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7. 18 (화)
■ 민수기 16:36-50
[ 미움과 분노가 전염되어 죽음에 이르다 ]
하나님께서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을 비롯한 이백오십 명의 지휘관이 들었던 향로를 불 가운데에서 가져다가 아론의 아들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불을 다른 곳에 쏟고 향로는 제단을 싸는 철판을 만들도록 하십니다(36-38). 먼저 하나님께서 이처럼 제사장 아론이 있음에도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직무를 맡기신 까닭은, 고라일당과 지휘관들이 불에 죽임을 당하면서 불가피하게 그들의 시체를 가까이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결의식을 치르기까지 제사장 아론은 그 거룩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레16장). 이는 향로와 같이 하나님 앞에 드린 것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것이 되어 거룩하고 제사장 또한 하나님 앞에 드린 자가 되었음으로 거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타다 남은 불을 "다른 곳에 쏟으라"고 명령하십니다(37). 그것은 거룩한 향로와 하나님과 세우신 종들을 배반한 자들의 불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성별된 제사장들이 향로의 재를 버리는 곳이 아닌(레4:12), 다른 장소에 버리도록 한 것입니다. 향로의 불은 곧 성도의 헌신과 희생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이는 사사로운 욕심, 즉 정욕에 따른 예물이나 열심은 결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그러나 향로는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에 제물을 드리는 제단을 싸는 철판을 만들게 하심으로, 오직 하나님을 위한 일에만 사용하게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향로를 펴서 제단을 감싸는 철판으로 사용하게 하신 것은 실용적인 측면에서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제사할 때마다 그 일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첫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만이 분향할 수 있다는 것과, 둘째는 한 번 하나님께 드려진 것은 거룩한 성물로서 결코 사사롭게 사용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단을 불을 담아 회막에 들어가 여호와 앞에 분향하는데 쓰이는 향로 이백오십 개는 분명히 과다한 수량입니다. 더구나 아직 성전이 세워지지 않는 상태에서 그것들을 보관할 곳조차 없다는 측면에서 볼 때에 더더욱 드러합니다. 실용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필요한 수량만큼만 분향을 위해 회막에 두고 나머지는 각자 필요한 곳에 쓰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앞에 드렸음으로 그 향로가 거룩하게 되었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38). 아무리 많고 풍부하다고 하여도 하나님 앞에 드려진 성물은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향로를 가져다가 쳐서 철판을 만들어 제단을 싸도록 하여 그것을 "이스라엘 자손의 표"와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물"로 삼도록 하십니다(38, 40). 제단을 싸도록 한 것은, 그것을 외부로 옮기지 말고 하나님의 처소 내에 두도록 한 것입니다. 또한, 모든 백성들이 제단을 대할때마다 그 철판을 보고 거룩한 제사장직의 신적권위를 인정하고 그 직분의 권위를 넘보거나 모욕하지 않도록 경계의 표와 기념물로 삼도록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이처럼 기념물로 정한 이유에 대하여 "아론 자손이 아닌 다른 사람은 여호와 앞에 분향하러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함이며 또 고라와 그의 무리와 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40). 교회에서의 사역은 편리성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하신 규례와 명령에 따라 하는 것입니다. 고라일당이 자신들의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하나님과 그의 세우신 종에 대하여 대적함으로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했음에도, 이틑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으로 인해 여호와의 백성이 죽었다고 원망합니다(41). 그들에게 동조하였으나 모세와 아론의 중보로 인해 새 생명을 얻었으며,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며 두려워하였음에도 불구하고(34), 그 다음날이 되자 모든 심판과 죽음의 책임을 다시 모세와 아론에게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그들에게 재앙이 미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중보하였는데, 회중은 오히려 모세와 아론이 재앙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처한 모든 상황을 자신의 죄때문이 아닌, 지도자의 지도력 부재로 여기며 탓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련을 겪으며, 자신의 죄를 돌아보기 보다는 하나님의 종이 기도해주지 않아서 이런일이 벌어졌다고 말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회중은 급기야 모세와 아론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자들은 모든 것을 힘으로만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자신들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은혜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물리적인 힘으로 자신들을 위협하는 회중 앞에서 회막을 바라봅니다(42). 회막은 곧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으로서 모든 상황과 사건을 공의롭게 판단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해결책이 있음을 신뢰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도 불신하고 원망하는 회중들의 모습 속에서 끊임없이 상황탓, 남의 탓만 하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상황을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의 탓으로 돌린 회중들의 마음에는 분노와 미움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며 신뢰하는 모세와 아론의 마음은 사랑과 긍휼이 가득합니다. 자신들을 죽이려고 물리력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와 아론은 회막 앞에 엎드려 그들을 용서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43-45). 회중들이 자신들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만을 보았거나 자신들이 가진 권세와 힘을 사용해 회중들을 진압하려는 생각을 가졌다면 결코 가질 수 없는 사랑과 긍휼의 마음입니다. 그러기에 모세와 아론은 "그들을 멸하려고 하니 그들에게서 떠나라"고 하신 하나님 앞에 죽더라도 회중들과 함께 죽겠다는 마음으로 엎드려 간구한 것입니다(45).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과 끊임없이 교제를 유지하는 사람이 자신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무지한 자들까지도 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즉, 나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기도하는 자들로 인하여 살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자신들을 죽이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회중 속으로 들어갑니다. 모세는 아론에게 "너는 향로를 가져다가 제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피워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으므로 염병이 시작되었음이라"고 합니다(46). 일반적으로 죄는 제물의 피로서 속함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제단의 불을 향로에 담아 향을 피워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심판은 속히 이루어졌으며 상황은 급박했다는 것을 증거한 것입니다. 염병은 곧 전염병으로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감염을 일으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아론은 모세의 명령에 따라 급히 향로에 향을 피워 회중들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자와 죽은 자 가운데 서서 중보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살리신 것처럼, 아론의 중보사역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지 않고 염병도 그치게 됩니다(47-48). 모든 상황을 남의 탓으로 돌리며 그 마음에 분노와 미움이 가득한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급속히 전염되며, 그것은 공동체 전체를 죽음으로 몰아 넣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아론이 모세의 명령을 받고 즉시 향로에 불을 담고 향을 피워 회중 가운데로 달려간 사이에 죽은 자만 만 사천칠백 명이나 되었습니다(49). 이는 이스라엘의 인구로 볼 때에 매우 비극적인 재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향로를 들고도 고라일당은 모든 회중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지만, 아론은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있습니다.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자가 아닌 살리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의기도>
하나님께 드려진 성물에 대하여 사사로운 욕심에 따라 대하지 않게 하시고,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쓸 수 있는 분별력을 주옵소서. 모든 상황을 이웃과 지도자의 탓으로 돌리며 악의를 품고 분노와 미움이 가득한 인생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시고,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