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9. 23 (토)
■ 예레미야 5:1-9
[ 진리와 비진리를 분별할 수 없는 사회 ]
하나님의 마음은 파멸에 있지 않고 회복에 있으며, 심판에 있지 않고 구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달리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1).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 중에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며, 이는 곧 모두가 바알을 쫓으면서도 규례와 율례를 따라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진리와 진리가 구분되지 않는 사회, 정의와 불의가 분별없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얼마든지 원하는대로 쾌락을 채워줄 수 있는 풍요의 신으로 여기며, 신봉하는 것이 진리가 되어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구태의연하고 망상적이며 비현실적인 비진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루살렘 내에 정의와 진리를 구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역설적인 표현은 그러한 자를 단 한 사람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 아브라함에게 의인 10명을 찾으라고 하셨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대해서는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자 한 명만 있어도 용서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의 타락과 부패가 얼마나 극에 달한 상태였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일 뿐이라고 하십니다(2). 자신들의 죄악과 음행을 감추기 위해 얼마나 많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였는지를 고발한 것입니다. 맹세는 곧 하나님과의 언약으로서 맹세의 파기는 곧 심판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유익을 위해 사람들은 이 맹세를 남발한 것입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두루 다니며 둘러보고 찾되 샅샅이 뒤져 성실한 자를 만나기를 원하셨지만, 이스라엘은 거짓맹세를 일삼고, 징계해도 수치와 아픔을 모른 채 돌같이 굳은 얼굴로 회개를 거절했습니다(3). 하나님의 자비와 인내와 사랑으로도 꺾을 수 없을 만큼 완고했고, 돌아올 생각이 없이 우상숭배와 음행의 자리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였던 그들에게 남은 것은 심판뿐이었습니다.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들을 찾으셨지만, 모두가 비천하고 어리석은 자들 뿐이었습니다(4). 이는 매우 이상한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에 따라 제사를 드리고 성전에 모여 예배하였을뿐만 아니라 절기를 지키며 규례에 따라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길과 법도를 모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습관을 따라 종교적인 생활만 하였을 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경험적으로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처럼 백성들이 종교적으로는 하나님의 법도를 따른 것같았으나 경험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한 것에 지도자들에게 책임이 있음을 역설합니다. 지도자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백성들이 그러한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본을 보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에 기록된 것들을 삶의 실상으로 이루려는 노력보다는 오히려 율법을 무거운 짐으로 여겼고, 자신들을 속박하는 멍에로 여겨 벗으려고 하였고 끊으려고 하였습니다(5). 이는 요시아 왕이 산당을 철폐하며 종교개혁을 단행했을 때에 함께했던 지도자들이었지만,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 죄악을 행하는데 앞장선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 대해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라고 책망하였습니다(미3:1). 백성들은 생계를 핑계로 바알을 섬기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으며, 지도자들은 어떤 것이 하나님의 공의인줄을 분별할 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죄악을 행한 것입니다. 이는 마치 황소가 들판의 사자와 이리와 표범의 위험에서 지키기 위하여 달아놓은 줄을 끊고 나간 것과 같았습니다. 율법을 무거운 짐으로 여기며 자유를 찾아 나아간 이스라엘은 굶주린 사자와 이리와 표범의 먹이가 될 뿐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또한,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적으로 많이 안다하여도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런 능력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떠나 배역한 이스라엘의 행위를 '간음'이라고 말씀하시고, 그들이 섬기던 바알의 신전을 '창기의 집'이라고 하십니다(7). 신랑을 버리고 창기의 집에서 음행을 저지른 이스라엘을 용서할 수없다고 단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과 사랑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또한,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무리 죄를 용서하고 싶어도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죄에서 돌이키지 않는 자들을 용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고 그와 더불어서 행음하고 마음에도 없는 거짓 회개를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이들을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채워주시고 배불리 먹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거나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쾌락과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바알을 찾아갔으며 그들의 음란한 방법을 따라 행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행위는 마치 발정난 수말과 같이 끊임없이 행음할 대상을 찾고 다닌 것으로 묘사됩니다(8).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에 대해 마치 원수를 대하시듯 보복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9). 죄를 미워하시되 죄의 근원까지 완전히 멸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사도바울은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엡5:5). 우상숭배와 음행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로 가장 큰 진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징계를 달게 받고 돌아오기까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다시 배역하지 않도록, 거짓 신들과 그를 추종하는 선지자들이 주는 물거품같은 속임수 속에서 속히 떠나야 합니다.
<나의 기도>
혼란스럽고 모든 것이 명확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주셔서 올바로 분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습관적인 종교생활에서 벗어나 참 신앙인으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본을 보이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