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8. 1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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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의 아침묵상 / 2017. 8. 15 (화)

■ 민수기 31:13-24

[ 죄악의 불씨를 남겨두다 ]

이스라엘은 외형적으로는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이는 영적으로 불완전한 승리를 의미하며 죄악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멸을 명령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디안의 부녀들을 사로잡아왔으며, 이로 인해 모세는 "너희가 여자들을 다 살려 두었느냐"고 진노합니다(15). 미디안의 여인들은 발람의 꾀에 따라 이스라엘을 음행과 우상숭배에 빠지도록 하는 바락의 도구였습니다. 모세는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으니라"고 함으로서, 가증한 미디안의 여인들을 살려두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16). 물론, 고대의 정복전쟁에서 승자는 여인과 아들을 비롯한 모든 전쟁에서의 노략물을 차지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정복전쟁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회복하기 위한 영적인 전쟁으로서, 음행과 죄악의 씨를 살려 두었다는 것은 그들에 대해 관용을 베푼 것같으나 실은 아직도 미련이 남았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전방에서 전쟁을 지휘한 군대 지휘관, 곧 천부장과 백부장들의 책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14). 발람의 꾀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효했던 것은 모압 여인들과 미디안 여인들이 적극적으로 그 일에 동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혹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알브올의 사건에 관계된 모든 음행과 우상숭배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고 나서야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죄를 대하는 태도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죄에 대하여 완전한 청산없이 발등의 불을 끄듯한 회개는 결국 더 큰 죄악을 불러 올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다시 돌아 올 수 있는 죄악의 여지를 남겨두었다면 참된 회개라 할 수 없으며, 그로인한 승리도 참된 승리라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온전하지 못한 불순종으로 인해 남겨진 죄악의 불씨는 다시 이스라엘의 발목을 잡고 괴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진멸하지 못하고 여자들과 그 후손들을 남겨둠으로 인해, 미디안은 다시 세력을 규합하고, 이로인해 이스라엘은 사사시대에 엄청난 시련을 당해야 했습니다(삿6-8장). 죄에 대하여는 완전히 근절시켜야 진정한 회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선포하였습니다(히12:15-17). 죄악의 근원에 대한 완전한 단절을 이루지 못하면 언젠가는 돌이킬 수 없는 화를 당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세는 아이들 중에 남자들은 모두 죽이게 하고 남자와 동침하여 사내를 아는 여자도 다 죽이도록 명령하였지만, 사내를 알지 못하는 여자들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살려두도록 합니다(17-18). 이러한 하나님의 방법은 매우 잔인한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상숭배와 죄악의 결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엄중하며, 죄에 대한 완전한 단절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또한, 사내를 아는 여인들을 모두 죽인 것은 음행이 다시는 이스라엘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며, 그들 중에 미디안의 후손을 잉태한 여인도 있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내를 알지 못한 정결한 여인들은 이스라엘 중에서 더불어 살도록 하였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처녀로는 다시 민족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는 진노의 심판 중에도 긍휼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의미합니다. 즉, 죄와 상관없는 자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자비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완전한 죄의 해결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는 곧 죄에 대해 완전히 단절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은 승리라고 할지라도 생명을 해치는 일은 창조하신 세계를 파괴하는 비극적이고 부정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살인한 자나 죽임을 당한 시체를 만진 자를 부정하다 판정하시고 이레 동안 진영 밖에서 주둔하도록 하시고 정결의 기간을 갖도록 합니다(19). 전염될 수 있는 질병이 있거나 시체와의 접촉으로 인해 부정하게 된 사람은 정결의식법에 따라 이레 동안 부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이스라엘 진영 밖에서 격리생활을 해야 했습니다(12:15, 19:110. 그들은 정결예식에 따라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몸을 깨끗하게 해야 했습니다. 이는 전쟁에서 돌아 온 이스라엘 군사들뿐만 아니라 포로들도 이와같은 정결예식을 행해야 했습니다. 그들 또한, 노예나 이스라엘 남자들의 첩으로 이스라엘 진영 내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몸을 깨끗하게 하도록 명령하신 것은, 셋째 날에는 자신의 행한 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됨을 자각하는 시기이며, 일곱째 날은 자각한 죄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완전히 해결함을 입은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체로 인해서 더럽혀진 자는 이와같은 정결예식을 행하지 않고 깨끗해 질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한편 제사장 엘르아살은 싸움에 나갔던 군인들에게 금, 은, 동이나 철과 주석과 같이 불에 견딜만한 물건들은 모두 불을 지나게 하도록 하였습니다(21-22). 이러한 의식 또한 더러워진 것을 정결케 하는 것이었지만, 그것으로 인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결하게 하는 물"로 깨끗히 씻어야 했습니다(23). 정결하게 하는 물이란 암송아지를 태워 그 재를 섞은 물을 말하는 것으로서(19:9), 피 흘림이 없이는 결코 정결해 질 수 없다는 속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곱째 날이 되면 군사들은 옷을 빨아서 깨끗하게 한 후에 진영 안으로 들어 올 수 있었습니다(24). 옷을 빠는 것은 온전히 깨끗한 존재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 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 하였습니다(고후11:2).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리스도의 신부인 성도는 정결한 백성입니다. 정결한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 작은 미련이 죄악의 불씨가 되어 모든 인생을 불태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옵소서. 성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죄와 불법을 멀리하고 정직히 행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해원의 아침묵상 / 2017. 8. 15 (화)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