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자전적 소설] 7편

admljy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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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신비란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는 데에 있다. 인생에서 어떤 문제를 항구적으로 해결한다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더라. 하나 있다면 그 일에 둔해지는 것 정도일 것이다. 누군가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을 걸며 잔뜩 책을 팔아 먹었지만 살아보면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게 답이다. 살아보면 안다.

어떤 확고한 목표 의식을 가지는 것은 좋은 대학을 들어가거나 어학 등급을 높이는 데에는 좋다. 하지만 인생은 기본적으로 운빨좆망게임이기 때문에, 그 외에 무언가를 반드시 이루어야겠다는 생각이, 자신에게나 남에게나 곱게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거의 없더라. 세상은 자기 능력대로 살아지는 게 아니다.

무조건 해야겠다는 그 생각....... 아마 욕망이나 의지로 불리는 그것들은 정말 현실이 되었을 때는 우병우 마냥 사람을 오만방자하게 만들고, 그렇지 못했을 때는 짓밟힌 자존심과 거절된 소원으로 인한 상처로 인해 이상한 인간으로 사람을 변태시키는 경우가 꽤 있더라. 즉 어느 쪽이든 편협한 인간이 되기 좋은 것은 아닐까. 거기에 기묘한 관념이나 이데올로기까지 스며들어 가면 더 답이 없겠지.

예전 모 법조인 커뮤티니 익명 게시판에 누군가 반기문에 대해 평가하길, 그 사람이 외교관으로서는 만개했지만 서울대 법대는 못 들어갔으니 처음부터 일류는 아니지만 다른 분야에서 성공한 걸로 축하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생각을 하고 살 수 있는지 의아했다. 그런데 그런 부류의 인간들은 찾아보면 꽤 많다. 사고가 단순해야 뭔가 집중해서 쟁취하기 좋으니까.

나는 단순하지 못했다. 대부분 전문직 남성들이 그렇듯 나 역시도 지독하게 형이하학적인 목적 때문에 이 길을 택했지만 늘 생각은 많았다. 어쩌면 복잡하게 쓸 것 없이 그게 패착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자살을 결심한 데에는 분명 금전적인 문제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냥 나도 인생을 줄 세우는 걸 좋아하는 그 부류에 합류해서 열심히 법서나 더 읽었다면 굳이 이런 코너에 몰리지는 않았을지도 모르지.

내가 살아가며 낸 결론은 인생은 별 것 없고 주어진 대로 수용하게 소소한 데 즐거움을 찾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까마득히 옛날이 된 사건으로 사람 하나를 죽여야한다면, 그때 네가 미웠고 또 부러웠다는 걸 넘어 어떤 논리적인 귀결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은 이미 정리해 둔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