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0. 19 (목)
■ 예레미야 16:14-21
[ 죄에서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 ]
하나님의 심판은 멸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성결한 백성으로서의 회복을 위한 것입니다. 우상숭배가 관습처럼 자리잡고 음행이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린 유다백성들을 향해 예레미야 선지자로 하여금 심판을 선포하도록 하셨지만, "내가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고 하시며, 회복을 약속해 주십니다(15). 조상들에게 있어 가장 큰 은혜의 사건은 애굽에서 구원하여 주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바벨론에서의 칩십 년 동안의 포로생활에서 구원하셔서 다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같이 그들은 바벨론에서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와 성전에 오르며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라고 찬송했습니다(시126:1-3).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영원토록 버리시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알게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멸망으로 끝나지 않고 구원을 통한 회복으로 끝이 납니다. 아직 심판이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구원의 약속을 주심으로 약속을 붙드는 자마다 심판의 고통을 이길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눈으로 볼 때에 하나님의 심판은 멸망이나, 약속을 붙든 의인의 눈으로 볼 때에 하나님의 심판은 죄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능력의 손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약속을 살아계신 여호와의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셨습니다(14). 우리가 세상에서 환란과 핍박을 당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죄악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자마다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바벨론에서 이끌어 내셨듯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이신 예수 그리스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심판의 고통 속에서 구원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하나님 앞에 가망이 없는 인생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유다를 심판하시기 전에 이미 구원의 약속을 주신 것은, 그들이 누구였고 누구의 통치를 받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신 것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장차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죄의 무조건적인 용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구원은 완전한 죄값의 청산입니다. 그러므로 구원하기 전에 심판을 통한 징계는 반드시 감당해야 할 죄인의 몫입니다. 징계를 통해 부정하고 가증한 우상으로 부터 여호와의 땅을 더럽힌 악에 대해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회개하는 자는 구원의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을 향해 "내가 많은 어부를 불러다가 그들을 낚게 하며 그 후에 많은 포수를 불러다가 그들을 모든 산과 모든 언덕과 바위 틈에서 사냥하게 하리니 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살펴보므로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기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숨겨지지 못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16-17). 어부의 그물은 작은 고기라도 빠져나가지 못할만큼 촘촘합니다. 그러므로 어부의 그물로 낚게 하시고 포수를 부르신다는 것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은밀한 모든 죄가 심판대 앞에서 드러날 것이며, 내 자신조차도 잊혀질 정도로 오래된 죄악이라도 현재의 죄악처럼 마주대하게 될 것입니다. 포수는 사냥감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추격하여 잡습니다. 이처럼 마지막 악인까지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죄에 대한 무조건적인 용서나 묵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철저히 백성과 죄악을 떼어 놓아 성결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숨기지 못할 것입니다(17). 유다는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지은 죄보다 더 큰 징계의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18). 이는 더 큰 고통이라는 의미보다는 죄악을 완전히 떨쳐낼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대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뿐만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에게도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고 선포하도록 하셨습니다(사40:2). 물론, 이사야 선지자는 예레미야 선지자보다 약 100년 전의 사람으로서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즈음에 활동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시기에 활동했던 이사야 선지자나, 바벨론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현장을 보고 동족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것을 본 예레미야 선지자나 "악과 죄를 배나 갚을 것"이라고 동일하게 외친 것입니다. 이는 지속적인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끝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교훈으로 삼지 못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인정하고 약속의 실체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오는 자마다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구원은 곧 이전의 내가 심판으로 인해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다시 새롭게 지음받은 내가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값진 피값으로 받은 은총에 대한 참다운 반응은 내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달게 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이 온 열방 가운데 선포되고, 심지어 이방인들까지도 자신들의 조상이 물려 준 것이 허무하고 무익한 것이었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나아올 때가 있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19). 그리고 오늘 모든 열방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됨으로 그 일이 성취되어가는 실상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힘이며 요새이며 환난 날에 피할 피난처가 될 것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열방이 여호와께 돌아와서 조상 때부터 행해 온 우상숭배가 얼마나 허망하고 거짓되고 무익한지를 인정함으로서, 여호와 하나님만이 살아계신 참 신이심을 증거하게 될 것을 선포합니다(20). 또한, 이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시기 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온 열방이 주께 나아오고 구원을 얻게 될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구원은 어떤 특정한 나라나 민족의 전유물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전적인 예정과 인도하심은 결국 이방인들조차 하나님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21). 자기 백성을 죄악으로 인한 고통에서 구원하시고 다시 약속의 땅에서 번성하게 하실 하나님을 보며 모든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손으로 행한 일이며 능력이라는 것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지금의 고통스러운 상황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에는 실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 속에서도 구원의 약속을 붙든 자는 실족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들 가운데 살아계시고 역사하셔서 그 이름을 드러내실 하나님의 영광을 입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끊임없이 죄악에 대하여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살아계신 능력의 손길을 증거하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기도>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요 요새이며 피난처가 되심을 인정하고, 허망한 세상의 것들로 내 삶을 가득채우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