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친구가 추천해 준 <더 랍스터>를 봤다.
요즘은 일어나자마자 책을 보거나 영화로 하루를 시작한다.
백수의 생활이 무의미하지 않게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니 얼마전 『몰락의 에티카』에서 읽었던
한 글귀가 생각났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느낌의 세계 안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사건일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표명될 수 없는 기적적인 교류.
그러니까 어떤 느낌 안에서 두 존재가 만나는 짧은 순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사로잡고 있는 느낌을 알 수 있고
그 느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느낌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만이 느낌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
사랑은 능력이다.
영화 '더 랍스터'는 『몰락의 에티카』의 이 글귀와
전혀 정반대의 모습으로 '사랑'에 관한
모든 감정과 일련의 과정들을 묘사한다.
모든 것을 단순화 한다.
더 랍스타는 사랑의 과정을 단순하고
난해한 모습으로 보여주지만 그 효과는 아주 탁월하다.
단순화 된 사랑 덕에 사랑의 클리셰는 붕괴되고
사랑의 본질은 극명하게 나타난다.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명확하게 표명되지 않는 기적적인 교류를
아주 단순하고 부자연스러운 형태로 드러낸다.
관계에서 필수적인 '공통분모'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근시시력'으로 귀결시켜버린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챙겨주고 싶은
'호감의 행태'는 토끼고기를 좋아하는 여자에게
가죽을 벗겨 피가 뚝뚝 떨어지는 토끼를
툭 던져놓는 기이한 형태로 보여준다.
'근시시력'과 '토끼고기'로 시작된 관계는 그래도 꽤 의미가 있다.
기계적인 대화와 성관계 뿐인 영화 속 세상에서 두 주인공의 눈빛과 대화
그리고 단 한번의 키스는 진실된 떨림이 있는 유일한 장면이기 때문이기에.
'사랑'의 관계에서 대부분의 감정과 행동은 모호하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설 때가 더 많고,
상처 받을 걸 알면서도 돌진하는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도 부지기수 하다.
절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님에도
믿어보고 싶은 마음도 통제가 안된다.
이런 모호함과 불확실 뿐인 관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믿고 사랑하는 것 뿐이다.
'더 랍스터'의 결말이 가슴이 저릿하게 씁슬한 것은
사랑 고유의 영역인 불확실과 모호함을
아주 철저하게 부숴버렸기 때문이다.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상대의 희생을 시험대에 올리는 것,
그 시험대에 오른지도 모르고
스스로 칼로 자기 눈을 찔러버린 그 가련한 사랑이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