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7. 27 (목)
■ 민수기 21:1-20
[ 원망을 버리고 다시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길이 산 넘어 산입니다. 왕의 대로로 지나기를 허용해 달라는 모세의 요청을 에돔왕이 거절하자, 이스라엘은 우회로를 택하였으나 네겝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 곧 아랏의 왕에 의해 아다림에서 기습을 당하게 됩니다(1). '아다림'이란 곧 "정탐의 길"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의 열두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 가데스 바네아에서 헤브론으로 올라갔던 길이었습니다(13:17-22). 그러나 위기의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서원하며 "주께서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기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라고 간구합니다(2). 지금까지 원망하며 불평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간구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3). 그리고 호르마에서 첫 승리를 주십니다. 호르마에서의 첫 승리는 매우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정찰한 후에 거인족속들을 보고 두려워하여 가나안에 올라가지 않겠다고 했다가 다시 마음을 바꿔 가나안을 공격했다가 완패를 당하고 후퇴한 곳이 바로 호르마였기 때문입니다(14:38-45). 그들은 가나안 정탐 후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에게 불평하였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죽임을 당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가나안으로 쳐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느냐 이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너희의 대적 앞에서 패할까 하노라"고 만류하였습니다(14:41-42). 모세의 만류에도 가나안을 향해 갔던 이스라엘은 큰 희생을 치루며 구사일생으로 호르마까지 도망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제 원망과 불신과 불평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한 마음으로 서원하고 가나안을 향해 나아갔고, 패배와 수치를 당했던 땅에서 승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가나안과의 싸움에서 패배할때와 승리할 때의 차이점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패배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았으며, 승리할 때에는 전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실패와 성공의 자리가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느냐 혹은 함께 하시지 않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뿐입니다. 불평과 원망을 반복하며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끊임없이 요구했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나아가며 한 마음으로 구할 때에 응답하시고 도우셨습니다. 우리의 가장 큰 적은 눈에 보이는 대적이 아니라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이며, 불평과 원망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호르마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였지만, 백성들은 다시 자신들의 처한 상황을 비관하며 불평과 원망을 쏟아냅니다. 좋은 것을 주면 기뻐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다가도, 고통과 어려움이 닥치면 원망하고 불평하기를 반복한 것입니다. 이스엘백성들은 에돔으로 통과하는 지름길이 막히고 남쪽으로 우회하여 돌아가는 동안에 마음이 상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길로 말미암아 백성들의 마음이 상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4). 그들의 원망과 불평은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에돔에서의 지름길이 막히자 우회하기 위해서 홍해로 나아가는 바란 광야길로 다시 돌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삼십팔 년간 광야 길에서 헤매며 고통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이스라엘은 다시 지름길로 가지 못하고 광야로 들어가게 되자 인내하지 못하고 곳곳에서 불평과 원망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라고 하며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음을 불평합니다(5). 그들의 원망과 불평은 습관적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어김없이 습관적으로 불평과 원망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를 "하찮은 음식"이라고 말하며 그것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그들이 만나에 대해 불만을 터트린 것은 결국 애굽에서 먹었던 음식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한 까닭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셨을 때에도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고 불평하였습니다(11:5-6). 즉, 그들은 이미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애굽에서 먹었던 음식을 그리워하며 돌아가고 싶은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있어 가나안으로 가기위한 장애물은 에돔도 모압도 광야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사십 년을 방황했던 것은 아직 가나안땅을 받을만한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그들 스스로의 원망과 불평이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은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뱀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게 하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6). 이스라엘은 그제야 자신들의 원망함으로 범죄하였다고 고백하며 구원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7). 하나님께서는 놋으로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서 불뱀에 물린 자들마다 보게 하셔서 목숨을 구하게 하십니다(8-9). 이는 주술적인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에게 주신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독사에 물리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며, 놋으로 만든 불뱀을 눈으로 본다고 해서 치료될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믿으며 본 사람은 나았을 것이고, 믿지 않고 보지 않는다는 결국 죽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의 지름길로 가지 못하고 에돔의 국경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여 오봇에 이릅니다(10). 또한, 오봇을 떠나 모압 앞쪽 해 돋는 쪽 광야 이예아바림에 진을 쳤고, 다시 세렛을 거쳐 아모리족속의 땅에서 광야로 흐르는 아르논 강에 진을 치게 됩니다(10-13). 가나안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으로 인해 방랑했던 백성들이 다시 행진을 하고 그 행진은 마치 군대가 진격을 하는 듯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치유를 경험한 그들이 이제 "하나님의 전쟁기"라는 하는 책을 언급하며, 기록된 대로 가나안 경계의 땅들을 확인한 그들의 입에서는 시가 넘쳐나고 노래가 이어집니다(15).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물을 파게 하여 물을 공급하셨던 곳에 다시 이르게 됩니다. 우물을 파고 이스라엘은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위하여 노래하라 이 우물은 지휘관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규와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라고 노래하였었습니다(17-18). 이는 지금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에 지휘관들이 솔선해서 우물을 팠고, 규와 지팡이가 상징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였던 일을 기억하며 모두가 그 행하신 일들을 찬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맛다나와 나할리엘을 거쳐 바못에 있는 모압 들의 골짜기에 이르게 됩니다(19-20). 그곳은 고원지대로서 광야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그들이 시와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향한 방향성이 분명하고, 목표가 정확했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동행하고 계신다는 확신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나아갈 때에 불평이 기대가 되고, 원망이 감사와 노래가 되고 있습니다. 상황만을 보면 불평하고 원망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영원히 머물 처소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회하며 길로 인하여 불평하고 원망하였지만, 그 길들을 지나며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확신하고 감사와 찬양으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처소가 아니며 잠시 지나갈 길로 인하여 불평하고 원망하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면 그 길은 고통의 길이 됩니다. 그러나 감사하고 찬양하면 그 길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여정이 될 것입니다.
<나의 기도>
영원한 처소가 아닌 길 위에서 불평하고 원망하며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며, 스스로를 외롭고 쓸쓸한 자로 만드는 어리석음이 없게 하옵소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가는 길이 은혜가 넘치게 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기쁨의 여정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