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7. 25 (화)
■ 민수기 20:1-13
[ 반복되는 원망과 불평 속에서 ]
출애굽한지 사십 년째 되는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이 신 광야에 이르러 가데스 바네아에 머물며 물이 없어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라고 탄식합니다(1-3). 신 광야는 가나안의 남쪽 경계에 위치해 있으며 불모지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 경계에 대해서 여호수아에서는 "남쪽으로는 에돔 경계에 이르고 또 남쪽 끝은 신 광야까지라"고 밝히고 있으며(수15:1), 에돔과 접근해 있는 지역이었습니다(34:3).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적들에게 둘러싸인 형국에서 식량은 물론, 먹을 물조차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이스라엘의 이러한 원망과 불평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죽음에 직면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원망 속에서도 그러한 상황이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고 하였습니다(4). 즉 완전한 고립상태에서 오랜 기간 음식과 물을 먹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원망과 불평의 근본적인 원인은 상황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불신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차라리 형제들과 같이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다"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한 것이며, 그에 대한 소망도 스스로 버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편적으로 볼때, 이스라엘의 원망과 불평은 그들이 죽음의 상황에 이르러서 본능적으로 드러낸 나약함으로 인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광야에서 걸어 온 행적들은 전혀 그러한 상황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 불평과 원망하고 있는 가데스 바네아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탐한 이후,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온 회중이 원망하며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 모세를 거역한 곳이었습니다. 결국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징계를 받았고 오랜 방랑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다시 도착한 가데스 바네아에서 또다시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바라보기 보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때마다 믿음을 잃어버리고 지속적으로 원망하고 불평했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렵다고해서 불평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백성을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겨낸다는 것은 외형적인 어려움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 속의 불평과 불만과 원망과 스스로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끝내는 믿음으로 극복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며, 이러한 자만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머물게 된 가데스 바네아는 불모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데스 바네아를 "나쁜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라고 원망합니다(5). 가나안 정탐 이후, 가데스 바네아에서 부터 약 40여년간 수많은 백성들이 죽은 것을 하나님의 징계로 보기보다는 고된 여정으로 인한 고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불신앙으로 약속의 땅을 목전에 두고도 다시 광야로 들어가 방랑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들이 얻을 것이 없음을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나에게 무슨 유익을 줄 수 있는가?"라는 시선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평가하려고 합니다. 이는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 것이며, 미래적인 것보다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지금 먹고 사는 문제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것은 물질이 가져다주는 쾌락으로 인해 영원한 안식처인 하나님의 나라보다 이 땅 위에서의 삶을 더욱 가치있게 여긴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40년 동안 변함없이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또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러한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끝내 품으시고 채우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원망을 뒤로하고 회막 문 앞에 엎드린 모세와 아론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8). 어려움을 만나기만 하면 애굽을 그리워했고, 출애굽의 구원을 멸시했으며, 가나안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도 외면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에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광야생활로 다시 돌아가고 다시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기까지 그들 스스로 이룬 거룩함이나 행위는 없으며 오직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원망밖에 남지 않았으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손을 놓지 않으시고 붙잡아 주시며 기도에 응답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질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의지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인도하시고 조성하셔서 이루어 주신 은혜 중의 은혜라 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지팡이를 잡습니다(9). 그러나 회중들 앞에서 모세는 분노가 폭발하고 맙니다. 모세는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하고, 지팡이를 반석으로 두 번 치고 맙니다(10-11).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반석을 향하여 '물을 내라'는 명령만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회중을 향해, 약속의 땅을 목전에 두고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고 차라리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는 회중에게 분노하고 만 것입니다. 비록 원망하고 불평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는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은혜와 사랑으로 품으시고, 그들의 괴로움을 들으셔서 반석에서 물을 내어 그들을 먹이시고자 했으나 모세는 혈기가득한 분노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지 않고 반석을 지팡이로 치는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낸 것입니다. 출애굽이후 광야생활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을 의뢰하며 약속의 신실하심을 믿었던 모세였지만, 그만 끝내 자기 먹고 살 것만을 생각하며 이기적이고 불신앙적인 원망을 쏟아내는 백성들 앞에서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이는 모세를 떠나 모든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의 명령에 완벽하게 순종할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 율법을 온전히 준수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회중과 짐승들이 마실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11). 모세는 분노하며 마치 백성들을 후려치듯 반석을 내리쳤지만 하나님께서는 선하신 뜻에 따라 말씀하신 대로 마실 물을 내어 주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의 분노로 인해 그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12). 모세의 언행에서 알 수있듯, 그는 분노하여 스스로의 자리와 본분을 망각하고 백성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것도 심판하는 것도 자신의 몫인 것처럼 생각하는 실수를 범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세에 대하여 시편에서는 좀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그들이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그들 때문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 이는 그들이 그의 뜻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고 하였습니다(시106:32-33). 즉,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반석을 향해 명령만 하였다면 하나님의 주권이 선명하게 드러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반석을 지팡이로 두 번 침으로서 마치 모세의 능력으로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것처럼 백성들에게 보여지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세의 행위에 대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였다"고 하심으로서, 그가 이미 백성들을 인도한 자격을 상실하였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불순종한 죄로 인하여 징계하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셨습니다(13). 혈기와 분노는 하나님의 진노를 부릅니다. 그리고 사명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혈기를 드러내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하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 끝없이 불평하는 어리석은 인생일뿐입니다. 스스로 거룩함에 이를 수 없고 성결함에 이를 수 없는 한계를 가진 불쌍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품어주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세우신 종으로서 어떤 상황 속에서 혈기를 드러내고 분노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