔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이스라엘은 오히려 풍요의 신인 바알에게 감사했고 바알에게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수고하여도 하나님께서 비와 바람과 햇빛을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거둘 수 없고 먹을 수 없습니다. 그저 인생은 그러한 모든 것이 자연현상으로 치부했으며, 돈을 숭상하고 돈만 있으면 어떤 것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로는 부족하고 때로는 풍족하여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조성하십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순전한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에서 정한 맥추절과 장막절 등 추수와 관련된 절기를 지키면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정하고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행위가 형식적이고 기복적인 종교적행사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습니다.
창고에 곡식이 아무리 가득할지라도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는 한낱 재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내 삶을 세워가고 내 기업을 견고히 지키는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의 죄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 막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고 하십니다(25).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사람이 사람을 업악하고 상처를 주며 죽이는 일을 서슴치 않았습니다(26). 새가 새장에 가득한 것과 같이 속임이 가득하였고, 그 속임수로 번창하고 거부가 되어 그것을 권력으로 삼으며, 자신은 살지고 윤택한 생활을 하지만, 정작 고아와 과부와 같은 연약한 자를 업신여기고 정의를 굽게하였습니다(28). 이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고아와 과부 등 사회적으로 약한 자들을 돌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존중할 리 없습니다. 돈이 권력이며 권력자의 말이 곧 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보다 권력자의 음모와 술수가 우선시 되었으며 재판장은 돈과 권력의 하수인이 되었고, 부자는 더욱더 큰 재물을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흠모한 모든 백성들은 악한 짓을 행해서라도 부자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구하였고, 가정과 교회는 풍요의 신인 바알 숭배처로 변질되어 갑니다. 진리를 선포해야 할 자가 거짓을 말하고, 징계와 심판을 선언하도록 보냄을 받은 자들이 오히려 물질의 노예가 되어 복을 빌어주고 평안만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편에서 백성들을 의의 길로 인도해야 할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에 집착하고 백성들은 탐욕을 정당화하고 평안과 안전을 보장하는 메시지만을 들려주면 진정한 선지자로 추앙합니다(31). 이 시대에 선지자도 없고 백성도 없습니다. 모두가 악을 위한 공생관계에 있으며, 우상숭배와 음행을 행하는 악인들만 가득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행위에 대하여 "무섭고 놀라운 일"이라 선언하시며(30), "내가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같은 나라에 보복하지 아니하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29). 재판장으로서 이스라엘의 죄를 선언하시고, 그 죄값에 대한 형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도자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고, 성도는 그로부터 전해지는 말씀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며 마음을 찢으며 굵은 베를 두르고 머리에 재를 쓰며 회개하는 것이 당연하게 시행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정도가 무섭고 놀라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먹고 살기위한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여겼던 것을 회개합니다. 내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결단하는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