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0. 28 (토)
■ 시편 93:1-5
[ 영원하신 하나님의 통치 ]
하나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만물을 운영하시며 다스리십니다. 그 분의 통치는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통치는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입니다. 즉, 이 세상의 끝과 함께 하나님의 통치도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계시록에서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고 선포하였습니다(계11:15). 이는 상상의 나라가 아니라 주님의 왕국이 가시화적으로 확립되고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입은 모든 백성들이 위엄과 능력을 경험하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도래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도 맛볼 수 있습니다. 우주의 광대함과 모든 자연만물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드러내고 있으며, 모든 나라의 역사가 그 분의 운영하심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의 옷을 입으시며 띠를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라고 찬송합니다(1). 시인은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데, 그 다스림은 다른 피조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입으신 권위"에서 나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즉, 스스로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셔서 완전한 신적 능력으로 왕되심을 드러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권위란 사람을 복종시키는 능력을 말합니다. 권력이 따르는 사람들에게 강제성을 갖도록 한다면, 권위는 따르는 모든 자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권위 앞에 모든 피조물이 자발적으로 복종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권위는 먼저 영원성과 무한성을 통해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시며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3:14).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을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고 기록했습니다(사 46:9-11). 통치의 무한성과 영원성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어떠한 세상의 권력이나 통치자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 앞에 복종하며 그 분이 이끄시는대로 순종하는 것이 복된 삶의 시작입니다.
시인은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라고 찬송합니다(2). 예정가운데 사람을 지으시기 전부터,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하나님은 이미 통치자셨습니다. 세상의 권력은 힘과 능력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지만,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이 스스로 복종할 권위를 가지고 계시고, 그들이 살아가야 할 질서를 확립시킬 수 있는 온전한 통치를 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하늘과 땅에 오직 여호와만이 신적 권위를 지니신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분의 규례와 명령을 지켜 행할 때에 복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신4:39-40). 이처럼 하나님의 권위로 주신 규례와 명령의 완전함을 확신하는 것이 참 신앙의 출발점이 됩니다. 베드로 사도는 세상의 지도자들이 불의하게 행하는 권력까지도 기꺼이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 안에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완전한 예정과 인도하심을 믿는 백성이라면 선을 베푸는 통치자들 뿐만아니라, 불의를 행하는 통치자들의 권력과 권위 또한 인정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벧전2:18). 그러나 그것이 맹목적인 추종을 허락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권세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의 법은 인간사회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반원칙이며, 모든 권세 또한 뜻을 세워 가시는 하나님의 심오한 경륜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의한 권력에게 무조건 복종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한 권력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법이냐 세상의 권력이냐 양자택일을 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즉, 세상의 권세를 가진 자가 하나님의 법에 반한 것을 강요하거나 대립이 될 경우입니다. 그럴 때에는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말을 듣는 것이 옳은지를 먼저 판단하고(행4:19), 그들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과 대립될 경우 사람 통치자보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행5:29). 우리가 보기에 때로는 불의한 권력이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불의를 완전한 선을 이루어가는 도구로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근시안적인 사고와 지식으로는 이처럼 무한하신 하나님의 경륜을 깨달을 수 없기에 이러한 명령을 이해하고 나서 순종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오늘도 하늘 보좌에서 모든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권위 앞에서 복종하는 참된 백성으로서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큰 물은 큰 소리와 큰 물결을 내는 법입니다. 특별히, 시인이 하나님의 능력을 큰 물로 표현한 것은 그 능력의 영원성과 무한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3). 또한, 계시록에서는 큰 물을 대적들의 출몰 장소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모든 세력들까지도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안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크니이다"라고 찬송하고 있습니다(4). 큰 물은 출애굽 때에 이스라엘 백성의 앞 길을 가로막았고, 이는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는 그 큰 물을 갈라 자기 백성을 마른 땅으로 건너가게 하심으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권능을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리며 창수가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라고 찬송하였습니다(합3:10). 그러므로 주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다고 하였습니다(시125:1). 어떤 어둠의 세력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권능의 손길로 이끄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불가능이 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애매히 고난을 당하는 욥에게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고 하심으로, 모든 악의 세력조차도 하나님께서 통치하고 계심을 알게 하시고 위로하셨습니다(욥38:10-11).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모든 일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확실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권능은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삶을 통해 이러한 하나님을 경험하였고, 그 하나님의 통치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여호와여 주의 증거들이 매우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니 여호와는 영원무궁하시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5). 우리에게 주신 말씀과 그 행하신 기록들이 이처럼 영원무궁하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죄인이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그 영원무궁하심을 확실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증거는 곧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세상이 변하여도 하나님의 약속은 변치 않으며 그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그 약속이 나의 삶을 통해 성취된다는 사실을 확신할 때에 시인과 같이 하나님의 위대하신 통치를 받는 내 삶에 감사가 넘치고 찬송이 흘러 넘치게 될 것입니다.
<나의 기도>
영원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통치 앞에 내 삶을 온전히 드리게 하시고, 자발적인 믿음과 헌신으로 나를 통해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증거삼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