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비 철학자 @armdown입니다. 이번 글은 '이과와 문과를 이어야 한다 (1편)'에 이은 글입니다. 개인적인 일정이 있어서 연재가 들쭉날쭉하더라도 계속 써갈 생각입니다.
이과와 문과가 구별된 건 순전히 '제도' 때문이다. 명목상으로 이 제도는 없어진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효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우선 대학에 이과와 문과가 엄존하고 있고(교수들은 당분간, 아마도 한참 더, 바뀔 생각이 없다), 따라서 선발 과정에서 이과와 문과에 속하는 학과마다 선택과목 가중치가 달라지고, 이게 되먹임되어 학생들의 교과 선택에 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 현행 문이과 구분과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꽤 오랜 기간동안 대략 고2 정도에서 이과와 문과를 정하게 되는데(예체능계는 별도의 구별이 없고, 입시에서 선택하는 과목만 다르다), 현실적으로는 수학 과목을 얼마나 잘하느냐 여부에 따라 나뉘곤 했다. 곧 '문과=수포자'가 공식처럼 통용되었던 것이다. 물론 문과라고 수학을 다 못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수학이나 과학을 공부하는 절대시간 자체가 부족한 건 사실이다.
이러한 사정은 어떤 결과를 낳느냐 하면, 문과는 본래 수학을 못하거나 관심이 없어서건 공부 시간이 부족해서건 '수학에 약하다'는 귀결로 이어지며, 이과는 본래부터 잘해서였건 공부 시간이 많아서였건 '수학에 강하다'는 귀결로 이어진다. 이러한 경향은 대학에서 더 심화되며,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면, 수학이 들어가는 영역과 관련해서는 어지간해서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경제학이나 통계학의 경우는 예외적이다).
여기까지는 다들 잘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석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진짜 이유가 여기서부터 드러난다. 지난 1편에서 밝혔듯이, 나는 이과와 문과 두 영역을 모두 공부한 경험이 있고, 두 커뮤니티의 차이를 꽤 많이 느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수학'을 중심으로 이과와 문과의 차이를 구분한 건 실제 현실에서 구분 기준이 그렇기 때문이지만 다른 한편 '수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이기도 하다.
수학이란 무엇일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교과목은 아니다. 수학은 그 자체로도 논리적 체계이지만 자연과학 및 응용과학(공학)의 언어이기도 하다. 그런데 수학이라는 언어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자연어와 판이하게 다르다. 세상에 두 종류의 언어가 있다는 점을 알지 못한다면 왜 이과와 문과의 벽이 그렇게 높은지 결코 깨닫지 못할 것이다.
(아래에 내가 지은 책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2017)에서 이 둘의 차이를 서술한대목을 덧붙인다.)
"과학혁명의 진짜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이 시기에는 기존 세계가 무너진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우리 세계의 터전에 있다는 점이 처음 알려진 겁니다. 과학혁명은 우리가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것들human experiences이 자연의 실상과 다르다는 충격을 주었습니다. 우리의 경험 세계와는 또 다른 세계가 우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이 세계는 수학이라는 언어를 통해서만 포착됩니다. 그래서 과학혁명 이후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가 둘이 되었어요. 하나는 일상어이고 다른 하나는 수학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진화 과정에서 생겨난 일상어를 쓰지만, 여기에 더해 수학으로 기술되는 자연과학이 창조된 겁니다.
1만 년 전 인간과 지금의 인간은 몸으로 하는 경험에 있어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사람은 대략 1세제곱미터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물들은 대략 그 규모를 기준으로 지각됩니다. 실내를 한번 둘러보세요. 그것보다 워낙 크거나 작은 것은 접하기도, 접근하기도 힘듭니다. 인간중심주의가 생겨난 이유도 거기에 있고요.
자연과학이 발전하기 전, 그러니까 15~16세기까지를 염두에 두면 세계에 관해 얻은 지식은 모조리 감각을 통한 지식이었습니다. 태양이 쟁반 정도 크기에 200걸음 정도 떨어져 있다고 아는 식이었지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가 나온 것도 그래서입니다. 해와 달이 비슷한 크기로 비슷한 거리에 있다고 보았던 거죠. 그런 수준의 지식으로 논의된 철학은 자연에 대한 앎과 관련해서는 별로 쓸모가 없어요. 가치와 관련된 논의들, 가령 윤리학이나 미학 같은 철학 논의는 여전히 통찰을 주고 있지만요.
실제로 측정해보면 태양은 빛의 속도로 8분 19초 걸리는 먼 곳에 있고, 평균 지름은 지구의 109배입니다. 우리 세계를 실증적으로 좌우하고 결정하는 것은 수학과 과학이 알아낸 세계입니다. 이 세계는 보통의 감각으로 아는 세계와 차이가 너무 커요. 이제는 없으면 살아가기 어려울 정도인 휴대전화는 철저하게 수학과 과학과 공학이 결합되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그 세계가 진짜 발판이지요.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일상 언어로 포착할 수 없다고 해서 없는 세계는 아니라는 겁니다. 데카르트나 로크 등 근대철학의 시발점에 놓여 있는 사람들은 자연과학이 알려준 세계에 충격을 받았고, 어떻게 해야 실상에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우리의 체험으로 실제 세계를 정확히 알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근대철학에서 인식론epistemology, theory of knowledge이라는 분야가 탐구한 물음입니다. 인식론은 근대철학의 중심에 있었습니다."(261~263쪽)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