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새해 두 번째 날이네요. 그다지 안 중요할지도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실질적 올해의 첫날같이 느껴져서 좀 마음 단단히 먹고 시작하게 되는 날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할 내용은 미술사 이집트 편의 마지막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2가지 크게 나누어서 정리할 예정인데요. 이집트의 저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왕 투탕카멘과 이집트 후기 이집트의 4,000년 역사 동안 고정되어있던 법칙을 조금은 벗어난 아크나톤 파라오의 이야기입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이집트 양식의 변화의 주인공.
BC.1344~BC.1328년 동안 이집트 신왕국 시대를 지배했던 파라오. 그의 이름은 아멘호텝 4세이며 세상에 더 알려진 이명은 아크나톤(Akhenaten)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이명은 파라오 스스로가 지은 이름입니다. 그는 당시에 아톤(Aton)이라는 태양신을 유일신으로 숭배했고 그의 이름을 따서 아크나톤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하여 자신을 신과 동일시 시켰는데 그 이유는 당대에 신전의 사제들의 힘이 굉장히 강하고 왕권에 위협이 되어서 일종의 종교개혁과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그리고 미술사적으로 이 시기가 중요한 이유는 기존의 법칙을 상당수 벗어나 제작된 유물들 때문입니다. 앞서 소개했던 이집트 미술의 특징은 왕비는 파라오에 비해서 작게 그리고 항상 파라오는 권위있고 엄한 모습을 그렸는데 그의 그림을 보면 그의 왕비와 그는 같은 크기로 그렸고 그의 딸들을 무릎에 앉히고 화기애애한 장면이 그려졌고. 그의 왕비인 네페르티티의 두상또한 거의 본인의 모습을 완벽히 재현하였고 이집트의 유물이라기 보다는 그리스의 조각처럼 보일만큼 양식에 벗어난 유물입니다.
-딸들을 안고있는 아크나톤과 네페르티티/ BC 1360/독일 베를린 국립박물관 소장
-네페르티티의 흉상/BC 1360/독일 베를린 국립박물관 소장
위의 자료로 보이듯이 아크나톤의 재위기간 동안은 파격적인 개혁을 펼쳤으나 그의 사후 11대 파라오 세멘크카라가 재위 3년만에 사망하면서 9세의 어린 왕 그 유명한 투탕카멘에게 왕위가 넘어가게 되었고 결국 그를 보좌하는 신관들에 의해서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어린 왕의 저주. 투탕카멘.
그의 정확한 이름은 투트 앙크 아멘이라고 합니다. 그는 위에 언급된 아크나톤 파라오의 조카나 아우라고 하는데 그의 왕비는 아크나톤의 3번째 딸인 안케센아멘입니다. 사실 그의 존재는 이집트 역사상 너무나 미미합니다. 재위기간은 BC1361~BC1352로서 9세에 즉위해 18세에 사망하고 그 사인조차 알려지지 않아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파라오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알려진 이유는 그의 왕묘는 도굴되지 않은채 발견된 유일한 무덤이기에 안에 유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그 가치가 엄청났기에 발굴된 1922년 당시 엄청난 이슈가 되었습니다. 발굴자는 영국인인 하워드 카터에 의해 발견되었고 당시 출토된 유물로는 미라를 덮은 왕의 황금가면, 파라오와 그 왕비가 새겨진 황금 의자등등 유물들이 출토되었습니다.
-투탕카멘 왕의 마스크/BC 1352/이집트 박물관
-투탕카멘과 그의 아내/BC 1330/ 이집트 박물관
위에 제시된 그림은 황금 의자의 등받이 부분에 새겨진 그림입니다.
그리고 엄청난 이슈만큼 다른 이유로 이 유물들은 유명합니다. 바로 발굴에 참가한 조사원 20인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의문의 죽음을 차례로 겪어 ‘파라오의 저주’라는 기사가 당시에 쏟아졌으나 오히려 이는 대중들의 관심을 자극해서 박물관 순회 전시때 역대 최고 인원을 대동할 정도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