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8. 10 (목)
■ 민수기 28:16-31
[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만이 드릴 수 있는 예물 ]
하나님께서는 첫째 달 열넷째 날은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도록 하십니다(16). 유월절은 단어적으로는 "뛰어넘다"라는 의미로서, 장자재앙에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자기백성을 구별하시고,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돌려드리며 기념하는 절기로서 누룩을 넣지 않는 무교병을 넣었기 때문에 무교절이라고도 하였습니다(출12:1-4). 하나님께서는 출애굽때에 처음 시행되었던 유월절에 대하여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지켜 행하도록 명령하십니다. 이는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자신들의 생명과 존재이유가 하나님으로 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 할 수 있는 기간이없습니다. 즉,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어떤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첫째 달 열넷째 날은 유월절로 지키어 특별한 제사없이 모든 가족 구성원이 모여 어린 양을 잡아 식사하도록 하셨고, 열다섯째 날부터는 명절로 삼아 이러 동안 무교병을 먹도록 하셨습니다(16-17). 유월절 첫 날과 마지막날은 성회로 지키며 아무일도 하지 말도록 하셨는데(18, 25), 이처럼 아무일도 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생존할 수 있는 근거가 자신들의 힘과 노동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도록 하기위한 것입니다. 매 해 첫째 달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유대력으로 말한 것이며, 태양력으로는 3-4월에 해당하는 시기로서 매월 첫째 날에 드리는 제사와 같은 수의 예물을 봉헌하도록 하셨으며(19-24), 매일 드리는 상번제와는 별도로 드리도록 하셨습니다(23). 오늘 우리는 영원한 유월절의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더 이상 형식적인 유월절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배를 통해 유월절에 관한 하나님의 뜻과 마음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예배 때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성례 때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어디로부터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기억해야 하며, 우리의 생명이 어디로부터 오고 누구로 부터 보존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즉,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존재를 확인하는 시작점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칠칠절을 지키도록 하십니다(26). 칠칠절은 일곱날을 일곱번 지난 다음날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곡식이 처음 익은 것을 기념하는 초실절, 즉 맥추절로 부터 오십일 째에 지키는 절기입니다(출34:22). 이 시기는 추수가 끝나는 무렵으로서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추수하게 하신 것을 감사하는 절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칠칠절에도 유월절에 드렸던 예물과 같은 수와 같은 방법으로 예물을 드리도록 하셨으며, 소제와 전제 그리고 숫염소를 속죄제로 드리는 것까지 동일하게 시행하였습니다(27-30). 칠칠절은 첫 수확을 하나님께 드림을 감사하며 남은 수확도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이며 책임져 주실 것을 신뢰하고 감사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사십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였고, 때에 따라 주변 족속의 약탈과 그들과의 전쟁을 치러야 했던 이스라엘에게 있어 매일 아침 저녁으로 상번제를 드리고 매월 첫날을 월삯으로 예물을 드리며, 유월절과 칠칠절에 예물을 드리고, 이를 매일 드리는 상번제와는 별도로 드리도록 한 것은 막대한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한 해의 수확을 거두어 들인 후에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면 더 좋은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도 전에, 그것도 그 땅을 차지하고 있는 거민들이 아직 있는 상태에서, 전쟁을 치러야 하는 이스라엘로서는 예물이 실로 부담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절기와 명령을 지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임을 신뢰하고 확신하는 믿음이 아니면 예물을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즉, 땅을 신뢰하는 자가 아닌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만이 예물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가나안을 정복하기도 전에, 가나안에 발을 딛기도 전에 막대한 예물을 드리도록 한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서 주실 은혜와 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가늠하게 합니다. 감사가 있는 자가 찬양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가 진정한 예배자로 설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나안 입성 직전의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첫째, 유월절이나 칠칠절과 같이 명령한 절기를 지키도록 한 것입니다(17-18, 26).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 환경과 형편이 바뀌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주일성수나 혹은 예배자로서의 책무나 직분자로서의 사명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동일한 말씀과 명령을 붙드는 자에게 환경과 상황을 이길 힘을 주실 것입니다. 둘째, 항상 예배자로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18, 25).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가나안 땅에서 치를 영적 전투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힘과 능력을 얻어 싸울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실패하면 세상과의 싸움에서도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매 제사마다 흠 없는 희생제물과 함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도록 하십니다. 흠 없는 희생제물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소제와 전제는 성도의 전적인 희생과 헌신을 예표합니다. 구원의 안일함에 젖어 살아서는 안 되며, 끊임없이 내 모든 삶을 다해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넷째, 속죄제를 드리도록 하십니다(22).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별된 생활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죄는 곧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속죄는 지속적인 하나님과의 소통의 문을 여는 일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아직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이미 약속하신 가나안을 얻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 합니다. 이 땅에서 성도가 행해야할 하나님의 명령들은 귀찮고 힘들며 불필요한 것들이 아니라 곧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을 받아 누릴 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편리성만을 추구하여 좀 더 쉽게 좀 더 내 형편에 맞추어 예배할 수 없을까를 생각하거나, 예물드림을 교회가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본분을 잃어 버린 것입니다. 예배와 예물생활을 통한 은혜와 복은 각 개인이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결단하고 부르심의 소망을 향해 끊임없이 걸어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 이미 은혜와 복을 받은 자로서의 본분을 다 할 수 있도록 하옵소서, 예물드림과 예배가 결코 내 인생을 힘들게 하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은혜와 복을 풍성히 누릴 수 있는 통로가 됨을 믿음으로 받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