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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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20 (화)

■ 열왕기상 19:1-21

[ 로뎀나무 아래에서 ]

로뎀나무는 싸리나무와 같이 가지가 무성하고 높지 않은 나무입니다. 그런데 아합과 이세벨의 체포령에 도망쳐온 엘리야가 그 로뎀나무 아래에 지친 몸으로 쓰러져 있습니다. 바알숭배자 사백오십 명을 갈멜산에서 칼로 가차 없이 죽였던 엘리야, 그것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갈멜산대첩으로 사람들에게 불릴 만큼 위대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큰 일을 감당하던 엘리야였지만, 아합왕으로부터 바알숭배자 사백오십 명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악녀 이세벨이 엘리야를 반드시 잡아 죽이겠다며 사신을 보내어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다"고 선언하자 엘리야는 꽁무니가 빠지도록 도망을 칩니다(1-3).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죽음을 각오하고 갈멜산에서 사백오십 대 일로 바알을 섬기는 숭배자들과 담대하게 믿음의 전쟁을 치뤘던 엘리야가 "자기의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서 자신의 사환을 남겨두고 다시 광야로 들어가 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가라고 청하고 있습니다(3-4). 한 때 담대하게 목숨까지도 내어놓고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 사명을 감당했던 엘리야는 간곳이 없고 자기의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하며 도망가는 무기력한 엘리야만 남았습니다. 죽기를 무릎쓰고 아합의 얼굴을 향해 담대하게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다”라고 말했던(18:18), 담대했던 엘리야, 죽었던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리고 갈멜산에서 불과 비를 내리도록 했던 엘리야, 모든 이스라엘백성들을 책망하고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촉구했던 엘리야, 칼로 사백오십명의 바알숭배자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였던 엘리야의 모습은 간 곳 없고, 이세벨의 체포령을 피해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자신의 사환까지도 중간에 버리고 광야로 도망가서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숨기지 못한 로뎀나무 밑에서 흐느끼고 있는 불쌍한 엘리야를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그토록 위대한 일을 행했던 엘리야가 어떻게 이세벨이라는 한 여인의 살해위협에 벌벌떠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는 이세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차라리 로뎀나무 밑에서 자신의 생명을 취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데 불안하고 두렵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처럼 불완전하고 연약한 인생이기에 연약함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붙든 선지자 엘리야도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대적들 앞에서는 지극히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세우신 선지자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가 영적으로 깊은 수렁에 빠져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명을 위해 먹이시고 입히십니다.

