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13 (화)
■ 열왕기상 15:33-16:14
[ 행한대로 그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 ]
유다의 아사 왕 셋째 해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블레셋과의 전투가 있었던 깁브돈에서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과 그의 집에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디르사에서 왕이 됩니다(5:33). 하나님께서 예후를 통해 바아사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그는 티끌과 같은 미천한 신분으로 왕이 된 사람이었습니다(16:10). 이는 그가 자력으로 왕의 권세를 얻었다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여로보암과 그의 아들 나답의 악행을 보시고 심판의 도구로서 바아사를 사용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아사는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고 백성들을 죄악 가운데 빠지게한 나답의 길을 답습합니다. 잔인한 왕에게 항거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바아사 또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말씀에 따라 겸손히 백성들을 섬기는 왕이 되기 보다는 쾌락과 자기만족을 위해 가증한 가나안의 우상을 숭배하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권세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정의를 잃으면 모든 공동체가 죄악 속에 빠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의 우상숭배와 음행은 마치 그것이 정상인것 처럼 일상화되고 전통으로 굳어져 가고 있는 듯합니다. 성경은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십사 년 동안 다스리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5:34). 그의 제위기간은 이십팔 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예후보다는 사 년이 적지만, 이스라엘의 역대 왕 중에서 예후 다음으로 오랫동안 통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고 백성들을 우상숭배의 죄 중에 행하게 했다는 것은, 통치기간 만큼 하나님 앞에 그의 악도 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후를 통해 그의 죄악을 고발하고 진노가 임할 것을 예고하십니다(2). 하나님의 진노는 그가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을 죽이고 그의 집을 쓸어 버렸던 것과 같이, 자신도 같은 운명을 맞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아히야가 여로보암에 말씀하신 것처럼, 예후 선지자를 통해 바아사에게 "바아사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그에게 속한 자가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4). 미천한 신분에서 왕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긴 교만한 왕의 집을 하나님은 왕의 자리에서 내려 이전보다 더 비천한 신분이 되도록 떨어뜨린 것입니다. 여로보암을 경고하였고 바아사를 경고하였던 하나님의 진노의 메시지가 내 자신에게 임할 메시지가 되지 않도록 날마다 말씀 앞에서 내 삶을 점검해야 합니다.
바아사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과 권세가 이스라엘 왕 역대지력에 기록되었으나, 오히려 그의 이름이 기록된 것자체가 불명예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5). 어떤 자리에 있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행하였느냐일 것입니다. 바아사는 결국 조상들과 함께 자고 디르사에 장사된 후, 그의 아들 엘라가 대신하여 왕이 됩니다(6). 디르사는 여로보암이 세겜에 수도를 정한 이래 바아사에 의해서 천도한 북이스라엘의 새로운 수도였습니다. 자신의 왕권강화를 위해 천도한 곳이 그의 매장지가 되었습니다. 넘보지 못할 이십 사년간의 권세도 결국은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그는 솔로몬이나 르호보암과 같이 왕통을 이을 혈통도 아니었고, 여로보암과 같이 큰 지파의 출신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는 여로보암 왕조를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쓰임 받았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였습니다. 그가 이와같은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깨달았다면 여로보암 왕조가 행했던 것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악한 왕들을 보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할 수 있는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다윗의 길로 행하는 길이며,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죽어 개들과 공중의 새들의 먹이가 된다는 것은 그의 사후도 매우 치욕스러울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아사를 여로보암의 집을 멸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가 여로보암의 집을 멸하고 왕이 된 것은 철저히 자기의 탐심과 권력욕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의 그러한 탐욕과 권력욕을 여로보암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하셨을 뿐입니다. 우리는 티끌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의인이라 칭해주셨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는 항상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겸손하게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래도록 이 땅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싶은 마음은 죄로 타락한 모든 사람들의 열망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사는 만큼 하나님 앞에 죄가 쌓여가고 더 깊은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인생에게 죄악 속에서의 장수는 오히려 더 큰 하나님의 진노를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남유다의 아사왕이 안정된 통치를 이어가는 동안, 북이스라엘에서는 반란을 통한 정권찬탈이 계속됩니다.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디르사에서 왕이 된지 이 년만에 왕궁을 맡은 아르사의 집에서 마시고 취하였을 때에, 병거의 절반을 통솔하던 시므리가 엘라를 쳐 죽이고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됩니다(8-10). 단 이 년동안 권세의 자리에 취해있다가 자신과 가문이 멸절당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그의 행적에 대하여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다는 것말조차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의 인생은 평가가 필요없을 만큼 무의미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시므리는 바아사에게 속한 모든 남자들, 친족이거나 친구들까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멸합니다(11). 그의 이러한 행위는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에서 행했던 악행보다 더 악한 것이었습니다(5:29). 즉, 시므리는 바아사의 집에 속한 사람들만을 멸절시키지 않고, 평소 그와 친분이 있었던 모든 자들까지 죽였으며, 엘라의 죽음에 대해 동정하는 세력들도 그렇게 죽였습니다. 이러한 시므리의 잔인함은 그가 후환을 없애고 오래도록 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으지만, 이는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였던 바아사와 그의 아들 엘라와 그들의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이처럼 시므리가 반란을 일으켜 바아사의 아들 엘라를 죽인 것은 불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을 향해 진을 치고 있을 때였습니다(15). 즉 시므리는 블레셋과의 전쟁 중에 왕궁의 수비를 맡아야 할 임무를 저버리고 술에 취해 있던 엘라를 죽인 것입니다. 엘라가 전쟁 중에 신하의 집에서 술을 마치고 취해 있었다는 것은 그가 백성을 돌보고 나라의 안위를 생각하는 왕이 아니라 철저히 자신의 쾌락과 팀욕만을 쫓는 왕이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시므리는 엘라의 심복이었습니다. 그가 왕궁의 수비를 맡았다는 것은 심복중의 심복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가장 믿었던 자에게 엘라는 배신과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이렇게 정권을 잡은 시므리는 불안한 출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바아사와 그의 아들 엘라에게 속한 자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친구들까지도 모두 죽였다는 것은, 시므리가 얼마나 혹시 있을 반란을 두려워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탐욕으로 얻는 재물이나 권력은 늘 불안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될 것입니다(시127:1). 하나님 약속에서 벗어난 자는 많은 재물과 권력을 갖고 있다 하여도 매일매일 불안하고 두려운 삶일 수밖에 없습니다.
< 나의 기도 >
하나님, 바아사와 그의 아들 엘라의 삶을 통해 행한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내가 악의 씨앗을 심어, 진노의 열매를 거두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않도록 지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