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9 (금)
■ 열왕기상 14:21-31
[ 과거로부터 온 우상을 끊어내지 않으면 ]
여로보암이 다스리는 북이스라엘에서 뿐만 아니라,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다스리는 유다에서도 하나님 앞에 불순종으로 인한 죄악이 만연하였습니다. 르호보암과 유다역시 여로보암이 그랬던 것과 같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을뿐만 아니라 남색하는 자가 만연하는 등 그들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보다 그 범한 죄가 더욱더 가증했고 무거웠습니다(22-24). 성경은 르호보암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유다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택하신 성읍 예루살렘"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21).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려고 택하신 성읍 예루살렘에서 우상숭배와 남색과 같은 음행이 행해졌다는 사실을 의미한 것으로, 르호보암과 유다백성들의 죄악이 얼마나 크고 깊은 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를 때에 사십 일 세이며,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사람이더라"고 기록함으로서, 르호보암이 다스리는 십칠 년동안이 이러한 악이 행해졌으며, 그 악의 씨앗이 솔로몬이 이방나라와의 정략결혼과 이에 따른 우상의 유입으로 인한 것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죄악의 대하여 세밀하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유다를 향한 실망과 진노가 얼마나 큰 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합니다. 르호보암은 곳곳에 산당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아세라를 섬기며 성전의 창기도 두었습니다. 르호보암은 왕으로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백성을 다스려야 했지만 오히려 백성들에게 우상숭배의 근원이 되었고 타락의 본거지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솔로몬 왕의 죄악으로 인한 우상숭배에서 더 과거로 돌아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고 기록함으로서(24), 유다의 우상숭배와 음행의 근원적인 원인이 가나안 정복당시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한 이스라엘에게 있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과거로부터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져 온 가증한 일들을 끊어내지 않으면 우상숭배와 음행은 더욱더 깊숙히 후손들의 삶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죄악에 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불꽃같은 눈으로 자기 백성을 통찰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이 산 위에와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기업을 완전히 우상의 소굴로 만들었음을 의미합니다(23). 솔로몬 때에 우상의 유입이 '나라의 안정'이나 '왕권강화', 혹은 '가정의 화평'이라는 이름으로 허용되고 정당화 되었듯이, 오늘 가문의 전통이나 효도라는 이름으로 허용된다면 첫째는 우상으로 인한 죄악으로 가정이 잠식당할 것이며, 둘째는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징계의 채찍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르호보암 제오년에 애굽의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여호와의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빼앗고 또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를 다 빼앗아 갑니다(25-26). 르호보암의 통치기간이 십 칠년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21), 왕이 된지 오년만에 당시 국력이 쇠약해진 애굽이 쳐들어 왔다는 것은 그의 통치초기부터 유다는 주변나라의 약탈대상이 될만큼 약해져 있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솔로몬 왕 때에 금 방패는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더 이상 전쟁이 필요없는 평화의 시기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르호보암이 금 방패를 빼앗기고 놋으로 방패를 만들어 왕궁 문을 지키는 시위대 대장의 손에 맡겼다는 것은 평화의 시기가 가고 전쟁의 시기가 도래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27). 또한, 왕이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갈 때마다 시위하는 자, 곧 왕을 지키는 군사들이 그 방패를 들고 갔다가 시위소로 도로 가져갔다는 것은 많은 방패를 만들수 없을 정도로 놋마저도 부족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28). 이는 하나님의 경외하지 않는 자의 삶이 결국 초라해질 수밖에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르호보암은 백성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하면 자신의 통치에 더욱 복종할 줄 알았지만 과도한 노역으로 인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졌고, 그것으로 인해 나라의 경제는 치명상을 입었고, 우상들을 섬기면 더욱더 강성한 나라로 세워져 갈 줄 알았지만 나라의 국력은 더욱더 쇠퇴해지고 주변 나라들의 침략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까지 이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르호보암과 유다의 죄악을 보시고 내버려두신 까닭입니다. 그러나 이는 르호보암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성전에서 여전히 예배하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우상과 음행에 물든 르호보암과 유다에 더 이상 하나님께서는 임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예배와 제사는 결국 무의미한 종교적 행위였을뿐, 예배와 제사를 통해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얻지 못했습니다. 또한, 외세의 침략뿐만 아니라 여로보암과의 사이에서도 끊임없는 전쟁에 시달려야 했습니다(30). 성경은 르호보암의 통치시기를 기록하며 처음과 끝에 동일하게 "그의 어머니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사람이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31). 마치 암몬의 우상을 섬기던 어머니 나아마의 가증함 속에 르호보암의 통치간이 담겨진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거울입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지 못하고 악을 행하던 부모의 모습이 자녀에게 어떻게 투영되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 지를 성경은 명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신실한 믿음은 곧 자녀의 축복이 됩니다.
르호보암은 여호와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면서도 산당에서 가증한 음행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더 이상 르호보암이나 유다는 하나님의 백성도 아니요 가나안의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혼합종교의 사생아와 같은 자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내 속에서 물질만능과 배금사상, 성공주의와 쾌락주의를 쫓아내야 합니다. 그것을 쫓아내지 못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하는 것은 나 또한 르호보암과 같은 죄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죄악 속에 있는 자를 향해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10).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끊임없이 전쟁이 있었다는 것은(30), 이들이 모두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본분을 잃고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에 급급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에게도 명령한 모든 것에 순종하면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고 하시며 다윗과 동일한 약속을 주셨습니다(11:38). 또한, 솔로몬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에게도 한 지파를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이 유효하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11:1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길을 택하지 않고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서로 다투고 죽이는 길을 택하였던 것입니다.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불안감 속에서도 동족상잔의 비극이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나라가 모두 하나님의 뜻 가운데 견고하게 세워지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과 달리 더욱더 악한 길로 치닫는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곧 이방인들의 조롱거리가 되며 여호와의 이름을 치욕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내 노와 분과 중한 책망으로 네게 벌을 내린즉 너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네가 수치와 조롱 거리가 되고 두려움과 경고가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선포하였습니다(겔5:15). 물론, 에스겔 선지자는 이러한 죄악으로 인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칠십 년동안 고통 받았던 때에 활동한 선지자이지만,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때의 죄악이 온 이스라엘을 빠져나올 수 없는 고통 속에 몰아넣는 시작이 되었다는 것을 고발하고 있는 듯 합니다. 나와 나의 후손의 영광은 내가 오늘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 지에 달려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나의 기도 >
하나님, 지금껏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져 온 우상의 가증한 것들을 우리의 가정에서 몰아낼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여전히 예배하면서도 악한 성품과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서로 이웃과 형제간에 다투는 미련함에서 벗어나게 하셔서,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견고하게 세워져 갈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