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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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16 (금)

■ 열왕기상 17:8-24

[ 비현실이 현실이 되게하는 순종 ]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말씀하신 대로 가뭄이 들자 그릿 시냇가에도 물이 말라 더 이상 엘리야가 그곳에 거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7). 하나님께서는 다시 엘리야에게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8-9).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목숨을 건 사명을 감당하고서도 그릿시냇가에 머물게 하셔서 까마귀가 가져다 준 떡과 고기를 먹고 시냇물을 마시며 지내게 하시더니, 이제 부유한 자도 아닌 과부에게 가서 음식을 공급받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선지자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과부라는 명칭이 말하듯, 당시의 과부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경제활동이 제한적인 것을 감안할 때에 만나보지 않아도 생계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자기 목숨을 내걸고 사명을 감당하는 엘리야에게 겨우 연명할 수 있을 정도만의 음식물만을 공급하신 걸까요? 우리의 상식으로는 더 풍족한 음식물을 공급받는다면 더 힘있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금 엘리야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철저한 순종"을 하도록 훈련시키고 계신 것입니다. 즉, 부정한 짐승으로서 음식을 공급할 수 없는 까마귀나, 자기 먹고 살기에도 빠듯할 과부를 택하신 것은 엘리야를 먹이고 입히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며, 생명이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음을 확신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물론, 엘리야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신앙일 뿐입니다. 앞으로 갈멜산에서 가증한 바알의 선지자들과의 영적 전투를 위해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해야 할 엘리야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대해 의심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훈련을 받은 엘리야는 그러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는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해달라는 기도를 할 때에도(18:36), 비가 내리도록 해달라는 기도를 할 때에도 일곱번이나 확인을 하고도 아무런 전조가 없었지만 전혀 흔들림없이 하나님의 행하심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18:44). 이처럼 이해할 수없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엘리야는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의 과부에게로 향했습니다(10).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자신의 상황이나 형편이나 조건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전적인 순종이 곧 전적인 능력이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갔지만, 산넘어 산입니다. 사르밧의 과부에게 이른 엘리야는 그녀에게 물과 떡 한 조각을 구합니다(10-11). 그것은 그릿시냇가에서 시돈까지 약 160km를 걸어온 선지자에게는 허기와 목마름을 달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성취되었고 온 땅에 가뭄이 들어 그릿시내의 물이 말랐다는 것은 여정 중에 물을 구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황당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9). 그런데 사르밧의 과부에게 돌아 온 대답은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이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12). 즉, 자신도 먹을 것이 없어 죽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르밧의 과부에게 보내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엘리야는 없는 가운데에서도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이 선지자 엘리야를 그릿시냇가에서 연단시킨 목적이기도 했습니다. 엘리야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고 말합니다(13). 가루 한 움큼으로 떡을 만들면 얼마나 큰 것을 만들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것으로 떡을 만들어 먼저 선지자를 대접하고 그 후에 아들과 함께 먹으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종을 대접하면 더 큰 것으로 받는다"는 미신적인 신앙의 행위를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엘리야가 그릿시냇가에서 경험하였던 "하나님의 주권"을 사르밧의 과부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만이 생사화복을 책임지시는 분이심을 과부로 하여금 경험토록 하게 한 것입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가루 한 움큼과 조금의 기름은 그 경험을 위한 도구였던 것입니다. 만일 과부가 엘리야에 말에 불순종하고 거절했다면 자신의 아들이 죽었을 때에 전적으로 생명이 하나님의 주권에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갈멜산 대첩을 위해 오히려 제한적인 상황에서 초라하게 생명을 연명하게 하심으로서 하나님의 주권을 경험하게 하셨듯이,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기 전에 그의 제한적인 식량으로 선지자를 먼저 공궤하게 하심으로서 하나님의 주권을 경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이 가장 작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초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을 경험케 하고 더 놀라운 역사로 인도하시는 도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가뭄이 그치고 비가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으며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합니다(15). 이는 비상식적이며 비과학적입니다. 사르밧의 과부로서는 도무지 용납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남은 가루와 기름을 선지자에게 공급한다는 것은 자신과 아들의 생명을 재촉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비과학적이고 비상식적인 것에 자신들의 생명을 맡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르밧의 과부는 순종하였습니다. 성경에는 그녀가 순종하였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다만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을 뿐입니다(16). 이는 성경이 과부의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초첨을 맞추어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 일이 있는 후에 과부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증하다가 숨이 끊어집니다(17). 성경은 "이 일 후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엘리야가 과부의 집에 와서 지낸 후에 아들이 병을 얻어 죽음에 까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이는 과부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시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종을 섬기고 공궤하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병들었고,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도록 능력을 행하였던 선지자가 아들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녀에게는 충분한 시험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라고 탄식합니다(18). 마지막 남은 것으로 선지자를 공궤한 과부가 아들을 잃었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어 버린 절망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과부를 완전한 절망의 상태에 까지 이르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역시 "하나님의 주권"을 증거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상숭배와 음행이 가득한 땅에서 하나님만이 살아계신 분이시며 생명의 주권자이심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실제로 과부의 아들을 받아든 엘리야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밖에는 없었습니다(19-21).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셨습니다(22). 이로인해, 과부의 입에서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는 고백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23).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던 것이었습니다, 과부는 자신이 가진 마지막 음식과 아들을 잃는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것을 주권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하나도 잃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살아계신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선지자를 통해 죽은 것과 같은 이스라엘에게 행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과부와 같은 자들입니다. 죄악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연명하는 그러한 사람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보내신 종들을 통해 선포되는 말씀을 신뢰할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모든 위기에서 건지시고 미래를 책임지시는 분이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나의 기도 >
하나님의 주권을 믿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상과 현상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모든 삶을 주권적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명령에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는 결단력을 주옵소서. 지금의 어려움에 좌절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더 큰 역사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기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16 (금)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