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병 때 써 본 자기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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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결벽, 하지만 툭하면 뭔가를 잃어버리는 빈틈투성이 인물.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여 열성적으로 일에 매달리지만 그 열정이 빛을 발하는 곳은 많지 않다. 지독한 방향치고 기계치이며, 못하는 일에는 손톱만큼의 재능도 없다.

4살 때 일도 어제 일처럼 줄줄 꿰지만 1분 전 들은 길 안내는 바로 까먹는 특이한 기억력의 소유자. 알고 있는 것은 대부분 한 번 보고 기억하는 것들이며 10대 이후에는 거의 책을 읽지 않았다. 관심 없는 분야는 두뇌가 저장을 거부하기 때문에 집중해서 보아도 기억을 잘 못한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신발끈을 맬 수 있었다.

첫 인상과 상당히 다른 인물. 좋게 말해 남자답다는 평가를 받는 외모와 다르게 피아노 연주와 글 쓰는 것을 취미로 한다. 운동은 오래 살고 싶어서 죽지 못해 해왔을 뿐 즐긴 적은 거의 없다.

평소 언행이나 얼굴에서 묻어나는 진지함과 다르게 의외로 사회에 무관심하여 지금껏 한번도 투표한 적이 없다. 역사학을 가장 좋아하지만 북경 연수 시절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자금성을 가지 않았다. 자기 신념을 똑바로 지키며 투쟁하는 것보다 적당히 타협하며 편하게 사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 맹신하고 있다.

특유의 장난기와 자신감이 배인 달변가지만 가볍다는 평과 딱딱한 화법과 무거운 표정으로 대화하기 부담스럽다는 상반된 평을 받는다.

역사를 광적으로 좋아한다. 당면한 문제를 분석하여 처리하고, 장기적인 목표를 수립하여 점진적으로 성취하며 또한 예기치 못했던 새로운 사건을 받아들여 대응하는 방식은 사가(史家)가 한 국가에서 발생하는 잡다한 사건들을 정리하여 자신만의 일관된 시각으로 한 권의 역사책을 집필하는 과정과 동일하다. 그렇기에 한 개인의 삶도 일국(一國)의 역사처럼 흥미로울 수 있다.

어린 시절 사서(史書)를 섭렵해나가며 위인들의 삶과 기록을 자아의 일부로 만들었다. 10대가 끝나갈 무렵까지, 언젠간 자신도 그들과 같은 반열에 서게 될 거라 믿으며 살았다. 그들의 어린 시절과 자신을 비교하며 하루를 다 보낸 적도 있다.

그 우스꽝스러운 10대는 여전히 남아있다. 바보 같은 그림자 놀이에서 벗어나 현실을 발견했을 때, 자신의 10대가 실패했음을 자인할 수 밖에 없었다. 죽을만큼 그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었고, 과거를 모두 부정하고 새로운 일에만 몰두한 적도 있다. 하지만 주요 관심사는 늘 자기 자신 뿐이었기에 성과를 안을 수 없었다. 그게 자기 세계에 빠진 사람의 한계다.

오늘도 보잘 것 없는 자신의 모습을 언제나처럼 마주한다. 이제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고 믿고 싶을 뿐.

예전만큼의 열정은 없다. 대신 좀 더 뒤에서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여전히 좌절할 일 투성이지만, 또 꾸준히 계획하고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몽환적 확신이 없어도 내적 치열함이 있다.

앞으로 무엇을 이룰지 시간이 증명할 것이다. 그 과정이 자신을 무한히 전율케 한다는 것만을 말할 수 있을뿐. 망국(亡國)의 역사라도 결말을 모른다면 흥미롭긴 매한가지다.

  • 무려 12년 전이네요. 군대 선임에게 꾸지람을 듣고 저런 걸 쓰다니, 역시 답 없는 나르시스트였습니다. 좀 더 자기를 벗어나서 생각할 줄 알았다면 괜찮았을텐데요- 그치만 어쩐지 스팀잇에는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았던 분들이 많지 않았을까, 혹 재밌게 읽으시는 분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한 번 올려봤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자기 자아가 강하다는 의미, 경우에 따라서는 약간 과대망상가적 기질이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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