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섭은 왜 저런 삶을 살게 되었을까? 그것이 과연 스스로 택한 길일까?>
나는 정리하고 있던 보고서의 마지막 문항을 적었고 그 답을 찾아내기로 했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김웅섭을 찾아가 넌 대체 왜 이 모양으로 살게 되었냐고 윽박지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좀 더 본질적인 접근을 위해 나는 김웅섭의 과거를 탐문하기로 했다. 역사로부터 현대사회를 진단하듯, 우선 나는 김웅섭의 과거를 통해 그의 왜곡된 자아가 어디로부터 뻗어 나오게 되었는지 추적할 생각이었다.
탐문을 위해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유병훈이다. 병훈이는 1, 2학년 내내 김웅섭과 같은 반이었다. 병훈이라면 분명 김웅섭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많을 것이다.
“김웅섭? 야, 말도 마라.”
유병훈은 내가 김웅섭의 과거를 묻자마자 산더미 같은 이야기를 털어내기 시작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 중에 최근 몇 달 간의 기행은 재미있는 가십거리였지만 나에게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었다. 내 관심은 김웅섭이 언제부터 저렇게 되었는지, 그 뿌리를 찾아가는 일이다.
병훈이가 기억하는 김웅섭은 태생부터가 오덕후였다. 김웅섭은 첫 학기부터 학교에 피규어를 들고 오거나, 교과서 표지에 애니메이션 캐릭터 사진을 붙여놓거나, 가방에 미소녀 그림 코팅해 주렁주렁 달고 다녔다. 고등학교 3년 내낸 오덕후였으니 고등학교시절의 행적으로는 단서를 잡을 수가 없다.
‘김웅섭이 언제 오타쿠가 되었는지 알아내야 해. 정상인에서 오타쿠가 되어가는 과도기의 행적을 밝혀야 한다고.’
조사범위는 자연스럽게 그의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나는 병훈이를 통해 김웅섭이 제법 부유한 동네에 위치한 지국중학교를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렵사리 지국중학교 졸업앨범을 구해 김웅섭의 사진을 찾았다. 당시만 해도 김웅섭은 지금만큼 뚱뚱하지 않았다. 적어도 외모에 있어서만큼은 다소 덩치가 클 뿐, 지극히 평범한 소년이었다.
나는 지국 중학교 졸업앨범을 뒤져 졸업생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3학년 7반 문혜수. 양 갈래로 땋은 앳돼 보이는 헤어스타일. 동그랗고 귀여운 얼굴. 내가 아는 그 문혜수였다. 중학교 때 같은 학원을 다니며 가끔 인사나 하고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였다. 나는 당장 핸드폰을 꺼내 혜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혜수, 잘 지내냐?]
그 뒤로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 흘렀다. 아무래도 내가 그동안 혜수에게 많이 소홀하긴 했나보다. 반나절 쯤 지나서야 답장이 왔다.
[오랜만이네^^ 나야 잘 지내지.]
[ㅇㅇ실기 준비 잘 되감?]
혜수는 예체능 계열이었다. 나는 인사치레로 그녀에게 여태껏 어떻게 지내왔는지, 부모님은 무탈하신지, 에어컨 바람이 차서 행여 고뿔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등등 시답잖은 소리를 늘어놓았다.
[뭐야 뜬금없이. 근데 왜 문자 한 거임?]
[너 김웅섭 알지?]
[ㅇㅇ알지. 그 오타쿠?]
나는 그녀에게 지난 반년간 김웅섭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차분히 설명했다. 나는 내심 그녀가 깔깔대며 비웃지나 않을까 걱정했지만 웬걸, 그녀는 지금껏 김웅섭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웃지 않았다. 오히려 내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몇 번인가 ‘아!’ 하며 탄식을 내뱉었다. 그녀는 김웅섭을 안쓰럽고 측은하게 여기고 있었다.
[걔 옛날엔 안 그랬는데.]
[안 그랬다고? 원래 어떤 놈이었는데?]
[옛날에도 딱히 눈에 띄거나 인기 있는 애는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찌질 하지는 않았어. 그렇게 뚱뚱하지도 않았고. 이게 다 그 일 때문이지. 경안 초등학교 투명인간 사건.]
[투명인간 사건?]
[너 모르는구나. 웅섭이는 지방 살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을 왔는데 그때 나랑 같은 반이었거든. 웅섭이가 원래 사투리가 심해서 놀림을 받긴 했지만...... 그러다가 그 사건이 터진 거야.]
[그 투명인간 사건이란 게 대체 뭐야?]
[새 학기에 짝꿍을 정하는데 김웅섭은 그 반에서 제일 공부 잘하고 예쁜 여자애랑 짝이 됐어. 근데 그 여자애가 꽤나 악질이었던 거지.]
혜수의 말인즉 다음과 같았다. 그 예쁘장한 악질 여자애는 둘도 없는 말괄량이였다고 한다. 자리 배정을 마친 첫 날, 그 여자애는 김웅섭에게 사투리를 쓰지 못하게 했다. 교양 없고 거북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김웅섭은 그 정도 말에 상처받을 만큼 예민한 아이는 아니었다. 사투리가 하루아침에 고쳐지는 것도 아니니까. 순진한 김웅섭은 사투리를 고치는 대신 여자애와 친해지기로 마음먹었다. 호감을 사기 위해 일부러 살갑게 굴었던 것이다.
그럴수록 여자애는 김웅섭을 비웃고 조롱했다. 반에서 제법 인기가 있던 그 여자애는 새학기 반장이 되었고 어느새 반 아이들은 여자애를 따르며 다 같이 김웅섭을 놀리기 시작했다. 사소한 장난은 괴롭힘이 되었고 날이 갈수록 걷잡을 수 없었다. 선생님의 무관심 속에 구타와 폭언이 이어졌다.
[웅섭이는 애들이 괴롭혀도 별 내색을 하지 않았어. 어쩌면 인내심이 대단한 아이였는지도 몰라. 그런데 김웅섭의 무반응이 오히려 여자애를 자극했던 거야. 반장이었던 여자애는 아이들에게 게임을 제안했어. 그게 바로 투명인간 게임이야. 가위바위보로 술래를 뽑아 반에서 없는 사람 취급을 하는 놀이.
게임은 나름 공정했어.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이 반나절 동안 술래가 되고, 자기 차례가 끝나면 새로운 술래를 뽑으면 됐으니까. 술래가 되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건 생각했던 것 보다 괴롭고 짜증나는 일이었고 언젠가부터 아이들은 더 이상 가위바위보를 하지 않기로 했어.]
[가위바위보로 술래를 정할 필요 없이 따돌림 당하던 김웅섭을 투명인간으로 만들기로 한 거구나.]
[맞아. 그 날 이후 1년 동안 우리 반에서 김웅섭은 없는 사람이었어. 대화에도 안 껴주고, 급식도 안 퍼주고, 집에 갈 때 웅섭이가 교실에 남아있는 걸 알면서도 문을 잠가버렸지. 그땐 그게 잘못인 줄 몰랐어. 사실 나, 그때도 웅섭이랑 같은 반이었거든.]
[그 여자애는 혹시 어떻게 사는지 알아?]
[중학교 때부터 연락 끊겼어. 지금 아마 너네 학교 다닐걸?]
[우리 학교라고? 우리 학교에 그렇게 예쁜 애 없는데?]
[얼굴은 어떻게 변했는지 몰라도 공부는 여전히 잘한다던데. 박하나 몰라? 너네 학교 전교권이잖아.]
혜수의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하나? 박하나라고? 그 교활하고 잔인한 악마가, 내가 아는 그 박하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