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14 (수)
■ 열왕기상 16:15-34
[ 갈수록 악해지는 이스라엘의 왕들 ]
반란을 통해 권력의 자리를 차지한 시므리의 결말도 자신이 죽였던 바아사와 그의 아들 엘라의 처지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북이스라엘에서 칠 일동안 통치하였지만, 역시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을 향해 진을 치고 있던 군대 지휘관 오므리에 의해서 축출됩니다. 진 중에서 시므리가 모반을 꾀하여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의 무리는 오므리를 왕으로 삼고 시므리가 있는 디르사를 포위합니다(15-17). 결국 시므리는 성읍이 함락된 것을 보고 왕궁 요새에 들어가 스스로 왕궁에 불을 지르고 그 가운데에서 죽음을 맞습니다(18). 시므리의 왕권은 칠일 천하로 끝이 남으로서 북이스라엘의 열아홉 왕 중에서 가장 통치기간이 짧은 왕으로 기록됩니다. 그의 재위 기간이 매우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범죄하였기 때문이니라 그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9). 잔혹하게 왕을 죽이고 그의 가족과 친구들까지 죽이며 왕의 자리를 차지하였고 그는 왕위에 겨우 칠 동안만 있었을 뿐이지만, 성경은 그를 반역자로, 악을 행한 자로 기록함으로 모반은 성공했으나 실패한 인생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20).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었다고 하여 성공한 인생은 아닙니다. 한편,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 지역은 솔로몬 당시에는 이스라엘의 통치 아래에 있었지만(4:21), 솔로몬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세겜 디르사에 이어 북이스라엘 세 번째 수도인 사마리아가 함락될 때까지 줄곧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거점이 되어왔습니다. 그러므로 깁브돈은 이스라엘로서는 반드시 손 안에 넣어야 할 성읍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깁브돈을 차지하려는 싸움 중에 나답이 바아사에 의해 그곳에서 죽임을 당하고, 바아사는 다시 시므리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였으며, 오므리는 깁브돈에서 왕으로 옹립을 받고 시므리를 몰아내게 됩니다. 성경은 시므리가 바아사의 아들 엘라의 집뿐만 아니라 그의 친구들까지 잔인하게 죽였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데, 시므리 자신에게는 그러한 행위가 왕권을 확립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잔인하고 가증한 일이었으며, 이러한 잔인함이 이스라엘 군대로 하여금 오므리를 왕으로 추대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시므리는 환란 날에 도피처를 찾지 못한채 스스로 자살을 했습니다. 하나님만이 환란 날에 우리의 피난처가 되실 것입니다(시46:4, 렘17:17). 재물도, 세상의 권력도, 가장 믿었던 사람도 환란 날에 우리의 피난처가 될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겼던 북이스라엘에서는 끊임없이 반란이 일어나고, 다시 북이스라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왕으로 삼고 따르는 세력과 오므리를 왕으로 삼고 따르는 세력으로 양분됩니다(21). 이는 하나님께서 버려두신 북이스라엘에는 오직 약육강식의 힘의 원리만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왕이 없는 공백기와 같았던 북이스라엘에서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 속에서 백성들은 도탄에 빠질 수밖에 없었으며, 이들은 목자없는 양같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슥10:2). 오므리는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왕으로 삼은 세력을 물리친 후에야 북이스라엘의 공식적인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22). 오므리는 이처럼 군대를 등에 업고 왕이 되었지만, 백성들 절반의 마음을 얻는 데는 4-5년이라는 시간이 보내야 했습니다. 인간적인 야망과 그 야망과 결탁하여 편가르기에만 열중한 이스라엘엔 혼란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므리는 이제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 산을 사고 그 산 위에 성읍을 건축하고 수도로 삼았습니다(24). 그러나 이러한 오므리의 행위는 율법에 위배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토지란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영원한 하나님의 기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레25:23). 물론, 다윗도 이방족속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땅을 사기는 하였습니다(삼하24:21). 그러나 그것은 이방인의 땅이었고 다윗이 그 땅을 사들인 것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따라 신앙적인 목적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반면, 오므리가 사마리아 산을 산 것은 다윗과 같이 신앙적인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왕권강화를 위해 성읍을 짓고 수도로 삼기위한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오므리의 행위는 그의 아들 아합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아합은 기업으로 물려 받은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의 질서를 무시하고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21:1-16). 한 때 모압이 그의 치적을 비문에 기록하고,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오므리의 땅'이라고 부를 만큼 안정되고 부강한 나를 세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악한 왕이라고 말씀하십니다(25-26). 자신의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강화하는 일에는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지만, 정작 하나님의 일에는 무관심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가 이전의 모든 왕들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였음을 말하며, 그가 이처럼 헛된 것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26). 오늘 썩어져 버릴 헛된 것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므리는 사마리아 산을 매입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수도로 삼습니다. 이미 여로보암의 의해 건축된 왕궁이 시므리에 의해 불타버렸고(18), 북이스라엘의 두 번째 수도였던 디르사도 계속되는 내분과 반란으로 인해 피폐하게 되었으며(17-18), 외세의 침략에 적절히 대비하고 왕권의 안정을 위해서는 고지에 있는 사마리아에 성읍을 짓고 수도로 삼는 것이 매우 적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하나님 앞에 악한 왕으로 기록되었을 뿐이며,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아합 역시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게 됩니다. 성경은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겼다"고 기록함으로서(30-31), 북이스라엘 가운데 죄악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합 왕 때에 북이스라엘의 부패와 타락은 정점을 찍었습니다. 바알 숭배자 시돈 사람 이세벨과 정략적으로 결혼하여 사마리아에 바알과 아세라를 위한 신전을 세워 숭배했습니다(32). 아합의 통치 시기에는 이전의 왕들과 같이 모반도 없었으며 정치적으나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리던 시기였고, 국제관계에서도 안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역대 왕들 중에서 가장 악한 왕으로 하나님을 노하게 한 사람이었습니다(33). 한편,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습니다(34). 이는 이스라엘 역사 내내 기억되던 여호수아의 경고가 무시될 만큼 아합의 시대가 악했으며 백성들의 삶은 부패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점령한 후에 백성들로 하여금 맹세하게 하여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고 경고하였습니다(수6:26). 그러나 아합의 시대에 다시 여호수아의 말을 무시하고 여리고성을 재건했다는 것, 그리고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겼다는 것은 영적으로 암흑과 같은 시기였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점점 더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삶을 견고히 세우기 전에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인지 나의 탐욕에 따른 것인지를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견고히 세워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헛된 물거품과 같은 것일 뿐입니다.
< 나의 기도 >
하나님을 떠난 나라와 백성들의 악함을 봅니다. 갈수록 악하여져가는 이스라엘의 왕들 속에서 온 나라가 우상숭배와 음행에 물들어 신음하는 것을 보며, 이 시대 지도자를 세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전의 악행과 악습들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나라로 새롭게 세워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