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를 지나치고 마침내 주차장에 도착했다. 쭉 하산을 함께 한 이들과 헤어질 시간이었다.
같이 온 어르신 중 한 분의 나이는 오십 전후로 내 아버지 연배였다. 멋드러진 SUV를 타고 왔더라. 스키용품이든 등산용품이든 이런 차에는 넉넉히 들어갈 것이다. 먼지 하나 쌓이지 않은 운전대와 신경 쓴 차 내 인테리어를 통해 이 사람이 상당한 시간적 여유를 가진 사람임을 유추해볼 수 있었다.
불현듯 아버지가 최근에 해준 이야기 속 한 인물이 떠올랐다. 대학 동기 중 등산에 미쳐 일 때려치고 매주 등산만 다니는 놈이 있단다. 동문회에서 도움 안 되는 인맥 수즌으로 간주된다만 요즘 보면 은근히 부럽노라고 말하셨다.
"퇴직하면 1, 2년은 재밌다만 좀 만 지나면 다시 일하고 싶어 죽을려고 해."
"남자 인생에서 직장에서 성공하는 것만큼 큰 활력소는 없다."
등의 말을 당당히 하시던 게 아버지였는데. 어쩐지 최근에는 좀 변하신 것 같다.
지난 번 암 수술을 받고 불과 30분 뒤 다시 업무 상 전화를 받는 아버지 모습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내가 걷기로 결심한 길 역시 이 사람과 비슷한 부류인데....... 나도 이렇게 살게 될 것인가.
거대한 빌딩 속 큰 집무실에서 비싼 양복을 입고 사람을 부리며 앉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나는 '어떤 힘'을 느꼈다. 같이 등반을 한 이 남자에게도 '힘'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아버지의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어떤 점에서는 더 활력이 넘치기도 한다. 내가 진심으로 추구하는 삶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자 이제 장르 불명의 글을 종결하자. 이제부터는 개인사적인 이야기를 가급적 지양하고, 좀 더 사회적인 글을 쓰고 싶었는데 결국 또 이렇게 끝나는구나. 아쉽다.
다음 글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며.
이만 총총.
- 2011년 2월 11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