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복수가 끝나자 샤를 대제의 분노는 어느덧 옅어지고 말았다. 그에게 대적하던 이교도들은 그에게 모두 무릎 꿇고 세례를 받았지만 대제는 날이 갈수록 침울해졌다.
큰 방에 놓인 옥좌에 앉아 잠들어 있던 대제의 꿈에 하느님이 보낸 성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났다.
"샤를, 네게 급히 주어진 임무가 있다. 신실한 하느님의 종 비비앙의 영지가 야만스런 이교도들에게 포위되었다. 고통 받는 기독교인들이 네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중이다."
잠에서 깬 샤를 대제는 주름 가득한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싸움으로만 인생을 지새우는가?"
대제는 자신의 새하얀 수염을 매만지며 탄식했다. 그의 두 눈에 물기가 고였다.
『롤랑의 노래, 마지막 챕터』
어쩌면 나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남들은 별 이상하게 써내도 멀쩡히 정상으로 나오는 신검 정신검사 항목에서, 어머니가 차려 준 아침밥 잘 먹고 테스트를 수행한 나는 비정상을 받았다.
정신병자는 들어온 일을 제대로 소화하는 기능이 없다. 조신하게 서류 상으로만 또라이였던 나와 달리, 훈련소에 들어오자마자 미친 놈으로 찍혔던 어떤 친구가 있다. 그 녀석은 훈련 중 누구와 어깨가 부딪치면 그걸 마음 속에 담아 두고 밤잠을 설쳤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 어깨를 부딪힌 사람에게 달려들어 주먹질을 했다. 맞은 사람은 왜 맞았는지 영문도 모르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사람들은 왜 내가 문제를 껴안고 사는지를 잘 모른다.
내 뇌에는 망각하는 기능이 없어서 벽 안으로 들어온 문제는 고스란히 안고만 살아야 한다. 그러다보니 해야할 일이 많다. 탐욕도, 투쟁심도, 때로는 살벌한 무관심이나 이기심도, 실은 그냥 다 덮어놓고 살 수가 없는 위인이 살아보려다 보니 어떻게든 만들어낸 수단들이다.
살아보니 평범하고 여유있는 게 최고라고 그러던 형에게, 나는 한 번 사는 인생 그렇게 살기 싫다고 그랬지만 그렇게 살기 싫은 게 아니라 그렇게 살 수가 없는 거다.
몇 년 전 일기장에, 꾸역꾸역 강제로 받아 처 먹는 교훈이 너무 많아서 그만 좀 먹었으면 좋겠다고 쓴 적이 있는데 요즘이 딱 그 지경이다. 매 하루가 전쟁. 다 해결되고 그들은 영영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원래 영화에나 나오는 거다.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으면 저 문제가 다시 들고 일어나고, 저 문제를 해결하러 가면 다시 이 문제가 올라온다. 그래서 매번 싸우러 나가야 한다. 말 그대로 상재전장(常在戰場).
근데 이 전쟁이라는 게, 빠바밤 웅장한 음악을 들으며 링에서 멋지게 싸우는 것과는 원래 거리가 멀다. 매번 스트레스에, 결정되지 않은 일에 초조해하고, 고심 끝에 악수를 두고 이 과정 속에 감정적 자극으로 심신이 나가리가 난다. 호쾌한 전격전 따위는 없고, 무더위 속에 행군, 삽질, 행군, 삽질 반복. 이러다 총 한 번 못 쏴보고 콜레라나 걸려 설사하다 죽을 기세. 생각을 그만두고 잠이나 자고 싶은데, 나이는 속절 없이 먹고 있어서 초조하기 그지 없다.
샤를 대제가 만든 거대한 프랑크 왕국도 말년에는 천연두랑 바이킹 때문에 걸레짝이 됐지. 일평생 머리를 쓴 결과물이 박살나는 걸 본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게다가 샤를 대제는 그래도 제국의 왕이었지만 내가 가진 거라고는 분수에 맞지 않는 대형차와 좁은 원룸 하나 밖에 없는데 도대체 뭘 위해서 매번 머리를 싸매며 미래를 기약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해결해야 할 문제 투성이다. 머리가 아파 죽겠고, 어떻게 해야할지, 도대체 올해 안에 몇 개라도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차피 메커니즘이 바뀔 나이는 아니고 자살할 용기도 없으니 그냥 이대로 살다가 빨리 늙어 자연사나 하고 싶다. 말은 이렇게 썼지만 겁이 많아서 안 아프게 죽고 싶으니까 데헷.
그나마 잘 때 따뜻한 이불은 덮고 하루에 8시간은 잘 수 있어서 다행이다.
잠이나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