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26 (월)
■ 열왕기상 21:11-29
[ 심판에 대한 유예, 그러나 용서가 아닌 ]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 무고한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차지한 아합 왕에게 그와 그의 아내 이세벨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그 심판은 아합과 이세벨의 생명, 즉, 죽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매우 구체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에게는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고 말씀하셨고(11), 이세벨에 대하여는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고 말씀하셨으며(23), 심지어 아합에게 속한 자들까지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24).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그들의 시체를 개들이 먹고 공중의 새들이 먹을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합과 이세벨과 그들을 추종하는 자들의 죽음에 대하여 그 누구도 애도하지 않을 것이며, 시체마저도 버림을 당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왕으로서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나 하나님께 철저하게 버림받은 인생으로 남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운" 아합의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고 하심으로 심판을 유예해 주십니다(29). 그러나 그것이 아합의 죄를 용서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에 대한 형벌을 유예한 것일뿐, 죄에 대한 삯은 반드시 죄의 당사자인 본인이 합당히 치러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합이 겸비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를 버리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굴복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이세벨의 영향력 하에 있음으로 근본적으로는 악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는 그가 자신의 죄에 대하여 수긍하고 심판에 대하여 마땅히 감수해야 할 것으로 여겼지만, 완전한 회개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회개란 죄와의 모든 관계를 청산하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치 받는 인생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가 하나님 앞에 겸비하였음에 불구하고, 하나님의 긍휼이나 용서를 논하지 않습니다. 죄라고 여기면 지금 바로 모든 관계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백성을 자기 유익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들의 소유물로 생각했습니다. 이세벨이 아합에게 "당신이 과연 이스라엘의 왕인 것이긴 합니까?"라고 말한 것에서 그들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통치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7). 그들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백성의 재산뿐만 아니라 생명까지도 자신들의 권세를 이용해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지혜로 여긴 것입니다. 이세벨이 아합 왕의 이름으로 쓰고 봉인한 편지를 받은 성읍의 장로들은 그녀가 지시한 대로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들 가운데 높이 앉히고, 불량자 두 사람을 들여와 백성들 앞에서 나봇에 대하여 "하나님과 왕을 저주한 자"로 증언하도록 한 후, 나봇을 돌로 쳐 죽입니다(11-13). 신성모독 죄로 율법에 따라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이러한 재판의 과정은 세대의 악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아합과 이세벨뿐만 아니라 성읍의 장로들과 백성들까지 모두 무고한 희생의 피를 흘리게 한 공범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손해가 있고, 탐욕을 채우지 못하게 하는 율법에 대하여는 외면하였던 아합과 이세벨이,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살인에 대하여는 율법을 근거로 정당화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성읍의 장로들과 백성들이 나봇의 진실함과, 아합과 이세벨의 악함을 모를리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권세에 굴복하여 그러한 악행에 동참하게 된 것은 이스라엘 전체가 타락했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금식을 선포했지만, 그것은 신앙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죄악을 가리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으며, 율법에 따라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웠지만 무고한 나봇의 피를 흘리게 함으로,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약속을 버린 자가 되었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불공정한 재판이었습니다. 불량자 두 사람의 증언만 있었을 뿐, 나봇과 함께 성읍에서 살며 생활했던 어떤 이웃도 그에 무고함에 대해 변호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땅히 제시되어야 할 증거도 변호인도 없는 상황 속에서 불량자 두 사람만의 증언으로 나봇을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이처럼 돈과 권력은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경외하는 자라면 목숨을 걸고 나봇의 무고함을 증언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은 아합과 이세벨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었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는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의인의 무고한 희생 앞에서 권력이 무서워 침묵하고 있는 것은 같은 공범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디셉 사람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어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이스르엘로 내려간 아합 왕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도록 합니다(16-17). 아합은 나봇을 죽이고도 포도원을 얻었다는 기쁨에 젖어 있었지만, 오히려 그가 선지자로 부터 들은 대답은 자신과 주변 측근들에 대한 처참한 죽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아합을 책망하셨습니다(19). 그리고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아합의 피도 핥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아합이 전쟁에서 죽고 그의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을 때에 개들이 그의 피를 핥음으로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22:38). 또한, 죽이고 빼앗은 것은 반드시 죽음으로서, 그리고 빼앗김으로서 심판이 성취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책망합니다(20). 즉,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으로서의 책무와 직위의 성결함을 보리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 스스로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합에 대한 책망은 우리를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성결함과 책무를 버리고 끊임없이 자기 유익을 위한 길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에게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모든 자들을 다 멸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21). 하나님의 심판은 돌이킬 수 없고 완전하게 이행될 것을 말씀하시며, 죄에 대하여 반드시 그 값을 치르게 될 것임을 경고한 것입니다. 비록 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과 같이,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이 그의 아들에게 왕위를 계승함으로서 왕조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언급하신 여로보암과 바아사의 집은 모두 2대째에 완전히 멸망을 받은 집안이었습니다. 즉, 아들에게 왕위를 계승할 수는 있으나 죄로 인한 멸망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아합과 이세벨, 그의 측근들의 죽음을 언급하며 개들과 공중의 새가 그들의 피를 핥게 되고 그들의 고기를 쪼아먹게 되리라는 것은 조상들의 묘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객사하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며, 동시에 아무도 그들의 사체를 거두어들일만 상황이 되지 못할만큼 정국이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최고의 권력을 가졌고 많은 재물을 가졌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들의 힘이며 능력이라고 자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 자신이 탐욕이라는 노예에 묶인 자들이었음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아들을 파멸에 이르게 하고 집을 멸망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인생의 정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한 모든 것이 드러나고 심판에 이르기 전에 온전한 회개를 통해 다시 믿음의 회복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나의 기도 >
하나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무고한 희생이 없었는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남을 죽이는 것만이 희생이 아니라 마땅한 값을 치르지 않고, 과다한 노동을 강요하거나 불법한 자들을 동원하여 편법으로 사익을 취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하시고, 부정한 모든 것에 대하여 온전히 회개하고 사람에게 배상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