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7. 24 (월)
■ 민수기 19:11-22
[ 그 부정한 자를 위하여 ]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부정해진 자는 곧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나 정하신 정결예식을 통해 모든 백성들이 생명을 얻도록 하십니다.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만든 제사장이나, 송아지를 불사른 자, 재를 거둔 자,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린 자도 저녁까지 모두 일시적으로 부정하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옷을 빨고 몸을 씻어야 했습니다. 부정한 자가 정결의식을 행하지 않고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면 모든 사람들이 부정하게 되어 위태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든 부정함은 백성들을 위한 정결예식을 행하며 붉은 송아지를 잡고 하나님께 드리는 과정에서 행해진 일이었습니다. 즉,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과정에서 행해진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하다고 하신 것은 그 자체가 죄가 전가된 동물의 시체와 죽음을 다루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죽음과 관련된 것을 부정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모든 죽음은 곧 죄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밝히며, 죽음이 곧 죄의 결과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롬6:23). 결국, 아담과 하와로 인한 원죄의 영향아래에 있는 모든 인생은 부정한 것이며, 그 결과 한 사람도 육체의 죽음을 스스로 피해갈 수 없다는 점에서 인생은 그 무엇으로도 스스로 거룩하고 정결하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시체는 죄의 결과물이므로 이레 동안 부정하게 되었습니다(11). 이레 동안 부정하다고 한 것은 스스로 부정함의 결과에 대하여 책임질 수 없는 상태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않고 공동체 안으로 들어 올 경우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히는 것이었습니다(13). 하나님은 곧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고 기록하므로, 지으신 모든 것들과 사람에게 생명을 주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창2:7).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며 죄는 죽음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로 인하여 부정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결하게 하는 물로 씻지 않는 자는 곧 하나님의 약속가운데서 끊어지게 되었습니다(13). 불사른 재는 곧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 목숨까지도 버리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재를 섞은 물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을 상징합니다. 시체를 만져서 부정케 된 자를 위해 "그는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잿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12), 곧 사망을 이기시고 삼일 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인해서만이 정결케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부정한 자를 위하여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를 가져다가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 그 정결한 자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그 부정한 자에게 뿌려서 일곱째 날에 그를 정결케 할 것이며 그는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저녁이면 정결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17-19). 특히, 우슬초에 잿물을 찍어 제 삼일에, 그리고 제 칠일에 각각 뿌리게 하였는데 제 삼일에 뿌리는 것은 죄에 대한 자각과 속죄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며, 제 칠일에 뿌리는 것은 완전한 정결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슬초는 벽이나 담 위에 자라면서도 향기가 짙은 식물로서, 벽이나 담으로 예표되는 죽음의 경계를 넘어 꽃을 피우는 신비로운 식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므로 애굽에서의 장자재앙이 있던 때에 이스라엘 백성의 초태생의 구원을 위해 문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를 때에 우슬초 묶음을 사용하였습니다(출12:22). 이 외에도 부정한 자로 간주되었던 문둥병 환자가 나았을때 행하는 정결예식에도 우슬초를 사용하였습니다(레14:1-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시체를 만져 부정하게 된 자뿐만 아니라 그가 접촉하여 부정해진 사물에 대한 정결예식을 위해 붉은 암송아지를 태운 재와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그 물을 우슬초에 묻혀 부정하게 된 사람과 사물에 뿌리도록 하셨습니다. 다윗이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라고 고백할 정도로(시51:7), 우슬초는 죽음에 이른 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얻는 일에 쓰였습니다. 이처럼 정결의 과정은 스스로 부정을 씻을 수 없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으로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하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결케 되는데에는 '자기의 죄에 대한 각성', 즉 '회개'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고 하신 것은 부정함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과 결단을 통한 지속적인 노력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성막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거룩한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정하게 된 자가 정결예식을 행하지 않고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어떤 예외도 없었습니다. 이는 곧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는 일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레15:31). 어떠한 부정함도 공동체를 삼킬 수 없도록 철저히 구별하고, 돌아보며, 다시는 그러한 부정함이 틈타지 못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장막에서 사람이 죽었을 경우, 죽은 자가 있는 장막에 들어가기만 해도 부정한 자가 되어 이레 동안 격리 되어야 했습니다(14). 이는 죄에 대한 오염이나 전염을 말씀하신 것으로, 그만큼 죄에 대하여 민감해야 하고 죄는 모든 공동체를 오염시키고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전염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에 뚜껑을 덮지 아니한 그릇은 모두 부정하게 되었는데(15), 시체의 냄새가 그릇 안으로 스며들었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뚜껑을 덮어 놓은 일은 무심히 지나치거나 혹은 꼭 닫지 않고 반쯤 열어 놓을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부정하다하여 정결하게 하신 것은, 거룩한 백성과 죄에 대한 철저한 분리를 의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레11:45).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라고 말씀하신 것은(18), 이스라엘 진영 내에서 가나안 땅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며 불평과 불순종했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왜냐하면, 장막내에서 빈번이 발생되는 죽음에 대해 일일히 제사장이 우슬초묶음에 잿물을 찍어 뿌릴 수 없어서, 제사장이 아닐지라도 정결한 자가 뿌리도록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정하고도 정결하지 않으면 성소를 더럽히는 일이며, 이러한 자는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기업을 상실하게 되어 진영 밖으로 축출받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곧 정결함이 부정함에 대한 스스로의 반성과 자각에서 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일1:9).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가치를 깨닫고 스스로 속죄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생명의 주가 되심을 고백하는 사람만이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정결예식을 정하시고 이를 "영구한 율례"라고 말씀하십니다(21).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러한 제의적인 절차를 따르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율법이 폐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히9:12).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에 대한 온전한 제물로 영구한 규례를 완전히 성취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룩함에서 멀어지면 나의 추하고 더러움을 깨닫지 못하지만, 거룩함으로 가까이 가면 추하고 더러운 내 모습을 보게 되고, 그것은 죄에 대한 자각과 정결의 필요성을 깨닫게 할 것입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 작은 죄라도 거룩한 백성의 삶에서 완전히 단절하게 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하옵소서. 죄를 짓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시는 죄가운데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말씀과 동행하며 거룩함을 좇아갈 수 있도록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