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18 (주일)
■ 열왕기상 18:16-29
[ 신기루를 쫓아가는 어리석은 사람들 ]
목숨을 걸고 아합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였던 엘리야, 그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사명을 훌륭히 수행하였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한 엘리야에게 온 대가는 영광과 권세가 아니라, 이스라엘 전역뿐만 아니라, 이웃나라까지도 체포령이 내려진 신세가 되어 그릿시냇가에서 숨어 있어야 했습니다. 엘리야는 그릿시내가에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까마귀가 물어다 준 떡과 고기를 먹으며 지내야 했고, 시냇물을 마시며 연명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목숨을 걸고 악인 중의 악인이라 할 수 있는 아합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한 선지자에게 합당하지 않는 대우였습니다. 까마귀로 부터 먹을 것을 공급받았다는 것은 최소한의 생계유지만 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뿐 아니였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이 있었다면, 그릿시내가의 물이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계속 엘리야가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뭄이 들어 더 이상 그릿시내에도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를 먼거리를 이동하여 사르밧의 과부에게로 보내셨습니다. 보내시면서도 하나님께서 사르밧의 과부로부터 공급받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엘이야의 눈의 보이는 현실은 전혀 공급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떡 조각과 물을 가져다 달라는 엘리야의 부탁에 과부로 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이 남았으나 그것을 아들과 마지막으로 먹고 죽으려했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선지자가 머물며 먹고 자는 집이 더욱더 복을 받아 번성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상황은 극단을 향해 치닫습니다. 과부의 아들이 엘리야가 온 후로부터 병이들어 아프게 되었고, 과부의 아들이 병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속수무책인 채로 죽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결국 사르밧의 과부는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라고 항변합니다(17:18). 이는 당신이 오고나서 부터 우리집에 이러한 재앙이 있게 된 것이니 지금 나가달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이는 선지자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시련입니다. 목숨을 걸고 사명을 감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릿시냇가에서는 겨우 생명을 연명할 정도의 음식만을 공급해 주시더니, 사르밧의 과부의 집에서는 완전히 궁지에 몰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엘리야가 더 큰 사명을 감당할 수있도록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경험케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 앞에서도 끝까지 견뎌내야 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런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더 큰 역사를 감당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시는 분이 아니며, 택하신 목적에 합당하게 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엘리야에게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엘리야가 체포령에도 불구하고 아합에게 담대히 나아가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영적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아합은 엘리야를 보자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라고 묻습니다(17). 자신이 하나님을 괴롭게 하고, 백성들을 가뭄 속에서 고통받게 한 장본인이면서도, 정작 엘리야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악인의 특징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은 돌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고통과 괴로움을 오직 남의 탓으로만 여긴 것입니다. 엘리야는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고 대답합니다(18). 즉, 모든 괴로움이 아합의 불순종으로 인한 것임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멘 산으로 모아 엘리야 자신에게로 나아오도록 해달라고 합니다(19). 엘리야는 혼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그릿시내와 사르밧의 과부의 집에서 경험하였던 그에게는 두려움도 흔들림도 주저함도 없습니다.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뿐입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모든 백성들에게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고 책망합니다(21). 이러한 엘리야의 책망은 곧 백성들이 가증한 바알을 섬기면서도 연전히 여호와의 신앙을 따라 분향하고 제사하는 행위를 습관처럼 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과 하나님 중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촉구했지만 백성들응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불'을 내리게 하여 바알과 여호와 중 참 신을 선택하자는 제안에는 "옳도다"라고 반응합니다. 아합과 같이 그들도 여호와나 바알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여호와도 바알과 같이 자신들을 위해 필요할 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희생하며 헌신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만일 갈멜산의 대결로 바알이 살아있는 신임이 입증이 되면 선지자가 더 이상 선택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며, 공식적으로 바알을 섬기는 일을 승인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악한 인간의 속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도 아세라와 바알과 같이 자신들의 입맛대로 만들어 믿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겸하여 섬길 수 있는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서 내 삶 속에 들어와 있는 가증한 우상숭배의 흔적들은 없는지 살피고 버려야 합니다.
엘리야는 먼저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요 자신은 홀로 남았음을 언급합니다(22). 그리고 송아지 둘을 가져오게 하여 각각 한 마리씩을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을 붙이지 않은 채로, 서로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도록 제안합니다. 엘리야는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고 합니다(24-25). 숫적으로도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이 많다는 것뿐만 아니라 제물도 먼저 선택하도록 하고, 대결 장소도 바알의 주요 성지로 정하고 불의 신이 바알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 것입니다. 바알 선지자들은 아침부터 낮까지 제단 주위에서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불로 응답해 줄 것을 기도합니다(26). 그러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습니다(26). 여섯 시간동안이나 먼저 기도했으며 왕과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만, 그들이 섬기는 바알에게서는 아무런 소리도 응답도 없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들을 조롱하여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 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라고 합니다(27). 이는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엘리야의 확신이며, 죽은 신을 섬기는 그들에 대한 비난입니다. 엘리야의 조롱에 바알의 선지자들은 더욱더 큰 소리로 바알을 부르고 칼과 창으로 자신들의 몸을 자해하며 미친듯이 날뛰며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지만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도 없었습니다(28-29).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의 모습, 그리고 이들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는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세상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부러워할 권세를 가지고 있고 풍부한 물질과 많은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숫적으로도 훨씬 우세합니다. 이것은 성도들도 미혹받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나만 홀로 남았으나"라고 밝힌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길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물질적 풍요가 기다리고 있는 길이 아니라 외롭고 쓸쓸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갈멜산에서 많은 바알의 사백오십 명의 선지자들이 아합왕과 수 많은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도 아무런 소리도 응답도 없다는 것을 기록하며, 그들이 쫓고 있는 것은 신기루일 뿐임을 말씀하고 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이러한 세상을 이길 힘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며, "기도 응답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입니다. 내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려는 자는 오히려 세상에 삼킴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엘리야의 확신이 많은 것을 가진 그들을 향해 오히려 호령하는 모습을 통해, 성경은 세상과의 싸움에서 누가 이기게 될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나의 기도 >
하나님, 신기루와 같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쫓아가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나의 입맛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려는 것 또한 하나님을 금송아지 우상으로 여기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헌신과 희생없이 제자의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셨으니 주권자되신 하나님만을 섬기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