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27 (화)
■ 열왕기상 22:1-14
[ 권력에 기생하지 않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도록 ]
아벡 전투에서 패전한 이후에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삼 년동안 전쟁이 없었습니다. 물론, 이 시기는 아람왕 벤하닷을 형제로 대하며 평화조약을 맺고 살려 준 이후(20:34), 앗수르와 전쟁을 치렀던 아람에게 병력과 병거를 제공하는 등 아람과의 사이에 평화가 지속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당시 동쪽에서 점점 강성해지고 있는 앗수르의 성장을 통한 위협을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한 일시적인 협력이었을 뿐, 서로의 이익을 앞세운 협력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는 없었습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세상 속에서 서로 간의 이익에 따라 일시적인 협력이 유지되다가도 적대적인 관계가 형성될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아합왕은 길르앗 라못을 되찾기 위해 아람과의 평화관계를 일방적으로 깨고 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연합하여 전쟁을 일으키고자 합니다(1-4). 길르앗 라못은 이스라엘에게는 동쪽에서 성장하고 있는 앗수르를 견제하고 아람을 위협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더구나 고지대로서 천연의 요새역할을 하기도 하였지만 골짜기마다 물이 많고 포도농사가 잘 되는 비옥한 지역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를 혼인시켰던 아합과 여호사밧은 사돈관계이기도 했지만(왕하8:18-26), 길르앗 라못은 민족적으로 볼때에도 하나님께 받은 영토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벡에서 패전한 아람이 돌려주기로 약속했던 것을 어겼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있어서는 명문이 충분한 전쟁이었습니다(20:34). 여호사밧은 연합을 제의한 아합 왕에게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라고 답합니다(4). 연합하여 길르앗 라못을 점령하기 위한 아람과의 전쟁은 명분도 충분하였고, 한편으로는 한 민족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되찾는다는 종교적 명분도 확실하였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아합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고민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이처럼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도 확신있는 이스라엘과의 연합을 통한 아람과의 전쟁이었지만,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보소서"라고 아합 왕에게 제안합니다(5).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묻는 일은 개인적인 확신이나 공동체의 명분보다 더욱더 중요한 것입니다. 내게 확신이 있고, 공동체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며, 신앙적으로도 유익한 일이라고 하여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실행하려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승리는 개인적인 확신이나 명분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비록 민족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명분이 충분했기에 유다의 여호사밧에게 아람과의 전쟁에서 연합을 제안했지만, 사실은 아람은 이스라엘 단독으로 상대하기에는 어려운 상대였습니다. 반면, 여호사밧이 통치하던 유다는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17:1-2, 10-19). 또한, 여호사밧으로서도 국방력은 튼튼한 편이었지만, 급변하고 있는 국제적 정세 속에서 안심할 수는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사밧이 아합에 대하여 같은 민족 같은 처지임을 자처한 것은 그러한 연유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사밧이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기를 제안한 것은 그가 경건한 사람이었음을 증거합니다. 이처럼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는 경건한 태도는 이후 그의 아들 여호람과 더불어 모압을 정벌할 때에도 변함이 없었습니다(왕하3:4-12). 그러나 여호사밧은 아람과의 전쟁에 대한 것을 하나님 앞에 묻고자 했을뿐, 아합과의 동맹에 대하여는 "같은 민족 같은 처지"라는 이유를 들어 묻지 않고 승락하는 오류를 범하였습니다(4). 이스라엘의 아합과의 연합에 대하여서도 마땅히 물었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아합은 선지자 사백 명쯤 모으고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하고 묻습니다(6). 성경은 이들이 어떤 선지자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합과 이세벨의 상에서 함께 먹고 마시며 그들이 좋아하는 말만을 하던 선지자들이었습니다. 물론, 이들이 엘리야 선지자가 죽였던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 또한, 여호와의 신앙을 가진 자들이었지만, 권력에 기생하며 자신의 살길을 도모하던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특히, 악녀 이세벨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여호와의 신앙을 가지고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행하였던 종교적인 절차들이 이처럼 측근에 두었던 선지자들의 영향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합에게 한결같이 아람과의 전쟁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예언합니다(6). 선지자 중에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고 하며 전쟁에서의 승리까지 확신시켜 주었습니다(11). 이들은 악하고 불법한 아합과 이세벨의 행위에 종교적 당위성을 확보해주는 역할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합과 이세벨에게 직언하는 것을 포기한 채 왕의 입장을 종교적으로 정당화시키는 역할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려 했던 거짓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는 지에 대한 것보다 권세자인 아합이 어떤 말을 좋아하는 지에 더욱더 관심이 많은 자들이었습니다. 자리를 보전하려고 하면 결국에는 잃을 것이며,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는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모습을 보며, 권세에 기생하며 살길을 도모하는 종교인들의 폐해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은 불법을 하나님의 뜻으로 변질시키며, 악행을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으로 포장함으로 많은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마음을 어둡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감동을 받고 지지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이 확실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때로는 고통스럽게 하고 어렵게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관적인 확신이 아니라 약속의 말씀에 근거한 확신이 필요합니다. 사백 명의 선지자들이 입을 모아 전쟁이 하나님의 뜻이며 승리를 가져다 줄것이라고 예언하였지만, 유다의 왕 여호사밧은 "이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에 있지 아니하나이까"라고 하며 다른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을 것을 요청합니다(7-8). 여호사밧은 사백 명이나 되는 선지자들이 한 입에서 나온 말처럼 동일하게 승리를 확신하는 것을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아합은 "아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라고 하며,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묻기를 완곡하게 거절합니다(8). 그는 자신이 듣고 싶은 말씀을 전해주지 않고 흉한 것만 예언하는 미가야 선지자를 미워했습니다. 여호사밧의 권유에 아합은 내시를 불러 선지자 미가야를 부르도록 합니다(9). 한편,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야가 철로 뿔을 만들어 승리에 대한 확신을 예언하며, 모든 선지자가 사마리아 성문 어귀 광장에서 각기 왕좌에 앉아 있는 아합과 여호사밧 왕 앞에서 승리를 예언하고 있을 때에(10-12), 미가야를 부르러 갔던 사신이 그에게 사백 명의 선지자가 모두 긍정적인 예언을 하였듯이 그렇게 예언하라고 회유합니다(13). 그는 "청하건대 당신의 말도 그들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 하소서"라고 한 것입니다(13). 사신이 왕의 입맛에 맞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예언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은 당시 선지자들이 얼마나 정치 권력에 예속 되어 영화를 누렸는지를 알게 합니다. 그러나 미가야는 단호하게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고 답하며 사신의 제안을 거절합니다(14). 오늘 이 시대에도 미가야와 같은 하나님의 종들이 필요합니다. 권력에 기생하며 자신의 부귀와 영화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왜곡하는 거짓 종들이 아니라 손해를 보며 핍박을 당하더라도 정직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종들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종들이 예정하신 뜻을 펼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 나의 기도 >
하나님, 불의한 세대 속에서도 불이익과 목숨을 위협받더라도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종들이 될 수 있도록 하옵소서. 권력에 기생하며 자신의 영화만을 추구하는 거짓 종들이 나라와 민족 전체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는 사실을 각성하게 하시고, 불의한 이 세대에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전해지도록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