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을 논리적, 개념적으로 발명한 앨런 튜링의 역사적 논문 "계산 기계와 지능"(1950)을 한국어로 최초 완역했습니다. 2018년 2월 27일 첫 번역을 올린 지 19일째 되는 3월 17일, 총 14회에 걸쳐 스팀잇에 독점 연재했습니다. 아직은 뉴비 @armdown 철학자입니다. (armdown은 '팔 내려'가 아니고 '아름다운'입니다.)
연재 이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10회 11회 12회 13회 14회 이 내용은 정밀한 수정을 거친 후 다시 하나의 포스팅으로 올릴 예정이지만, 이 과정 자체는 영구히 스팀잇에 박제될 것입니다.
원어로 글을 읽는 것과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아주 다릅니다. 두 가지 쟁점이 있습니다.
첫째, 원어로 읽을 때는 잘 해석되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건너뛰고 '대체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특히 주요 논점과 관련되지 않는 부분은 아무래도 설렁설렁 읽게 되지요(시간이 없잖아요). 번역할 때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모든 문장을 빼놓지 않고 옮겨야 합니다. 가끔 그런 부분에서 어려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경우는 대체로 시간상의 어려움입니다(바쁜데 이걸 다 옮겨야 돼?). 그래서 원서를 읽고 논문을 쓰는 일이 훨씬 쉽습니다. 필요한 대목만 참조하면 되니까요.
둘째, 원문을 이해한 뒤에는 한국어 문장으로 완전히 다시 써야 합니다. 원저자가 품었을 생각을 원어로는 이렇게 표현했는데, 그가 한국어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했을까? 어렸을 때는 이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알려준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문장 대 문장으로 (다분히 기계적으로) 직역하면 된다고 보았습니다. 지금 달라진 게 있다면, 원저자의 '생각'을 한국어로 '표현'하는 것이 번역이라는 '번역관'의 정립입니다. 이 경우 원저자가 원어로 잘못 표현했었을 경우까지도 고려하게 됩니다. 아무튼 번역문의 최종 독자는 한국어 독자입니다. 독자가 읽을 수 없다면 번역에 문제가 있는 거지요. 번역이 아주 좋으면 어느 순간 번역자는 괄호에 들어가고 원저자가 글을 잘 썼다고 여기게 됩니다. 읽기 힘든 순간마다, '어, 이거 번역이 왜 이래!' 하며 번역자가 호출됩니다. 번역자는 그렇게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저는 번역을 싫어합니다.
튜링의 논문을 번역할 때 느낀 어려움은 일일이 다 얘기하기 어렵네요. 그래서 여기서는 매력 부분을 말해 보고 싶습니다. 전에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2017)를 쓰면서 읽을 때 눈에 들어왔던 부분과, 이번에 한 줄씩 옮기면서 발견한 부분이 좀 달라서 저도 놀랐습니다. 당시에 중요하다고 본 대목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아이디어가 풍부했거든요.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튜링은 굉장히 많은 획기적 시도를 했고, 그건 깊은 의미에서 철학적이었습니다. 가령 '생각한다'라는 말을 직접 정의하는 대신, 왜냐하면 그건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했다고 보았으니까요, '흉내 게임'을 검사 방식으로 고안해서, 그걸 통과하는 존재(agent, 에이전트)라면 무엇이든 '생각한다'고 판정하자는 식의 아이디어 말입니다. 또한, 자기 논의에 대해 예상되는 반론을 모조리 검토하고 재반박하는 대목은 논문의 압권입니다. 이건 다 책에서 논의했었지요.
이번에 발견한 건 오늘날 AGI(강인공지능, 범용인공지능,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튜링의 믿음이 생각보다 확고했다는 사실입니다. 때이른 죽음이 아니었으면 논리를 어떻게 확장하고, 그 스스로 프로그래밍을 어떻게 해나갔을까 하는 궁금증이 더 강하게 들었네요. 논문을 읽을 때, 이 주제에 대해 더 눈여겨 보기 바랍니다. 훗날 호프스태터, 데닛, 커즈와일, 보스트롬, 하라리, 테그마크 등이 전개한 논증들이 튜링에 비해 너무 초라해 보이는 건 왜일까요?
독자에게 알려드릴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튜링의 논문은 총 9개의 참고문헌이 있습니다. 디지털 컴퓨터를 논리적, 개념적으로 처음 발명한 튜링 자신의 1936년의 논문(발표는 1937년)을 비롯해 총 8개의 문헌이 1950년 본 논문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언급되지 않고 참고문헌에만 있는 글이 딱 하나 있습니다. 영국 작가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ler)가 1865년에 출판한 '에레헌(Erewhon)'이라는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박사학위논문을 쓰면서 참조했습니다. 전적으로 들뢰즈와 과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1972, 참고 링크) 덕분입니다. 그런데 '똬악!' 튜링의 논문에도 참고되고 있었던 겁니다. '에레혼'은 흥미로운 책이고, 특히 '기계'에 대해 완전히 다른 발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책입니다. 저는 튜링이 '생각하는 기계', 즉 인공지능을 생각하게 된 건 기계에 대한 고정관념을 뛰어넘게 해준 '에레혼' 덕분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몇 가지 이유에서 시작한 번역이었고, 다행이 스팀잇 플랫폼이 그 과정을 박제해 줄 것으로 기대했기에, 연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격려와 댓글, 보팅, 리스팀 등 여러 모로 도움이 많았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전문을 수정해서 포스팅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겁니다. 관심 있는 분은 지금 이 포스팅을 리스팀해서 블로그에 저장해 놓고, 야금야금 꽃감 빼먹듯이 한 편 한 편 읽으시기 바랍니다.
반응이 좋다면 다음에는 한 1년~2년에 걸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연재할까 합니다(지금까지 10종 넘는 번역이 나왔는데, 감히 말하자면, 니체의 사상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번역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