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7. 30 (주일)
■ 민수기 22:21-35
[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하라 ]
발람은 아침에 일어나서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고관들과 함께 길을 떠납니다(21). 지난 밤 그의 기도에 발락의 사신들과 함께 가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허락이 아니라 욕심에 가득찬 자신의 마음을 일시적으로 내버려두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이며, 이미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어디있는지를 알고 있는 그가, 자신의 탐심을 하나님의 뜻으로 보여지도록하기 위해 하는 기도에 진노하신 것이었음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즉, 발람이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의 고관들을 따라 간 것은 자신의 탐심에 의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발람은 그것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가는 것처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발람에게 진노하십니다(22). 그리고 그가 가는 길에 여호와의 사자를 세우고 막으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나귀는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향하고, 발람은 나귀를 돌이키려고 채찍질했습니다(23).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는 그의 탐심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그가 앞으로 모압 왕 발락 앞에서 행해야 할 일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엄위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하여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온전히 말씀하신대로 순종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야곱에게 하란을 떠나 집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으면서도 얍복나루에서 그의 환도뼈를 치신 것과 같고(창32:22-32), 가지 않겠다던 모세를 설득하여 애굽으로 내려보내시면서도 그가 할례받지 않았음으로 인해 죽이려고 했던 것과 같으며,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여호와수아 앞에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칼을 빼어들고 가로막았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수5:13). 즉, 육체적으로만 억지로 하지 말고 마음으로 복종하고 따를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나귀는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든 모습을 보고 죽지 않으려고 밭으로 피했지만, 권세와 돈에 눈이 먼 발람은 죽음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도 모르고 나귀를 채찍질하여 빨리 가자고 재촉합니다. 물질에 집착하면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발람은 자신을 높여 존귀케 해주고 자신의 요구에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는 발락 왕의 제안에 흔들려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행동하지 못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발람이 하나님을 모르는 자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물질과 권세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떨어졌다고 아침일찍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발락의 사신들을 따라가는 그의 행동은 어리석음 자체였습니다. 내면적인 교활함과 어리석음에서 나온 그의 분별없는 행동은 그가 부리는 짐승인 나귀의 밝은 눈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나귀는 눈이 열려 심판의 칼을 들고 서 있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았지만, 발락 왕이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고 인정했던(6), 발람은 오히려 영적으로 눈 먼자가 되어 그것을 전혀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의 어리석고 무지함을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말하지 못한 나귀의 입을 빌려 꾸짖으십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아가서 죄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곳에 서자, 발람에게 채찍으로 맞으면서도 나귀는 그만 사자의 발 앞에 엎드리고 맙니다(26-27). 그리고 채찍으로 말을 듣지 않자 지팡이로 때리는 발람을 향해 나귀는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고 항변합니다(28). 물질과 권세에 대한 욕심으로 영적인 눈과 귀가 멀어 하나님의 참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발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자를 보고 죽지 않으려고 엎드려버린 나귀보다도 못한 자가 되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귀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갈 길을 갔을 뿐이지만 발람은 자기의 욕심을 따라 길을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발람은 나귀에게 "네가 나를 거역하기 때문이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고 합니다(29). 아이러니하게도 발람은 자신의 입을 통해 하나님 뜻을 거역한 자신을 저주하고 있는 꼴이 되었습니다. 나귀는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더냐"라고 항변합니다(30). 나귀가 한 말과 같이 또한 나귀의 말을 발람도 인정했던 것과 같이 나귀는 주인인 발람의 말을 거역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나귀의 입을 통해 "발람아 너는 과연 네 주인의 뜻을 거역하고 있지 않느냐"고 꾸짖고 계신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 한 번도 주인의 말을 거역한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나귀의 말은 "지금 이처럼 거역하는 것이 나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의 말이라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말하지 못한 짐승뿐만 아니라 나무와 모든 자연만물을 통해서라도 하나님께서는 의의 도구로 사용하시고 그 뜻을 계시하고 계십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감각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 보게 됩니다(31). 그리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린 발람을 향해 여호와의 사자는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내 앞에서 네 길이 사악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고 꾸짖습니다(32-33). 주인에게 말없이 순종했던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길을 멈추자 채찍으로 때리다 지팡이로 때리고 심지어 칼이 있으면 죽일 것이라고 분노했던 발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오히려 그에게 '네 길이 사악하다"고 하며, 만일 나귀가 아니었으면 죽었으리라고 책망합니다. 욕심을 따라 행했던 발람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도 헤아리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그동안 자신에게 충직했던 나귀까지도 분별하지 못하고 죽이려 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부귀를 위하여 그 어떤 방해물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지극히 육체적인 발람의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발람은 여호와의 사자가 꾸짖자 그제서야 자신이 가는 길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 위한 길이 아니라, 자신의 부와 권력을 추구하기 위한 걸임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내가 범죄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34). 자신의 욕심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는 말씀하신 것을 가볍게 생각했던 그가, 이제 진실로 하나님께서 불의를 행하지 못하도록 길을 막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발람은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34). 하나님께서 길을 막으신 것이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은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면 천금을 가질 수 있는 길이라도 처음부터 거절하고 행하지 말았어야 할 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따르는 부귀와 영화에는 반드시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불의한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사신들을 따라 나선 것은 곧 심판의 길을 자초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돌아가겠다는 발람에게 하나님께서 모압 왕 발락에게 가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35). 즉, "네가 살 길은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복술사인 발람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계시를 이루기 위한 특별한 목적으로 사용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불신자의 말이라고 무시하기 보다는 그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육체의 소리는 일어서야 잘 들리지만, 영의 소리는 엎드릴 때에 더욱 선명하게 들리는 법입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 육체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불법을 정당한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하옵소서. 말하지 못한 짐승라도 의의도구로 쓰시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고 은혜로 구원받은 내가 의의 도구로 쓰임받지 못하고 거역하고 만용을 부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