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21 (수)
■ 열왕기상 20:1-12
[ 유혹에서 요구로 이어지는 세상의 모습 ]
아람의 벳하닷 왕이 자신들의 속국 왕들 삼십 명을 군사들과 함께 소집하고 말과 병거들을 동원하여 사마리아를 에워쌉니다(1). 북쪽에 있는 앗수르가 막강한 군사력으로 세력을 확장하자 아람의 벳하닷은 군대를 동원하여 상대적으로 약한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충분한 군사력으로 바로 쳐들어가 점령하지 않고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조공과 여인들과 아이들을 요구하고 있는 아람왕 벳하닷의 속셈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북쪽에서 강력한 세력으로 자리잡고 아람을 위협하고 있는 앗수르를 견제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속국으로 만들어 세력을 키우려 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그리고 사마리아를 포위한 채 아합에게 항복을 요구합니다. 한 때 솔로몬 왕은 애굽에서 들여온 병거를 많은 차액을 남기고 헷 사람의 모든 왕과 아람 왕들에게 되팔았습니다(10:29). 그러한 군사력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이제 그의 후손 이스라엘을 위협하게 된 것입니다(29). 벤하닷은 "네 은금은 내 것이요 네 아내들과 네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니라"고 말하며, 많은 조공은 물론이고 여자들과 자녀들까지 노예로 넘길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는 매우 치욕적인 요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던 그들에게, 우상들은 지켜주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아무런 응답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갈멜산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직접 보았음에도, 끝내 하나님을 신뢰하며 엎드려 하나님께 묻기보다는 자신보다 강력한 힘에 머리를 숙이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는 이미 전세가 기울어졌다는 판단하에 아람왕 벳하닷의 요구를 듣자마자 수락합니다. 아합은 "내 주 왕이여 왕의 말씀 같이 나와 내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라고 합니다(4). 선지자들을 찾아서 죽이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며 악을 행하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였지만, 자신보다 월등한 힘을 가진 세력 앞에서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승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벳하닷이 여자와 아이들을 요구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고 한 나라로서의 존엄성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의 아내와 자녀를 볼모로 삼아 이스라엘을 원하는대로 마음껏 조정하겠다는 의도인 것입니다. 세상은 달콤한 유혹으로 믿음의 길을 포기하게 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길을 포기하고 세상을 섬기면 당당하게 불의를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세상의 요구 속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어떠한 존중도 존귀함도 없으며, 오직 노예와 같이 생각할 뿐입니다.
물론, 아합이 벤하닷을 향해 "내 주 왕"이라 한 것을 항복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벳하닷이 실제로 사마리아 성에 들어와 자신이 요구한 것을 직접 가져가려고 하였을 때에 아합은 분노하며 장로들을 모아 대책을 논의하였기 때문입니다(7). 그렇다하더라도 그가 아람 왕 벳하닷을 "내 주 왕"이라 칭한 것은 스스로 그의 신하를 자청한 것과 같은 것으로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를만큼 높던 그의 위세가 땅에 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두려워 하지 않았으면서도 눈에 보이는 벤하닷의 군사들과 말들과 수 많은 병거들은 두려웠습니다. 그러기에 벤하닷이 악한 마음을 품고 불의한 요구를 하고 있는 줄을 알면서도 그는 장로들 앞에서 "내가 거절하지 못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7). 벤하닷의 위세에 겁을 먹고 그와 어떻게든 화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벤하닷은 사신들을 보내 재차 아합에게 조공와 여자들과 아이들을 요구합니다(5). 재차 요구한 것은 듣지 않으면 곧바로 무력을 사용하여 빼앗겠다는 위협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벳하닷은 "내일 이맘때에 내가 내 신하들을 네게 보내리니 그들이 네 집과 네 신하들의 집을 수색하여 네 눈이 기뻐하는 것을 그들의 손으로 잡아 가져가리라"고 선언합니다(6). 특히, 아합 왕이 가장 아끼며 소중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모두 가져갈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합 왕의 것만이 아니라 "네 신하들의 집을 수색"한다는 것은, 무력으로 강탈해 가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은 만족할 줄 모릅니다. 처음에는 유혹하여 믿음에 실족하게 하고 자신에게 속한 자로 이용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끝내 약탈하듯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빼앗아 갑니다. 여기에는 약한 자에 대한 긍휼도 도덕과 상식도 없습니다. 세상은 강육강식의 논리로 약자들의 희생 위에 군림하고 그곳에서 자신들만이 우위에 서 있음을 만끼하며 즐깁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아합과 같이 두려움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을 확신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경외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눈에 보이는 권세와 불의한 재물과 불의한 인맥 등이 결코 우리를 해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위협 앞에서도 담대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어도 우리의 나라를 빠앗아 갈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합은 사마리아성 내에까지 들어와 약탈하겠다고 선안한 벳하닷의 말에 분노하며 장로들을 소집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를 논의합니다(7). 그러나 그것은 대적을 위한 논의이기 보다는 어떻게 그들의 요구를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장로들은 반대합니다. 그들은 "왕은 듣지도 말고 허락하지도 마옵소서"라고 벤하닷의 요구를 완강히 거부하도록 합니다(8). 아합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실제적으로 군사를 보유하고 있는 지역의 토호라고 할 수 있는 장로들의 거부의사를 왕은 수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합은 벤하닷의 사신들에게 말할 때에는 정작 장로들의 말과 같이 완강한 거부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완곡하게 말합니다. 아합은 벤하닷의 신하들에게 "왕이 처음 보내 종에게 구하신 것은 내가 다 그대로 하려니와 이것은 내가 할 수 없나이다 하라"고 말합니다(9). 즉, 조공과 여자들과 아이들은 볼모로 보낼 수는 있으나, 왕궁과 신하들의 집을 수색하여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보물들을 가져가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힌 것입니다. 이는 장로들의 거부의사를 수용하는 것같으면서도 자신의 목숨과 자신이 아끼는 재물을 지키기 위해 또다른 타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가 사신들에게 벳하닷을 "내 주 왕"이라 다시 한 번 언급함으로서 그의 심중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벳하닷은 "사마리아의 부스러진 것이 나를 따르는 백성의 무리의 손에 채우기에 족할 것 같으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고 경고합니다(10). 이는 곧 사마리아에서 얻을 것보다 자신의 군사들의 숫자가 더 많을 것이라는 말로서, 성을 먼지더미로 만들겠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아합은 이러한 벤하닷의 경고에 "갑옷 입는 자가 갑옷 벗는 자 같이 자랑하지 못할 것이라"고 대답합니다(11). 이는 아직 싸우기도 전에 승리를 장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벤하닷은 전쟁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성에 대한 진격을 명령합니다(12). 자신의 군사력을 과신하고 장막에서 술을 마시며 군사들을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이스라엘을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벤하닷의 이러한 조롱 속에서도 아합에게는 난국을 극복할만한 지혜도 계획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세상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도 단 번에 그것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의 모습입니다.
< 나의 기도 >
하나님을 믿음보다는 물질적 이익을 위한 선택을 하였던 솔로몬의 선택이 결국 부메랑처럼 돌아와 그의 후손들을 위협하고 있음을 봅니다. 만족할 줄 모르는 세상에게 맞추려하고, 그것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고 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세상의 어떤 힘에도 지배받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