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다, 함께 제주를 여행하며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그녀가 댓글을 달았을 때 나는 잠깐, 아주 잠깐 당황했었다. 댓글로 많은 대화를 나눌 만큼 좋은 이웃이고 개인적인 이야기가 오갈만큼 신뢰도 형성된 사이였다. 하지만 이웃으로 인연을 맺어온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 한 달? 두 달도 안 된 시기였다. 나이도 직업도 잘 몰랐다. 전공은 뭐고 가족관계는 어떤지, 경제적 여건이나 문화적 관심은 얼마나 되는지. 그런데... 알아야 할까. 그런 것이 인간관계에 그렇게 중요한가. 대답은 노다.
그녀는 나의 그림이 좋다 하고 나는 그녀의 캘리가 좋다. 그녀는 나의 어반 스케치가 나는 그녀의 캘리가 궁금했다. 그녀와 나에겐 공통된 관심사가 있었고 사적으로도 비슷한 휴직 시기, 비슷한 바람, 비슷한 고민이
있었다. 그밖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어쩌면 그게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 나는 흔쾌히 만남을 약속했다. 그 후 호기심과 약간의 염려를 지닌 체 나는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가 제주에 왔다. 늘 그렇듯 처음엔 얼굴도 자세히 보지 않고 허둥대며 두서없는 인사말을 했다. 하필이면 오늘따라 바다가 아름답게 보이는 우리 동네 카페 아프리카는 실내 공사 중이란다. 카페 노아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지금도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 모르겠다. 자리에 앉았고, 그녀의 얼굴을 보았고, 커피를 마셨고, 창 너머 바다를 보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의 이야기... 그녀가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일까. 그녀가 어떻게 했길래 나로 하여금 그 이야기를 꺼내게 한 것일까. 그리고 나는 보았다. 그녀의 눈에 맺힌 그렁그렁한... 그걸 보자 나도 또르르... 그녀가 내게 선물을 주었다. 예쁜 그림과 캘리 글씨가 있는 책으로 열어보니 짧은 편지가 쓰여 있었는데 그녀의 글씨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감동적이었다. 인쇄된 것이 아닌가 하여 몇 번이나 쓰다듬었는지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서 어찌할 줄 모르겠는데 또 하나의 선물은 제주에 오기 전날 밤 그녀가 직접
팠다는 내 이름의 캘리 낙관.
‘유딧’... 나는 이렇게 예쁜 '유딧'이란 글자를 본 적이 없다.
그녀에게 이 낙관이 닳을까봐 못 쓸 것 같다고 말했더니 아끼지 말라 했다. 그리고 내가 그림을 그리고 그걸 찍는 걸 보는 본인이 오히려 감동이란다. 어쩌면 그리 마음도 말도 예쁘고 천사 같은 미소를 지을 수 있는지.
우리는 자리를 옮겼다. 그녀가 내가 최근 포스팅한 함덕 서우봉 해변을 보고 싶다고 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카페 '델 문도'에서 창 밖 바다를 보며 그림을 그렸다
에서 이야기를 하고 그림을 그리느라 우리는 늦은 저녁을 먹었다.
카페 '델 문도' 세상 어딘가 (함덕 서우봉 해변
'모닥식탁' (커리 식당, 함덕 서우봉 해변) 우리 같은, 우리의 관계 같은, 기분 좋은 식당에서 커리를 두 개 주문해 테이블 가운데 놓고 서로의
숟가락을 섞으며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우린 너무나 당연하게 내일의 만남을 약속했다. 그날 밤 나는 들떠서 J에게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말하고도 모자라 자기 직전까지 그녀를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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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도반
(1) 불교에서 나온 용어로 '함께 불도를 수행하는 벗', '도로서 사귄 친구'라는 뜻.
(2) 세속적인 이해 관계를 떠나 함께하는 동지. 공부와 사업을 함께 하는 형제
(3) 도(道)로써 사귄 친구.
"옛 성인이 말하길,
'돕는 벗 세 가지가 있나니, 곧고 너그럽고 앎이 많은 벗'이라 하셨는 바. 동지요 도반이라. 서로 서로 곧고 바르게 깨우치며 너그럽고 알뜰히 인도하여, 진실한 동심 동체의 동지가 되어야 할
것이니라." 도반스: 새로 만든 포스트 제목.
'도반 + 제주도 어반 스케치'의 줄임말로 제주에서 함께 여행 하며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