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색 벽돌 빌라는 내 어린 날의 초상이다. 비오는 날과 먹먹한 먼지 냄새. 문득문득 그 간극 속에서 끌어 올려지는 기억. 갑작스레 비오는 날, 새벽, 어린 날의 기억들이 먼지처럼 피어오르기 마련인 것처럼. 우리는 모두 기억의 우물, 기억의 쓰레기 매립지 위에서 살고 있다.
언젠가 수필 같은, 동화 같은 일을 기록해보자고 느낀 적이 있었다. 대게 그런 것은 유아기의 파편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에 우리는 흐릿한 기억의 매립지를 서성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래 된 기억은 기억과 기억의 거대한 무덤 가장 깊숙이 잠들어 있기에, 늘러붙어 찌그러지고 압축되어 변형된, 아, 사뭇 아름답게 변질되어버린, 그저 감상의 카니발에서 고요히 위스키를 홀짝이는 불청객 같은 존재. 문득 그것을 깨닫는 순간은 우리가 그 모든 것들을 옮겨 적은 이후이기에 언제나 슬프다.
나와 아버지의 갈등은 오랜 아름다움에 기초한다. 아름다움은 공존이다. 슬픔과 사랑의 공존. 그것으로 모든 미학을 설명할 수 있다. 아버지의 세계는 1980, 민주주의로 점철된 투쟁의 세계였고 그가 결혼한 90년 대는 정치적으로 투쟁과 굴복 사이의 과도기였다. 더불어 그의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자리한 순간 그는 해방된 고통의, 변두리에서 행복을 빚 질 권리를 얻었다. 아버지는 나를 갖고 난 후 부터 자유로운 투사, 혁명의 소대장, 명예의 성화라는 모든 직책에서 해방된, 그저 추락한 변절자가 되었다. 나는 문틈으로 빼꼼히 고개를 들이민 행복이었지만, 예측하지 못한 기쁨이었고 이는 곧 빚이다.
갓난 아이에게 붙은 아픔의 수사학은 갖은 변용의 남용적 결과를 운명적으로 초래한다. 나의 유년은 결코 부족하지 않은 사랑으로 채워졌지만, 넓지 않은 방 세 개 짜리 빌라에는 저녁이면 슬그머니 노을이 다가왔고 다시 어머니가 시작하는 아침과, 따듯한 밥과, 투정 부리는 아이와 와이셔츠를 입는 아버지로 가득 찬, 어린 나의 일상은 다소곳하게 요란한 치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