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12 (월)
■ 열왕기상 15:25-32
[ 다윗의 길인가 여로보암의 길인가 ]
유다의 아사 왕 둘째 해에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다스립니다(25). 성경은 그의 행적에 대하여 "그가 여호와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한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26). 나라를 분열시킨 아버지 여로보암의 죄악에서 벗어나 여호와의 신앙으로 새롭게 출발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아버지 여로보암과 같이 악한 길을 걷습니다. 자신의 통치기간을 영적각성과 회복의 기회로 삼지 못한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 아버지가 세워놓은 것을 충실히 행하는 것이 자식으로서의 도리이며, 나라를 강건하게 하는 조건이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는 유다의 아사 왕과는 대조된 모습입니다. 아사 왕은 솔로몬과 르호보암과 아비얌때에 행해졌던 우상에 대한 가증한 제사와 음행을 과감히 철폐하였습니다. 이는 유다가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 안으로 들어와 다시 회복되려는 노력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나답은 하나님께서 아버지 여로보암에게 약속하신 '다윗의 길'을 따르지 않고 '아버지의 길'을 따른 것입니다. 아버지가 세웠던 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전통을 따르는 것보다 하나님의 길로 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나답의 이러한 악행은 자신뿐만 아니라 북이스라엘 백성들 전체를 더욱더 타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왕의 우상숭배를 모든 백성들이 따라한 것입니다. 지도자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어져 내려오는 관습이나 전통을 무조건 받아들이기 보다는 어떤 것을 받아들이고 어떤 것을 버려야 할지에 대한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이처럼 나답이 아버지의 길을 따라 행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아버지의 길로 행할 때에 그의 왕위가 견고할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사가 통치하는 남유다가 안정을 찾고 강성하여져 가는데 반해 나답이 통치하는 북이스라엘은 불안정해졌고, 결국 이 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만 왕위를 지켰을 뿐, 잇사갈 족속의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반란을 불러오고 말았습니다. 이는 우상숭배와 음행에 젖은 북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전통을 따르는 것이 가정과 공동체를 지키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잘못된 전통을 버리는 일은 오히려 부모에게 효도하고 강건한 공동체를 세우는 일이 될 것입니다.
나답은 아버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내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여 하나님을 진노케 하고 백성들을 죄악의 길로 몰고가면서도 블레셋이 자신의 영토를 침범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고 전쟁을 하였습니다. 그가 싸워야할 대상은 만연해 있는 우상숭배였고 불신앙이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신앙의 회복을 뒤로하고 먼저 자신의 영토만을 빼앗기지 않는 일에만 급급합니다. 나답이 블레셋으로 부터 자기 영토를 지키려는 싸움이, 오히려 잇사갈 족속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모반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답은 불신앙의 현장에서 자신의 장수인 바아사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비참한 결말을 맞게 됩니다(27). 블레셋과 싸우기 위하여 깁브돈을 에워쌌지만 정작 내부의 또다른 악으로부터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바아사는 또 다른 반란을 막기 위해 나답뿐만 아니라 여로보암의 집을 쳐서 생명이 있는 자를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다 멸하여 버립니다(29). 이는 여로보암이 우상숭배의 길로 행할 때부터 이미 하나님께서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선지자 아히야는 여로보암에게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은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 더미를 쓸어 버림 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어서 죽은즉 새가 먹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니라"고 예언하였습니다(14:10-11). 결국, 나답이 죽임을 당하고 여로보암의 집이 멸절을 당한 것은 죄악의 길로 행하였던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성취되었음을 증거합니다. 바아사가 여로보암의 집에 속한 생명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죽인 것은 개인적으로는 후환을 없애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철저하고 정확하게 성취되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열왕기는 모든 왕들이 두 가지의 길 중에서 어느 한 곳을 선택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길은 '다윗의 길'이며, 또 한 길은 '여로보암의 길'이었습니다. 다윗의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며, 여로보암의 길은 우상숭배를 하고 가나안의 가증한 문화에 동화되는 길입니다. 지금, 내가 선택한 길은 어떤 길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잘못가면 다시 돌아와야 하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즉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길 위에 있습니다. 돌이키면 축복이고 돌이키지 않으면 저주입니다.
유다의 아사 왕 셋째 해에 바아사는 나답을 죽이고 그를 대신하여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28), "바알이 듣는다"는 그의 이름이 암시하듯, 그 역시도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행했습니다. 서로 죽이고 빼앗아 가며 각자 자신의 나라의 왕위를 견고하게 하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 삶은 허망한 것입니다. 살육과 배반을 통해 얻은 바아사의 권력은 그가 행했던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모반을 통해 멸족을 당하게 됩니다. 그의 아들 엘라 이 년에 병거 절반을 통솔하던 신하 시므리가 모반하여 그를 죽이고 왕이 된 것입니다(16:9-11). 이처럼 북이스라엘 내에서 반복되고 있는 모반은 왕들의 통치력이 약했다는 것이며 각 지파들의 결속력도 확고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블레셋의 영토인 깁브돈에서 자신의 신하였던 바아사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깁브돈은 가나안 정복당시 단 지파에게 배분되었지만, 끝내 그들이 차지하지 못하였음에도 애굽과 수리아를 연결하는 군사적인 요충지로서 점령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였던 곳입니다. 즉, 자신의 왕권강화를 위해 선택한 길이 배반과 죽음의 길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배신은 북이스라엘에 있어 악순환으로 자리잡습니다. 그러한 악순환에 대하여 성경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엽게 한 일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30). 여로보암은 절기에 예배하러 르호보암이 통치하는 예루살렘으로 백성들이 내려가지 못하도록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우고 섬기게 하는 등, 백성들의 결속을 위하여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통치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죄를 행하면 할 수록 그의 나라는 허약해지고 지파는 분열되어 모반이 반복되었습니다. 모반을 꾀하여 나답을 죽이고 왕이 된 바아사는 싸움에 능한 자였습니다. 그가 예루살렘 턱밑까지 진출하여 라마를 건축하려고 했던 것이 그 증거입니다(17). 또한, 그의 신분은 티끌과 같이 미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왕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싸움에 능한 자였다는 사실을 뒷받침 해주고 있습니다(16:2). 그러나 아무리 싸움에 능하고 재주가 뛰어나다 할지라도 자신의 부귀와 영화를 쫓는 자에게는 또 다른 배신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만 나와 나의 가정과 기업이 영원한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나의 기도 >
하나님, 순종의 길로 행하게 하옵소서. 내 힘과 의지로는 갈 수 없는 길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말씀을 붙들지 않고는 신앙적 결단에 이를 수 없으며, 내 안의 탐욕을 버리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지금의 권력과 부귀를 위해서 내 후손들이 누려야 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저주로 바꾸어 버리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