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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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22 (목)

■ 열왕기상 20:13-21

[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고 승리하게 하시다 ]

하나님께서는 불의하고 악하며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보다는 힘의 세력에 굴종하려고 했던 아합왕이었지만, 그에게 다시 한 번 긍휼을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먼저 아합 왕에게 보내셔서 아람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약속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13). 이는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그릿시냇가와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의 경험을 통해 모든 것을 주권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였던 것과 같이, 아합에게 셀 수 없는 군사력을 이끌고 온 벤하닷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하심으로서 하나님만이 주권자 되심을 알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승리의 약속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증거한 것입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고통 받을 백성들을 생각하시고 긍휼히 여기신 까닭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직도 이스라엘 중에는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고 입맞추지 아니한 자 칠천 명의 생명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신 것입니다(19:18). 아합은 벤하닷이라는 힘의 세력에 굴종하여 조공을 바치고 자기 백성을 볼모로 내어주려고 하였지만(9), 하나님께서는 한 생명이라도 자기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보호하십니다. 이처럼 우상을 숭배하고 교만했던 아합과 같은 자에게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그들뿐만 아니라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다만, 그러한 하나님을 경험하고 돌아오는 자가 있는가 하면 돌아오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여 심판에 이르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합은 승리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누구를 통하여 그렇게 하시리이까"라고 묻습니다(14). 지극히 불신앙적인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승리를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승리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어떻게 승리한다는 것입니까?"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만으로 믿지 못하고 구체적으로 자신을 설득해 주시기를 바란 것입니다. 아합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말씀만으로 확신에 이르지 못하고 나의 논리와 일치가 되어야 하고, 내 생각에 받아들일만한 것이어야 비로소 확신하려는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아합의 마음 속에는 처음부터 승리는 없었습니다. 다만, 베나닷과의 적절한 협상을 통해 자신의 왕위를 보존하고 피해를 최소화해보려는 생각만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셀 수 없는 벤하닷의 군사력 앞에서 이미 전의를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미 믿음을 지키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아합의 모습입니다.

아합의 질문에 하나님께서는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로 하리라"고 대답하십니다(14). 아합의 질문에 답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많은 군사력을 가진 벤하닷이 코 앞에 와 있는 상황 속에서 여전히 불신앙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아합에게 행하실 일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실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의 마음이 돌이켜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힘쓰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합은 또다시 "누가 싸움을 시작하리이까"라고 묻습니다(14). 그것은 물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있는 아람과의 전쟁에서 왕이 군사를 이끌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아합의 질문은 스스로 수 많은 대적들 앞으로 나가면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이 아까운 것입니다. 수많은 하나님의 선자자들을 붙잡아 죽였던 그가 자신의 목숨 앞에서는 왕의 권위를 잃어버린 채 비겁자로 앉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는 "왕이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왕이 먼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에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밝힌 것입니다. 아합이 각 지방의 고관의 청년들을 계수하니 이백삼십이 명이며, 그 외에 모든 백성 곧 전쟁에 나갈만한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을 계수하니 칠천 명이었습니다(15). 이처럼 이스라엘의 군사 숫자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은, 아람과 주변 속국들의 군사가 최소 십만 명이상으로 추정해 볼 때 이스라엘의 군사 숫자는 너무도 빈약한 숫자였던 것만큼, 전쟁의 승리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 것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은 숫자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삼상14:6).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미 영원한 하나님의 기업을 약속받은 자들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이 지금 힘들고 어려워도 반드시 최종적인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고난 중에 있는 자기 백성을 위로하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에정 가운데 이미 성취되어 있는 약속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난의 때에 아합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지 못하고 넘어질까 실패할까를 근심하고 걱정하며 때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또한 승리를 위해 주신 말씀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먼저 이해하려고 하고 먼저 자신의 생각과 일치를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능력이며 불신앙은 실패입니다. 믿고 순종하는 자만이 나와 함께 하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군사력만 믿고 교만했던 벤하닷은 장막에서 전쟁을 돕기 위해 연합했던 소국들의 왕 삽십이 명과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해 있었습니다(16). 이스라엘 진영에서는 전투할 자를 선택하고 준비할 때에, 적진에서는 이미 승리를 거둔 사람들처럼 벤하닷과 소국들의 왕이 대낮인 정오부터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각 지방의 고관의 청년들이 나아오는 것을 투항하는 것으로 여기고 오해하여 사로잡으라고 명령합니다(18). 이러한 벤하닷의 명령은 자신이 미리 앞서 보낸 정탐꾼들을 스스로 무기력하게 만든 것으로서, 그들은 "사마리아에서 사람들이 나오더이다"라고 보고하며 자신들의 임무를 다하였지만, 정작 왕은 술에 취해 전쟁의 상황을 올바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17). 아합과 이스라엘은 그러한 벤하닷의 상태를 알지 못하였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과의 영적인 싸움에서 적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눈과 생각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모든 일들까지도 아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청년들과 그들을 따르는 군대가 성읍으로 나가서 적군 쳐죽이자, 아람의 군대는 뿔뿔히 흩어져 도망하기 시작했고, 벤하닷은 말을 타고 마병과 더불어 도망하여 피하였습니다(20). 아합도 나가서 말과 병거를 치고 또 아람 사람을 쳐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21).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승리를 이스라엘의 손에 가져다 주신 것입니다. 어떤 희생도 없는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객관적인 전력이 앞서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전술이나 전략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왕 아합도 군대를 이끈 장수들 중 그 누구도 자신의 공로를 주장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앞서가시고, 하나님께서 싸워 이기신 전쟁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승리는 나의 능력이 아니라 앞서 가셔서 모든 환란이나 기근이나 곤고를 싸워 이기신 주님으로 인한 승리이며, 우리는 그 승리에 참여한 자가 되어 함께 기뻐하며 즐거워할 자들일 뿐입니다. 나의 공로로 받은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다만 말씀에 순종하였을 뿐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승리는 이미 받은 것과 같습니다. 말씀 앞에서 취향대로 선택하려고 하지 말고, 이해하고 순종하려고 하지말고, 내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승리의 길입니다.

< 나의 기도 >
자기 백성을 고통 가운데 두시지 않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친히 앞서 가셔서 수 많은 대적 가운데에서도 약속하신 대로 승리하게 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끝까지 순종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