엘리야는 도망자의 모습으로 수고하고 지친 몸, 그리고 슬픔으로 인해 로뎀나무 아래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5). 로뎀나무는 가지는 무성하고 낮은 나무여서 한 사람이 쉴 수 있는 충분한 그늘조차 제공해주지 못하는 나무입니다. ‘로뎀나무’라는 그 이름 자체가 지금 사지에 내몰려 허우적대는 엘리야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는 죽기를 원했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살거면 조용히 죽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곳은 죽기에 안성마춤이었습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도 없고, 한 때 위대한 선지자였던 자신이 이렇게 불쌍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도 없어서 자존심 상하지도 않고, 도망자로서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한 상태에서 광야는 굶어죽기에 딱 알맞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죽기를 원했던 그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엘리야가 브엘세바에 사환을 남겨두고 홀로 광야로 도망간 것은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간 곳이 아니라 스스로 죽기 위해 간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리적으로도 브엘세바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남단에 있는 지역이고 사람이 살 수 있는 가장 한계선에 있는 땅입니다. 이제 그 한계선을 넘어서면 끝없는 사막이 펼쳐져있는 죽음의 땅입니다. 엘리야가 브엘세바를 넘어 광야로 들어갔다는 것은 이미 생명을 스스로 버리기로 작정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로뎀나무에 누워있는 엘리야를 오히려 은혜로 먹이시고 입히시며 쉬게하시고 다시금 충만한 영적회복을 이룰 수 있도록 하십니다(6). 성경은 이 모든 일의 주인공이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광야로 도망가 로뎀나무 밑에서 죽기를 바라고 있는 엘리야가 아니라, 죽기를 바랬던 그 로뎀나무 밑에서 오히려 엘리야를 살리시고 영적으로 회복시키신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로뎀나무 밑에서 잠들어 있는 엘리야를 위해 하나님의 천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7).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사자에 의해 잠에서 깨어나 음식을 제공받고 보살핌을 받습니다. 그가 자고 있을 때에 천사의 손에는 그를 위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은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향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과 섭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도우심과 섭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죽을만큼 힘들었을때, 죽으려고 뛰어 들어갔던 그곳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만나고 삶이 회복되는 경험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는 도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키심을 믿고 끝까지 선지자로서 자기임무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명조차 잊어버리고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도망간 엘리야를 하나님께서는 먹이시고 회복시키시고 계십니다.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그는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라고 말합니다(4). 자신의 삶이 하나님 앞에 충분히 쓰임받았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미 죽은 것과 같은 인생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엘리야는 낙심해져 있었습니다. 육체적으로 모든 힘이 고갈된 상태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가운데 아합 왕과 바알의 선자자들과 백성들 앞에서 능력을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나에게 힘이 되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직 나만 남았다”는 심각한 영적인 고갈상태에 빠져있습니다(10).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엘리아야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네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네 인생은 여기서 끝날 인생이 아니라 아직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 해야할 사명이 남아 있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음식을 공급하셔서 그의 소진된 육체의 원기를 회복시키시고, 자고, 깨고, 먹게 하심으로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완전히 회복시키신 다음, 하나님의 산 호렙산을 향해 밤낮으로 쉬지 않고 사십 일의 여정을 소화하게 하십니다(8).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로뎀나무가 있습니다. 사업의 위기,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육체적 질병, 가족간의 불화, 헤어나올 수 없는 경제적 위기 등이 로뎀나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로뎀나무가 무엇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곳이 오히려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인도하심을 절실하게 경험하게 될 자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밤낮으로 쉬지 않고 길을 갈 수 있는 체력과 영적인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호렙산까지 사십 일이라고 단순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지리적으로는 보통 인간의 능력으로 호렙산까지 사십일 만에 도착한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는 엘리야에게 주신 하나님의 회복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왕상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 이것은 엘리야 홀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만이 외롭게 하나님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을 뿐 이스라엘 안에서 아직도 우상숭배하지 않고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꿋꿋하게 믿음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이 칠 천명이나 있다고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닙니다. 힘든 가운데에도 드러나지 않지만 그러한 모든 것을 이겨내고 믿음으로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영과 육지 지치고 힘든 가운데 낙심하였던 엘리야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사십 주야를 걸어 호렙에 이르게 하신 은혜를 경험하고, 엘리야는 굴에 들어가서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물으신 하나님께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라고 탄식합니다(9-10).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산에 서게 하시고 크고 강한 바람으로 산을 가르시고 바위를 부수시며 지진과 불이 있으신 후에 세미한 소리로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터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15-16). 선지자들이 모두 죽고 자신만 남았다고 반복해서 불평하며 절망하고 있는 엘리야를 향해 다시금 사명을 불어 넣어주시고, 이스라엘 가운데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입맞추지 아니한 자들이 칠천 명이나 남았음을 말씀해 주십니다(18). 외롭고 쓸쓸하게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동역자들이 있음을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열두 겨릿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 엘리사를 만납니다(19).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겉옷을 던져줍니다. 옷은 권위와 능력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이제 엘리사에게 하나님께서부터 위임받은 권세와 능력을 위임한다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소를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고기를 삻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듭니다(20-21). "나만 남았다"고 불평하였던 엘리야에게 동역자 엘리사를 붙여주신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태를 보면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악한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며 부패와 타락은 극에 달해 있는듯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드러나지 않게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그를 통해 일하시기를 원하며,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며 "왜 제가 이 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말하기 전에, "왜 나만 항상 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불평하기 전에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믿음의 선포를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 나의 기도 >
하나님, 로뎀나무 아래에서 지쳐 쓰러진 엘리야와 같이 영적인 침체를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채우시고 먹이시는 강권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이 나의 능력으로 감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조성해 나가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더욱더 겸손히 주의 일을 감당하게 하시고, 믿음의 타협하지 않는 동역자들과 함께 흔들림없이 사명을 수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