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8. 12 (토)
■ 민수기 29:12-40
[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자가 되라 ]
일곱째 달 열다섯 날에는 아무일도 하지 말고 다시 성회로 모여 이레동안 하나님 앞에 절기를 지키도록 하십니다(12). 이는 초막절 혹은 장막절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유대력으로는 새해 첫 달의 보름에 해당하는 기간으로서 한 해의 모든 곡식을 거두어 들이고 그 소출을 창고에 저장하는 절기로서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출애굽기에서는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고 말씀하심으로서, 수장절이 거두어 저장하게 됨을 기뻐하며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절기임을 말씀하십니다(출23:16). 수장절에 대하여 레위기에서는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 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추석과 비슷한 시기입니다(레23:39). 이처럼 하나님께서 대대로 초막절을 지키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후 광야에서 생활하며 초막에 거주하게 한 것을 모든 후손들에게 전하도록 하시기 위한 것으로, 거할 수 없는 곳에서 안전하게 지키시고, 풍성한 곡식을 거둘 수 있는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대대로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특히, 초막절을 장막절이라고도 한 것은 시내산에서 모세가 두 번째 십계명을 맞아 가지고 내려오던 날부터 모든 백성들에게 언약의 말씀과 성막 지을 것을 명령하신 후에(출34:24-35), 그 달 열다섯 날부터 이레동안 성막을 지을 재료인 금과 은과 목재와 가죽 등을 자원하여 드리게 하고 그것으로 성막을 지었고(출354-29, 36:5-7), 이를 기념하여 대대로 이날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하여 초막절 혹은 장막절이라고 하였습니다. 초막절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곧 내가 거할 곳이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 나의 길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나의 육체와 영혼을 살찌우는 음식이 됨을 깨닫게 합니다. 초막절은 유월절(무교절), 칠칠절(오순절, 맥추절)과 함께 이스라엘의 절기로서 추수를 저장하는 것을 마치는 때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땅, 먹을 것이 없는 땅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먹이시고 입히셨던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내가 산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감사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초막절의 첫 날은 성회로 모이고 그 뒤 날마다 이레 동안 계속해서 상번제로 드리는 번제 외에도 모두 칠십 마리의 수송아지를 번제로 드렸습니다. 첫 날에 열세 마리를 드리고 매일 한 마리씩 줄여가며 드린 것입니다(13-38). 물론, 추수를 마친 시기인 점을 감안할 때에 풍성한 제물을 드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으나,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감사할 줄 모르는 백성은 결코 풍성히 누릴 수 있는 자격 또한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또한, 그 만큼 많은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거둘 수 없는 중에도 말할 수 없는 은혜로 부족함이 없이 채우셨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이스라엘이 거두어들인 모든 곡식과 제물을 내어 놓은 것을 아까워했다면 절기는 감사의 절기가 아니라 고통과 원망의 절기가 되었을 것이며, 지속적인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이스라엘은 많은 예물을 자원하여 드리며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했으며, 모든 후손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에서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기에 드려야 할 제사에 대하여 규례대로 드릴 것을 반복적으로 명령하십니다(18, 21, 24, 27, 30, 33, 37). "규례로대로"라고 말씀하신 것은 곧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순종할 것을 명령한 것입니다. 여러 날 같은 제물과 동일한 방법으로 드리되, 매일 속죄제를 함께 드리도록 하셨습니다(16, 19, 22, 25, 28, 31, 34, 38). 하나님의 사역은 말씀하신 대로 감당해야 합니다. 좀 더 효율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것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습니다. 매일 같은 제물을 같은 방법대로 드린다는 것은 지루하고 비효율적인 일 같습니다. 그것도 매일 드리는 상번제와는 구별하여 별도로 드리도록 한 것은 더욱더 비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이는 끝까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시편기자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선포하였습니다(시50:23). 끝까지 감사하며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가 그치면 불평과 원망이 나오고, 불평과 원망은 곧 하나님을 불신하게 하며, 하나님에 대한 불신은 우상숭배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절기를 지키려면 한 해에 한 달은 자신을 위해 일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 앞에 드려야 했습니다. 날마다 드리는 제사, 안식일과 매월 첫 날 드리는 월삯, 이레 동안의 유월절과 칠칠절, 나팔절, 속죄일, 또 다시 이레 동안의 초막절, 그리고 초막절 다음 여덟째 날 장엄하게 드리는 대회까지(35),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예배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 절기 중에라도 "너희의 서원제나 낙헌제로 드리는 번제, 소제, 전제, 화목제 외에 드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39). 사람의 생각으로는 일하며 먹고 살기도 바쁜데 계속된 성회와 제사는 너무도 일방적인 명령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이스라엘의 삶에 예배가 중심이 되지 않으며 결국 그 땅에 거민들의 힘과 그들의 문화에 예속되어 우상숭배와 음행으로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물질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많은 물질을 모으면 그것이 곧 힘이되고 능력이 된다고 여길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예배를 통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세상을 이길 힘과 능력이 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배가 중심이 되어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경험할 때 이스라엘은 가나안 거민을 정복하고 그들이 섬기는 우상숭배의 문화와의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향해 엎드릴 때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 사명의 자리를 지키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걸어 갈 수 있었습니다. 이는 오늘 우리 삶의 중심에 예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인정하며, 감사함으로 드릴 수 있는 우리의 한계는 어느정도 입니까?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드릴 때에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직분에 따른 체면 때문에 마지못해 드리는 예물은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은 오늘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가 어떠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행5:1-11). 드림은 곧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부름니다. 그러므로 드림은 곧 "은혜의 부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만이 감사함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 반복되는 예배와 예물드림이 종교적이고 형식적이며, 체면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드리는 고역이 되지 않게 하시고, 끝까지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과의 진정한 영적 교제를 이루고, 예물 드림을 통하여 풍성하게 채우시는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복된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