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24 (토)
■ 열왕기상 20:35-43
[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하지 말고 순종하라 ]
선지자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으로 부터 말씀을 받은 대로 친구에게 "너는 나를 치라"고 말합니다(35).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친구에게 자신을 치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자신을 치라고 한 사람을 칠 수 없었습니다. 때려야 할 아무런 까닭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혹 때려야 할 이유가 있더라도 선지자로서 훈련받고 있는 자신에게 사람을 치라 한 것은 도의적으로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자신을 치라했던 사람은 오히려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고 예언합니다(36). 예언한 대로 명령을 거역한 그는 경고대로 사자에게 물려 죽고 맙니다. 이는 도덕과 하나님의 명령이 서로 상충될 때에 어떤 것을 따라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즉, 참된 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는 까닭없이 친구를 때리라고 한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누구를 때리는 것은 이유를 불문하고 도덕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친구를 때리지 않는 것이 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의로 여기지 않으시고 불순종으로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도덕적인 기준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별하고, 옳은 것을 선택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허용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또한, 단편적으로 세상의 도덕보다 하나님의 명령이 더욱 크며 반드시 순종해야 할 것임을 가르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절대 의가 되시며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의라고 생각했던 것이 결국에는 죄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내가 죄라고 생각했던 것이 친구를 살리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인 의의 기준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받았을 때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순종만을 요구하십니다. 친구를 치는 것이 더 큰 죄처럼 보이고 치지 않는 것이 도리에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보다 더 큰 죄가 없음을 보여주시려 한 것입니다. 때로 이해할 수 없거나 인간적인 도리와 상식을 넘어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이면 순종해야 합니다.
선지자는 다른 친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신을 치라고 요청합니다(37). 그러자 그 친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지자를 쳐서 상하게 합니다. 선지자는 말뿐 아니라 행동과 삶 전체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대언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지식적으로 쌓아가는 것은 합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으면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내 삶을 인도하도록 내어주어야 합니다. 즉, 순종이란 말씀을 받은 내가 판단과 적용의 범위를 정하여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받는 즉시 그 말씀이 내 삶을 통치하도록 내어주는 것입니다. 한편, 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자기의 눈을 가리어 변장하고 아합 왕을 기다리다가, 왕이 지나갈 때에 자기 이야기인 것처럼 하소연을 합니다. 자신이 포로를 감시하다가 놓쳐서 그 포로 대신 자기가 죽든지 은 한 달란트를 물어내야 하는데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자, 왕은 스스로 결정한 대로 당해야 한다고 대답합니다(39-40). 그러나 아합은 자기 스스로 자기의 죄값을 당해야 할 것을 예언한 셈이 되었습니다. 아합은 그것이 자기의 이야기인 줄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남의 일에 대하여는 어떤 것이 옳은지를 판단할 줄 알고 때로는 정죄하나, 자기 자신에 대하여는 돌아볼 줄 모르고 스스로 반성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의 형편은 잘 살펴주거나 비판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잘 적용하면서도, 정작 내 자신을 성찰하고 내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일은 소홀했던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합의 판단을 들은 선지자는 급히 자기의 얼굴에 가려진 수건을 벗어 자신이 선지자인 것을 알게 합니다(41). 그리고 아합 왕을 향해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전합니다(42). 목숨을 담보로 내걸어야 할 만큼 중요한 포로를 지켜야 하는 사명을 망각한 이야기 속 병사처럼, 아합도 하나님이 멸하시기로 작정한 아람 왕 벤하닷을 마치 자신의 전리품인듯 마음대로 놓아주는 오만을 부렸습니다. 그리고 적장을 풀어준 불순종의 대가는 혹독했습니다(22:29-38). 결국 자신이 풀어준 아람 왕과의 전투에서 무심히 쏜 한 병사의 화살에 맞아 부상을 입고 결국 최후를 맞았기 때문입니다(22:34). 아합은 한 생명을 살리는 것이 의이며, 자신의 권위를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가 아니라 결국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선택이었습니다. 의로 여겼던 것이 악이 되어 돌아 온 것입니다.
아람 왕 벤하닷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치러진 전쟁에서 얻은 '헤렘', 즉 하나님의 소유물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에 있는 모든 사람, 노인과 여자와 아이뿐만 아니라 짐승까지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도덕적인 기준으로는 매우 잔혹한 것입니다. 또한, 그들을 사로잡아 노예로 삼는 것이 더욱더 생산적인 일일 수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어린아이와 여자를 살려주는 것이 옳은 일이라 여겼을 것이며, 짐승들을 죽이지 않고 살리는 것이 재물을 늘리는 일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옳은 것이라 생각했던 일들이 결국, 후에 가나안 사람들의 가증한 우상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우상숭배와 음행에 젖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입니다. 아합은 아람 왕 벤하닷이 마치 자기 소유인 양 자기 맘대로 풀어주는 오만을 부렸습니다. 패자를 향한 멋진 관용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것을 자신의 소유처럼 여기는 죄를 지은 것입니다. 선지자는 결국 하나님께서 벤하닷의 목숨 대신에 아합의 목숨을 거둬가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선지자의 말에 아합 왕은 근심하고 마음이 답답한 채로 왕궁으로 돌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릅니다(43). 우리가 가진 것과 이룬 것 중에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는 사람과의 관계만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물질관계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아합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승리한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벤하닷을 당연히 자신이 죽이거나 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라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의 승리는 아합이 싸워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이끄셔서 주신 것이었습니다. 내가 땀흘려 일해서 모은 재물은 당연히 내것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수고하고 땀흘리는 모든 것이 헛된 것이 될 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아무리 땀 흘려 수고하여도 얻을 수 없거나, 혹은 일시적으로 내가 얻는다 하여도 잃어 버리게 될 것입니다. 내가 이룬 성취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나를 통해 뜻을 성취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든 먼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만이 나의 왕이심을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 나의 기도 >
하나님, 말씀을 받을 때마다 스스로 판단하고 순종의 여부를 결정지으려는 어리석음을 버리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내 생각의 옳고 그름을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것이 결국 의가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순종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