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7. 19 (수)
■ 민수기 17:1-13
[ 어떤 마음으로 섬기느냐 ]
고라일당은 제사장으로서의 아론의 직무와 대언자로서의 모세의 직분을 가볍게 생각하였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우습게 여긴 까닭이며 육체의 소욕에 따라 대하였다는 증거입니다. 고라의 사건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장의 직무에 대한 명확한 질서를 세워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즉 제사장의 직무를 아론과 그의 자손들에게만 허락하셨다는 명확한 증거가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은 자신의 눈으로 보고 경험하지 않으면, 진정한 하나님의 뜻인지를 끊임없이 의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어리석은 백성들이 거룩한 성직을 육적으로 대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각 가문 지휘관의 지팡이를 모두 언약궤 앞으로 가져오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지팡이에 각각 그 지휘관의 이름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1-3). 곧 열두 지팡이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하며, 실제로 지팡이를 뜻하는 히브리어 '마테'는 지파를 의미하는데, 이는 한 그루의 나무에 근원을 둔 여러개의 나뭇가지로,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동일한 조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지팡이는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상징하였습니다. 그리고 지팡이에 이름을 쓰게 한 것은 모든 지파 사람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성소를 섬기는 일을 위해 선택된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보여 주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열두 지팡이를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궤 앞에 두라"고 하셨습니다(4). 이스라엘 열두 지파 모두를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백성으로 세상의 나라와 민족가운데에서 구별하셨지만 모두가 성소를 섬길 수 없었습니다. 공동체를 세워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각자의 역할에서 주어진 책무를 다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에게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5). 택한 자의 지팡이에만 싹이 나게 하심으로 더 이상 이스라엘이 제사장의 자리를 탐내고 아론의 가문이 행사하는 권위에 불평하지 않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내 뜻대로 되기만을 원하고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구하지 않습니다. 내게 맡겨진 책무를 소홀히 하면서도 오히려 남을 비방하며 남의 자리를 탐냅니다. 고라와 같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인도하시는 길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로 섬기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섬기느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내가 어떤 직분을 가진 자였느냐가 아니라, 맡겨진 직분을 어떤 마음으로 감당하였느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각 지파의 지휘관의 이름을 써서 증거궤 앞에 두게 합니다(7). 그리고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보니 레위지파를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려있었습니다(8). 모세는 열두 지팡이 모두를 이스라엘 자손 앞에 가지고 나아와 보게 하고 각각 자기 지팡이를 들게 함으로서, 하나님께서 누구를 택하셨지를 직접 확인하도록 하였습니다(9). 하나님께서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택함을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게 하신 것입니다. 살구꽃의 흰색은 정결함과 거룩함의 표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제사장으로서 성결하고 거룩하게 하신 자가 누구인지를 친히 증거하신 것입니다. 이는 제사장으로서의 아론의 권위를 하나님께 정하신 것으로 확정하시고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하도록 공식적으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즉, 고라일당과 이백오십 명의 지휘관들이 죽은 사건을 모두 모세와 아론의 책임으로 돌리며 그들을 쳤던 회중들에게 고라일당의 행위가 왜 반역이 되는지, 왜 심판을 받았는지를 친히 증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론을 제사장으로 택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은 그가 그러한 성직을 감당할만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흠결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광야에서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고 있을 때에 백성들의 동요를 황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안정시키려 했던 죄를 지었으며(출32장), 모세가 구스여인을 취한 일로 미리암과 함께 아론을 비난한 죄를 저지르기도 하였습니다(12:1). 완전하여서 아론을 제사장으로 세운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택하시고 거룩한 제사장의 옷을 입혀주셨기 때문에 그 직무를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고라를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완전함을 요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그들이 맡은 직분을 폄하하거나, 혹은 누구나 지식만 있으면 감당할 수 있는 일쯤으로 여겨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곧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의 주권을 생각하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두 지팡이 모두 싹을 튀울 수 없는 마른 지팡이였습니다. 즉, 아론의 지팡이도 마찬가지로 싹을 틔울 수 없는 마른 지팡이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아론의 지팡이에 싹을 틔우시고 살구 열매까지 맺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주권이 그를 세우셨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덕적인 관점이나 육체적인 관점에서 부족함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종으로 세워 어떻게 은혜를 드러내고 주권적으로 인도해 가시는 지를 기대하며 동역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령하여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그쳐 더 이상의 희생이 없도록 하셨습니다(10). 이는 아론에 대한 그의 후손의 제사장직을 영원토록 보증하신 것이며, 살아계셔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상징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자에게는 엄중한 심판을, 이에 순종하고 섬기는 자에게는 상급을 허락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론의 지팡이는 이동 중에 훼손이나 분실을 막기 위해 언약궤 안에 보관하여 관리되었지만(히9:4), 솔로몬때에 성전이 세워지고 언약궤를 지성소 안으로 옮기고자 했을 당시에는 십계명 두 돌판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왕상8:9). 아무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알고 백성들은 자신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데 누가 담대하게 성소로 나아가 제물을 드릴 수 있겠느냐고 또 다시 원망하고 불평합니다(12-13).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렇다면 우리는 다 망하게 되었다"고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 스스로 성막에 접근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것으로 간주하여 절망하며 슬퍼합니다. 물론, 이들의 탄식은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연약함을 깨달은 참된 각성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마다 다 죽사오니 우리가 다 망하여야 하리이까"라고 극단적인 표현을 쓴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분이시며 보호하시는 분이심을 온전히 믿지 못한 까닭입니다. 즉,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알지 못하고 오해한 것이며, 이로인해 심각한 절망의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고 선포하였습니다(호6:1-3).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알때에 모든 불안과 공포를 떨쳐버리고 담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 물질적 손익을 따지기 보다 먼저 자기 백성을 사랑으로 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기도>
하나님, 내게 맡겨진 직분과 역할을 불평하기 보다는 먼저 사모하는 마음과 충성된 자세로 감당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긍휼과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심을 신뢰하며 말씀 앞에서 물질적 손익을 따지기 보다 하나님을 알고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힘쓰는 믿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