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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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23 (금)

■ 열왕기상 20:22-34

[ 승리 후에 찾아오는 교만으로 넘어지다 ]

아람과의 전쟁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였습니다. 선지자는 아합 왕에게 "왕은 가서 힘을 기르고 왕께서 행할 일을 알고 준비하소서 해가 바뀌면 아람 왕이 왕을 치러 오리이다"라고 조언합니다(22). 아람의 벤하닷과 신하들은 여호와를 고작 '산의 신'만 여겼습니다. 이는 사마리아 성이 산지에 있었으므로 자신들의 실패의 원인을 산지에서 싸운 까닭으로 돌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두 번째 아람의 침략이 있기도 전에 적의 상황을 알고 계셨습니다. 전쟁의 성패가 이스라엘의 군사력에 달린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해가 바뀌고 있을 전쟁의 상황에 대비하여 힘을 기르고 행할 일을 알고 준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알고 준비해야 하는 쪽은 아람이 아니라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편으로 이는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철저히 우상을 철폐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전쟁의 승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으로 인한 것이었음을 보여주었고, 또한 해가 바뀌고 또 아람이 쳐들어 올 것까지 예언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아람 왕의 신하들은 "그들의 신은 산의 신이므로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였거니와 우리가 만일 평지에서 그들과 싸우면 반드시 그들보다 강할지라"고 조언합니다(23). 하나님의 지혜를 사람의 지식과 경륜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일 년 후에 일어날 모든 전쟁의 상황까지 아시고 계획하시는 분이셨지만, 아람 왕의 신하들은 나름대로의 패전의 원인을 분석하고 승리의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는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한계만을 드러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군사조직을 개편합니다. 승리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그들은 헛된 계획만을 세우며, 군사조직까지 개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각 소국의 왕들 대신에 전문적인 군사훈련을 받은 총독들을 앞세우고 사마리아에서 패전하므로 잃은 병력을 보충하여 평지에서 싸울 것을 조언하였습니다(24-25). 벤하닷은 그 말을 옳다고 인정합니다. 아무리 준비를 잘 하여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백전백패입니다. 승리하는 삶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알고 그 분의 뜻과 계획을 신뢰하는 마음입니다.

해가 바뀌자 평지에서의 싸울 준비를 마친 아람 왕 벤하닷은 다시 군사를 소집하여 아벡으로 올라와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합니다(26). 그리고 이스라엘도 아람과의 싸움을 위해 군사를 소집하여 군량을 나누고 그들 앞에서 진영을 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아람의 군사력에 비하여 절대적으로 열세였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자손은 두 무리의 적은 염소 떼와 같고 아람 사람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27).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보내어서 아합 왕에게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는도다"라고 말씀해 주시며,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넘기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고 다시 한 번 승리를 약속해 주십니다(28). 아람은 하나님 앞에 교만하였습니다. 그들 스스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제한하고 평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람을 이스라엘 손에 붙이심으로 아벡 평지에서의 전쟁을 통해 만왕의 왕되신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고, 이스라엘이 가증한 우상에서 떠나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소망하셨던 것입니다. "평지에서 그들과 싸우면 반드시 그들보다 강하리이다"라고 했던 아람 왕의 신하들의 조언이 헛된 것이었음을 그들 스스로 확인하게 하실 것입니다. 진영이 서로 대치한 지 일곱째 날에 접전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보병 십만 명을 죽이고, 그 남은 자는 아벡으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갔지만, 그 성벽이 그 남은 자 이만 칠천 명 위에 무너져 죽었으며, 벳하닷은 도망하여 성읍에 이르러 골방에 숨게 됩니다(30). 성벽이 무너져 그들을 삼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각처럼 '산의 신'만이 아니라 어디에나 계시고, 하나님의 시선에서 벗어나 숨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벤하닷 또한 안전한 곳을 찾아 골방으로 들어가 숨었지만,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성경은 적은 염소 떼와 같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아벡에 가득하였던 대군을 물리쳤는지 전략이나 전술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전쟁이며, 이스라엘에게 주권적으로 아람을 붙여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에게 실패란 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실패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위한 섭리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주신 승리임에도 불구하고 아합은 두 번에 걸친 아람과의 전쟁을 통해 교만해질 대로 교만해져 있었습니다. 그는 동정을 사기 위해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자신 앞에 나아와 자신의 종임을 자청한 벤하닷을 "그는 내 형제이니라"고 하며 병거에 태운 후(32-33), 그와 더불어 조약을 맺고 풀어주고 맙니다(34). 하나님께서 앞서가시고,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주신 승리였지만, 아합에게는 자신이 싸워 이긴 것이되고 자신의 승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패자인 벤하닷을 자신의 병거에 태워 모든 백성들 앞에서 자신의 힘을 자랑하려고 하였고, 자신의 백성을 죽이려고 온 대적의 수괴를 형제로 대접함으로 자신이 너그러운 자라는 것을 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읍 골방에 숨어있던 벤하닷은 신하들의 조언대로 아합 왕에게 나아가 생명을 구걸하였습니다. 항복할 때의 옷은 철저히 이스라엘의 관습에 따른 것이었습니다(31). 아합은 그러한 그를 형제로 받아주고 자신의 병거에 올려 자신이 진정한 왕이며 승리자임을 만천하에 공포한 것입니다. 아합은 그러한 대가로 벤하닷에게서 선대에 빼앗겼던 성읍을 되찾고 다메섹에 아합 왕의 이름으로 대로를 만들 수 있도록 조약을 맺었습니다(34). 한 사람 벤하닷을 죽이는 것보다 잃어 버렸던 성읍을 되찾고 적국의 땅에 자신의 이름으로 도로를 건설하는 것이 실리이며 명예로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묻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벤하닷의 생명을 구원합니다. 이는 생명의 주권이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무지한 행동이며, 승리를 안겨주신 하나님에 대한 또다른 배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합은 스스로 적은 군사로 대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주권안에서는 당연한 승리였을 뿐입니다. 아합은 이러한 승리감에 도취되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잊어버리고 분별력 없이 독단적인 행동을 한 것입니다. 일시적인 성공, 주변 사람들의 찬사, 이것이 하나님 앞에 교만해져서 넘어지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 인생의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인도하시고 계심을 아는 성도는 항상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길을 묻을 수밖에 없습니다.

< 나의 기도 >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곧 승리의 길임을 믿습니다. 대적들이 반드시 이기리라고 장담하지만, 사람의 지식과 지혜를 의지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지금 잠깐의 승리로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항상 하나님 앞에 묻는 겸손한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