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에 서울 송파구에서 한 가족이 자살했다. 이유는 가난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살아가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에 정부가 한 일은 여기저기에 전단지를 뿌리고 현수막을 내걸기였다. 내용은 복지제도가 잘 되어있지만 홍보가 안 되어졌기 때문에 가난한 이들이 이를 몰라서 이용을 안 하고 있다. 주위에 가난한 이가 있으면 주민센터에 알리라였다. 물론, 이는 빈 말이었다. 가난한 이들이 이를 몰라서 이용 안 하고 있지는 않았다. 주민센터에 가봤자 자녀가 젊으면 실제로 일을 하기 힘들어도 복지혜택을 받을 수 없었고, 부모, 자녀, 며느리, 사위 들이 재화가 기준에 不達하든지 아파야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요즘에도 마찬가지다. 자기의 자녀와 연락을 안 하고 사는 노인이 많다. 자기의 자녀와도 인연을 끊고 사는데 며느리, 사위 들과 연락을 하고 살겠는가?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호대상자가 되려면 자기의 자녀, 며느리, 사위 들이 가난해야 한다.
이는 웬만하면 국민기초생활보호대상자가 되지 않게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국민기초생활보호제도와 다른 제도를 비교해보면 명확하다.
보육수당, 양육수당, 아동수당 따위를 받으려면은 자격이 별로 필요없다. 웬만하면 다 받는다. 기준이 있지만 느슨하다. 자기의 자녀가 만 5세이하면 웬만한 이는 다 받을 수 있다.
최근에 정부가 발표한 청년지원책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체에 취직하면 청년내일채움공제를 통해서 3년 동안에 24,000,000원을 거저 주기로 했다. 교통이 불편한 곳에 있는 중소기업체에 취직하면 교통요금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정부는 돈이 많다. 돈이 없기 때문에 가난한 이들을 돕지 않지는 않는다. 돕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안 돕는다고 보면 된다. 그 까닭은 뻔하다. 자기들에게 이익이 안 되기 때문이다.
가난하기 때문에 자살할 이는 극소수다. 이런 극소수를 도와봐야 선거에서 得票에 아무런 이익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보육수당, 양육수당, 아동수당 따위를 받는 이는 많다. 청년도 많다. 따라서 이런 이들을 도우면 선거에서 得票에 유리하다.
어느 정부든 자기 나름대로 계산이 있고 꿍꿍이가 있다. 이는 現 문재인 정부든 前 박근혜 정부든 마찬가지고 마찬가지였다. 옛날에는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 했고 현재에는 정부가 능력이 충분해도 조금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