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0. 3 (화)
■ 예레미야 9:7-16
[ 겉과 속이 다른 거짓된 백성 ]
끊임없는 우상숭배와 음행을 행하며 하나님을 배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딸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7). 이스라엘은 겉과 속이 달랐습니다. 겉으로는 율법을 행하며 절기를 지키고 성회로 모이며 때에 따라 제사를 빠짐없이 드렸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바알을 좇으며 하나님 앞에 거짓을 행하였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죽은 것과 같이 여겼으며, 죽은 형상인 바알을 살아 있는 신처럼 추종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로 하여금 전쟁을 통한 심판의 말씀을 전하게 하였지만, 오히려 참 선지자로부터 전해지는 말씀에 귀를 막은 채, 지도자들은 거짓 평화를 전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니 평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모든 백성들이 영적인 중병에 걸렸으면서도 마치 가벼운 병인 것처럼, 자신의 죄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고, 누구나 죄에 대하여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로인해 백성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죽이는 화살과 같은 혀를 품고 겉으로는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며 마음으로 해를 꾸몄습니다(8). 즉, 일상 속에서 이웃들에게 친절하고 사랑이 많은 것처럼 행하였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부귀와 영화를 위해 이웃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해할 궁리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겉으로는 평화를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해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은 마치 늑대가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목자의 눈을 피해 양떼를 습격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을 연기하거나 취소할 이유를 찾지 못할만큼 총체적으로 썩어 있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7). 즉, 의사가 환부를 도려내듯, 대장장이가 뜨거운 불로 쇠붙이를 단련하고 두드리며 불순물을 제거하듯이 다시 새로운 것으로 지어내는 것과 같이 다루실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버리지 않으시고 연단하시겠다는 것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근원적인 관계인 '언약'에 대해서는 변함없이 지키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징계의 거센 불로 죄를 연단하여 예정하신 모양을 만들어가실 것입니다. 죄를 무조건 용서하고 품는 것만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더구나 나의 죄에 대하여 스스로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용서하실 것이라는 생각은 악하고 교만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을 공의로 다스릴 때에 오히려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다시 지어질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거룩한 모양을 하고, 속으로 갖은 거짓과 악을 일삼은 이스라엘의 종교생활에 대하여 "내가 이 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고 선언하십니다(9). 이는 마치 이스라엘을 언약밖에 있는 이방나라와 같이 대하시는 듯합니다. 그러나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향해 이처럼 말씀하시면서도 '내 딸 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표현은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는 분이신지를 증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안전하다고 장담하였던 예루살렘을 '광야 목장'이라고 부르십니다(10). 패역한 이스라엘이 안전한 곳이라 여겼던 예루살렘을 떠나 광야로 가시는 대신 예루살렘을 가축의 소리도 들리지 않고 공중의 새도 짐승도 없는 광야로 만들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안식처요 피난처라고 여겼던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이 떠나시면 철저히 파괴된 후에 황폐함만이 남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시면 아무리 견고한 성읍이라도 황폐해지고, 아무리 황폐한 땅이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생명의 땅이 됩니다. 번성하고 강성했던 민족이라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그들의 지경은 짐승마저도 사라지는 생명이 없는 땅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결코 무너지지 않으리라 장담하였던 예루살렘 성이 돌무더기로 변하며, 굶주린 승냥이만이 남아 있는 죽음의 잔해를 뜯는 참혹한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1).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도 증명되었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후, 비록 바벨론은 예배할 성전이 없는 곳이었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루살렘이 있는 곳을 향하여 예배하였던 다니엘을 통해, 그리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벤느고를 통해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분이심을 증거하셨고, 그들의 삶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내 삶 속에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종교적이고 형식적인 예배만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견고하고 높은 성을 쌓고 평안할 것이라고 장담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 곳은 황폐한 광야일 뿐입니다. 긍휼을 베푸시기 위해 오래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즉시 습관적인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만이 나의 주가 되심을 선언하고, 나의 삶이 하나님께서 거하실만한 성전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처럼 견고한 성읍이요 신앙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 성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황폐해진 것, 그리고 유다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벌겨벗겨진 채 끌려가 고통받게 된 것은 하나님을 떠나 조상들의 가르침을 따라 '바알'을 섬겼기 때문입니다(14). 바알을 섬기게 된 이유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첫째, 이스라엘은 율법을 버렸습니다. 율법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거였으며 언약이었습니다. 율법을 버렸다함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현실적인 가치"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풍요의 신인 '바알'만을 현실적인 가치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신화와 같은 것이며, 풍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돈만이 현실적인 가치가 되어버렸습니다. 둘째,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은 겉으로는 거룩하고 성별된 백성으로서 종교적인 행위는 철저히 이행하는 듯하였지만, 속으로 거짓으로 가득하였고 은밀히 자신의 마음을 따라 죄악을 행하였던 것입니다. 셋째, 마음을 완악함을 따라갔습니다. 이는 죄로 타락한 본성을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말씀으로 바로잡지 않으면 사람은 타락한 본성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들의 타락한 본성의 실체라 할 수 있는 육체의 쾌락을 쫓아 간 것입니다. 넷째, 조상들이 자신들에게 가르친 바를 따라갔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것인가를 판단하기 전에 조상들이 가르친 교훈을 진리처럼 여기고 추종한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결국은 바알을 따라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에 대해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고, 그들과 그들의 조상이 알지 못하던 여러 나라 가운데에 그들을 흩어 버리고 진멸되기까지 그 뒤로 칼을 보내리라"고 선언하십니다(15-16). 이는 가장 깊은 슬픔과 처절한 고통을 맛보게 하실 것이며, 자랑하던 모든 지경이 황폐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출애굽이후 한 번도 예레미야 선지자로 부터 전해지는 심판의 경고와 같은 일을 당한 적이 없었던 이스라엘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믿는 자는 심판의 고통에서 자유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내 심령가운데 호소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으로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 겉과 속이 다른 거짓된 백성으로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진실로 온전함이란 죄를 깨닫고 돌이킬 수 있는 것임을 알게 하셨사오니, 심판의 고통이 이르기 전에 습관적인 죄에서 떠나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