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15 (목)
■ 열왕기상 17:1-7
[ 그릿 시냇가에서 하나님의 때가 이르기까지 ]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 사마리아로 수도를 옮기고 이십 이년 동안 다스리게 됩니다(16:29). 성경은 아합이 그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6:30). 성경이 이처럼 아합을 평가한 것은 지금까지 이전의 왕들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비공식적으로 우상을 숭배하였고, 여호와 신앙을 금송아지로 변질시켰으나그래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목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공식적으로 이방의 우상인 바알을 들여와 숭배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합이 극도로 타락하게 된 것은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의 결혼이 가장 큰 원인이 되었습니다(16:31-33). 그로인하여 바알의 신전을 건축하였고 아세라상을 만들어 숭배하였지만, 아합은 오히려 그것을 가볍게 여겼습니다(16:31). 이처럼 그가 우상숭배를 가볍게 여겼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으면서도 전혀 죄의식을 갖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는 무섭습니다. 영혼을 잠식해가기 때문입니다. 처음 죄를 지을 때에는 불안하고 두렵지만, 차츰차츰 죄에 익숙해 짐에 때라 무뎌지고 나중에는 오히려 그 행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합이 죄악을 행하고도 가볍게 여겼다는 북이스라엘 전체가 심각한 우상숭배와 음행 속에 물들어 있었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 앞에서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우상을 만들고 섬기던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은 결국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세벨에 대하여 선지자 엘리야는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고 하였고, 아합에 대하여는 "아합에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고 예언함으로서(21:33-34),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려 아합과 이세벨은 물론 그들과 함께 성읍에서 먹고 마시던 모든 측근들까지 심판으로 멸하실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결국 아합의 피를 개들이 먹이로 삼았고(22;38), 이세벨은 예후의 창에 찔려 머리와 손과 발을 제외하고 모두 개들의 먹이가 된 것으로 심판이 성취되었습니다(왕하9:33-37). 하나님은 완벽한 자를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질투하시고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끊임없이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자를 온전한 자라 칭하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나아갈 길을 인도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아합은 자신의 죄를 죄로 여기지 않음으로 인하여 심판의 때에 참혹한 죽음을 맞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자기 편리를 따라 자기만의 신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마지막 심판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돌이키지 않았던 자들이 심판을 받아 영원한 형벌에 처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아합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가 있었습니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를 통해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게 하심으로서 그가 돌이킬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1). 그러므로 심판은 하나님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결국은 끝내 돌이키지 않은 자기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고 아합에게 경고하도록 하십니다. 아합은 하나님의 약속을 파기하고 바알을 충성되게 섬겼던 가증한 여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으며 스스로 바알이라는 우상을 들여왔지만, 엘리야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였습니다. 그의 이름 엘리야가 곧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의 출신인 길르앗이 "증거의 돌무더기"라는 점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들어서 아합에게 심판을 선고하신 것은 아합과 이스라엘이 누리던 모든 영화와 부귀와 권세가 돌무더기가 되어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선포하는 증거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합이 죄악을 행하면서도 "오히려 가볍게 여겼다"는 것은(16:31), 하나님을 죽은 신으로 여긴 것과 같았지만, 아합을 향해 심판을 선포하는 엘리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고 있습니다(1). 그러므로 엘리야가 아합에게 선포한 수 년 동안의 가뭄은 곧 아합이 숭배하는 바알과 아세라가 오히려 죽은 신들이며 허구라는 사실을 입증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도 돌이키지 않으며, 오히려 세상의 가증한 일들을 주저없이 따라 행하는 것은 아합과 같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죽은 신으로 여기며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며 그를 통해서 살아계신 분이심을 증거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러한 엘리야의 행적에 대하여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약5:17-18). 우리는 이러한 엘리야의 기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북이스라엘에서 살고 있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그 땅에 수년 동안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함으로 스스로도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좋은 것만을 구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도 극심한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재앙을 내려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이는 그가 자기 스스로의 평안 보다는 우상숭배와 음행이 가득해진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그 분의 살아계심만이 드러나기를 소망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나는 하나님 앞에 어떤 것을 구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죄악과는 상관없는 자로 나의 평안과 부요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소명을 잃어 버린 모습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악독함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목숨을 걸고 말씀을 성실히 전한 선지자 엘리야를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기십니다(2-3). 그리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4). 이는 외형적으로는 아합과 이세벨의 암살을 위한 추격에서 안전하게 지키시기 위한 것이지만, 내적으로는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후에 엘리야를 통해 아합에게 심판을 경고하실 때에 "아합에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들까지 포함시키셨습니다(21:33-34). 물론, 이는 아합과 함께 우상을 숭배하고 그의 뜻을 자발적으로 따르던 자들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더 깊은 뜻을 새겨본다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심판의 대리자로서 엘리야를 그의 땅에서 먹고 마시게 하지 않으시고 철저히 구별하여 하나님의 것으로 먹고 마시게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에게 이러한 제한적인 삶은 무척 고달프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말없이 순종합니다. 까마귀라는 한정된 공급처는 엘리야로서는 겨우 연명할 수 있는 수준의 음식의 양만이 공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불합리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역대에 가장 악한 왕인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에게 나아가 목숨걸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보상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하고, 심지어 쫓기는듯한 신세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부정한 짐승인 까마귀들을 통해 자신의 생계를 이어가며(신14:14), 은둔하며 지낸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한 선지자에게 합당한 것은 아닐듯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장차 갈멜산에서 바알을 숭배하는 가증한 선지자들과의 영적전쟁을 위한 하나님의 훈련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말없이 순종한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까마귀들을 통해 아침과 저녁에 떡과 고기를 가져와 먹을 수 있도록 하였고 시냇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5).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합을 향한 심판의 성취라 할 수 있는 가뭄이 시작되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성경은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7). 이는 엘리야가 제한된 상황 속에서 한정적인 음식물만으로 하나님께서 옮겨주실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고난과 한정적이고 제한적인 형편이 더 큰 하나님의 사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그릿 시냇가가 될 것입니다. 잘 견뎌야 합니다. 견디는 것은 나의 몫이고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 나의 기도 >
하나님, 지금의 형편과 처지를 비관하기 보다는 더 큰 사명가운데로 부르실 것을 기대하며 견디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은혜와 채우심이 나를 굶어 죽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하나님의 때가 이르기까지 훈련하시고 연단받게 하시는 것임을 확신하게 하시고, 믿음으로 묵묵히 말씀대로 순종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