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10 (토)
■ 열왕기상 15:1-8
[ 죄악 중에도 등불이 되어주시다 ]
르호보암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비얌이 대신하여 왕이 되었습니다(14:31). 아비얌이 그의 아버지 르호보암의 뒤를 이어 유다의 왕이 된 것은 여로보암 왕 열여덟째 해 되던 때였습니다(1). 성경은 르호보암을 소개하며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사람이더라"고 반복해서 기록했던 것과 같이(14:21, 31),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얌을 소개하면서도 그의 죄악을 언급하기 전에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요 아비살롬의 딸이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2). 성경은 역대기나 열왕기에서 왕들의 행적을 기록하기 전에 약속이라도 한듯 그들의 어머니들에 대하여 밝히고 있습니다. 즉, 악한 왕들이나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왕들도 동일하게 그들의 아버지의 행위에 대한 선악의 여부를 판단하기 전에 그들의 어머니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가정에서 어머니가 자녀를 양육하며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주는 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던 다윗의 신앙이 솔로몬의 탐욕과 우상숭배의 과정을 거치며 르호보암과 아비얌때에는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희미해져 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부모가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혼합종교의 가증한 일을 행하는 동안, 아들은 그러한 어머니의 행위를 비난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하나의 전통이나 문화로 이어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는 아들로 세워져가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의 신앙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가정에 있는 불신앙적 요소와 탐욕과 우상숭배의 흔적들을 말끔히 씻어 내지 않으면, 자녀들은 지금보다 더한 우상과 탐욕 속에서 지내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잠23:14-15). 이처럼 채찍이라는 극단적인 수단까지 제시한 것은, 그의 육체가 잠시 고통받더라도 영원한 고통 속에서 잠들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강력한 권고임을 의미합니다. 아비얌은 그의 아버지 르호보암이 보기에는 믿음직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악한 자였습니다. 부모인 나는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으며, 어떻게 교훈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물질 앞에서 적당히 신앙을 타협하고 양보하도록 가르치고 있다면 아들의 미래를 부모 스스로 고통 속에 몰아 넣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얌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지만(3),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이 되어 주시되 그의 아들을 세워 뒤를 잇게 하시고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습니다(4).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것 외에는 평생동안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며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5).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완벽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도 간음하였고 불의한 살인을 하였던 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돌이켜 회개하고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의인 한 사람의 순종을 얼마나 기뻐하시고 잊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다윗 한 사람의 순종을 기억하시고 예루살렘의 등불이 되어 주신 것은 특별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등불이란 곧 내일을 위한 아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윗왕조는 솔로몬과 르호보암 아비얌을 거치며 타락하였고, 이후의 왕들 역시 하나님 앞에 죄악을 행하였으나 삼백오십 년동안이나 지속되었습니다. 이는 북이스라엘이 이백 년동안 아홉차례나 걸쳐 왕조가 바뀐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다윗으로 인해 유다를 각별히 사랑하셨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가 연약하여,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때로는 고의적으로 죄악 중에 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손길을 거두지 않으시고 선하신 뜻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영원한 약속 때문입니다(롬8:38-39). 아비얌은 그의 아버지 르호보암 때와 같이 우상숭배에 열중하고 있는 동안 내내 전쟁을 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만드신 평화의 신이지만, 우상은 내가 만든 탐욕의 신입니다. 탐욕이 지배하는 자들에게는 형제사랑이 없고, 제사장 나라로서의 정체성과 소명의식이 있을 리 없습니다. 세상이 조롱하든 말든 부끄러워할 줄 아는 능력을 잃은 채 서로 파멸을 재촉할 뿐입니다(6-7). 아비얌에게도 사십 만 군사로 여로보암의 팔십 만 군사를 이긴 빛나는 전과가 있지만(대하13:1-20), 성경은 오직 그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주님은 내가 한 일보다 내가 누구인지를 더 알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내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살아가는 지에 대한 것보다 내가 진실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았는지를 살피실 것입니다.
아비얌은 유다에서 삼 년동안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아버지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의 마음이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3). 르호보암은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우는 등 악을 행함에 있어 그 어느때보다도 타락했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남색하는 자가 있었다라고 증거함으로 르호보암 때의 사회타락의 단면을 말해주고 있습니다(14:23-24). 이처럼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얌은 그러한 가증한 행위를 그대로 따라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로보암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기도 하였지만, 그러한 공적으로 우상숭배와 가증한 행위들로 가득차 있던 그의 행적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는 없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었야 했습니다. 왕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가 펼쳐질 수 있도록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기 자신의 왕권강화에 몰두하였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백성들에게 부당한 노역을 강요했습니다. 이로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흘러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대를 이을 수 있는 아들을 주셔서 다윗 왕조가 대를 이를 수 있도록 하심으로서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해 가셨습니다(4). 이는 사람 왕에 의해서 나라가 세워져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세워주셨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비록 살인과 간음을 저지른 사람이었지만 그는 나단 선지자의 말에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의 전에 엎드려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삼하12:1-23). 회개는 하나님의 약속 안으로 돌아오는 방법입니다. 다윗의 회개가 진실한 것이었다는 것은 헷 사람 우리아의 사건 이후에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는 사실이 증거하고 있습니다(5). 다윗과 우리는 성정이 같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그의 후손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여전히 다윗과의 약속을 이행해 가신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이킬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영생의 약속은 불변합니다. 우리의 불의한 행위로 인해 그 약속이 취소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우리가 죄악 속에서 행해도 된다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 나의 기도 >
하나님, 죄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등불이 되어주셔서 내일을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내 속에 있는 죄에서 돌이키게 하시고,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합당한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