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30 (금)
■ 열왕기상 22:41-53
[ 왕이었던 두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 ]
여호사밧은 아사의 아들로서, 북이스라엘에서 아합이 왕이 된지 제 사년에 삼십오 세의 나이에 유다의 왕이 되어 이십오 년간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성경은 "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키지 아니하고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아직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43). 여호사밧의 아버지 아사는 성전의 남창들을 제거하는데 앞장섰으며, 그의 아들 여호사밧은 그 남창들을 완전히 없앴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섬길 것을 백성들에게 촉구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신앙을 본받아 우상을 철폐하고 과감한 종교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그의 아들 아하시아의 인생과는 대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부모의 신앙은 자녀에게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한편, 여호사밧이 통치할 때에 북이스라엘과의 사이에는 전쟁이 없고 평화가 지속되었습니다. 이는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딸 아달랴가 결혼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북이스라엘과 평화로운 관계가 지속되었다는 것은 여호사밧이 하나님 앞에 같은 민족과 형제인 북이스라엘과의 다툼을 피하고 지속적으로 평화를 위해 노력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물론, 그는 북이스라엘과 연합하여 길르앗 라못을 차지하려 했던 전쟁에서 패하였던 것은 그의 인생에서 두고두고 교훈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명분과 실리를 추구했으며, 선지자의 말보다는 아합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연약하여 간혹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사람의 판단과 지식을 따라 행하다가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신앙의 회복을 이루지 못하면 결국은 아합과 같이 하나님 앞에 버려둠을 당하는 인생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호사밧의 아버지 아사는 예루살렘에서 무려 사십일 년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통치하였던 왕이었고, 그는 그러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15:2-24, 대하16:11-14). 여호사밧은 아버지 아사의 믿음을 본받아 신앙의 회복을 이끌었으며, 군사적으로 안정을 이루었으며,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기 위해 재판제도를 체계화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열왕기상에서는 그의 이러한 업적들을 나열하기 보다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을 폐하지 않았다는 기록만을 남김으로서, 오직 여호사밧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인생이었는지를 평가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년간 통치하였습니다(42). 그의 아버지가 사십일 년간 다스렸다는 것과 함께 북이스라엘의 왕들에 비하여 비교할 수 없을만큼 오랫동안 왕으로서의 자리를 유지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 악한 길로 행하였던 북이스라엘 왕들과 달리,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직히 행한 자의 길을 평탄케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는 은혜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합니다. 여호사밧은 다윗의 시대 이후로 계속해서 에돔을 지배하였고 에돔에 있던 에시온게벨 항구를 이용하여 솔로몬 시대에 성행했던 홍해의 무역을 재개하려고 시도하기도 했습니다(48). 비록 배가 파선함으로 인해 그러한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바알을 숭배하는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의 동업을 거절함으로서 물질적 풍요보다는 신앙적인 성결함을 지키는 것이 더욱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49). 비록 경제적으로는 솔로몬이 누리던 영광을 따라가지 못했지만 영적으로는 모든 백성들의 존경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왕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어떻게 평가하느냐보다 하나님 앞에 어떤 인생으로 평가되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의 평가는 결국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평가는 영원히 기록되어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는 겨우 이 년동안 북이스라엘을 통치했지만, 아버지 아합과 어머니 이세벨이 행하였던 악한 길에서 떠나지 못했습니다. 이를 역으로 생각한다면, 아무리 큰 부귀와 영화의 자리에 있더라도 하나님의 길을 떠나 악인의 길에서 행하는 자는 결국 속히 파멸에 이르게 될 뿐임을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에게 불길한 에언을 한 선지자를 미워하고, 자신이 듣기에 좋은 말만을 하던 자들과 거짓 선지자들을 가까이한 부모를 보며 자란 아하시야에게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신앙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부모의 가치관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부모의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자녀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불과 이 년간 통치했지만 "그가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의 길과 그의 어머니의 길로 행하며 바알을 섬겨 그에게 예배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기를 그의 아버지의 온갖 행위 같이 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53). 즉, 그의 아버지 아합과 다를바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녀의 신앙교육을 교회가 알아서 해 줄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닮습니다. 부모가 가정안에서 믿음을 따라 행하지 못하면, 아무리 교회에서 진리의 말씀을 들어도 자녀에게는 오히려 자신을 가두는 형틀에 불과한 것으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도, 유다의 여호사밧 왕도 같은 왕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의 아들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고, 무엇을 물려주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살것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 나의 기도 >
하나님,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어떤 사람들은 악인으로, 어떤 사람은 정직한 자로 기록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의 지지와 칭찬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 버리고, 스스로 교만하여 악을 행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마음을 붙잡아 주시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직히 행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견고함을 이루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