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오더쿠스] 1. 신인류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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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운동장을 돌고 있었다. 햇볕에 그을린 맨다리로 벌써 몇 바퀴째다. 태양이 나무한그루 없는 운동장을 통째로 녹여버릴 것만 같다. 눈이 부셔서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땀방울은 미간의 굴곡을 따라 눈으로 흘러든다. 손등으로 눈을 훔쳐보지만 땀에 젖은 손으로 땀을 닦는 건 소용이 없다.

그때 신기루 같은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운동장 구석에서 살집이 통통한 어떤 녀석이 집단 린치를 당하고 있었다. 양팔로 곱슬머리를 감싼 채 겁에 질린 아르마딜로처럼 몸을 돌돌 만 채로. 때리고 있는 녀석들이 제법 낯이 익었다. 대부분 내가 아는 애들이었고 몇몇은 나와 친했다. 나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 뚱뚱보를 때리고 있는 녀석들은 결코 힘이 세거나 폭력적인 애들이 아니다. 가해자들은 제법 얌전한 축에 드는 모범생이었다.

나는 저 멀리 뒷짐을 진채로 어슬렁대는 체육 교사를 흘끔 바라보았다. 나는 교사에게 이 상황을 보고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난 일부러 나서서 사건에 휘말릴 만큼 다정한 사람이 못된다. 더군다나 씩씩대며 그 뚱보를 때리고 있는 놈들 중 하나는 나와 제법 친한 유병훈이다. 짧은 고민 끝에 나는 운동장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일단 사태를 관망하기로 했다.

남은 한 바퀴를 마저 돌고 돌아왔을 때 상황은 이미 끝난 뒤였다. 뚱보를 때리던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측은한 마음으로 바닥에 웅크린 뚱보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기가 죽어 훌쩍대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웬걸. 매 맞던 녀석은 자신이 무슨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양 가슴을 쫙 편 채 히죽대고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녀석은 나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갑자기 어깨를 쫙 폈다. 그는 희극적일만큼 당당한 걸음걸이로 내 곁을 지나쳐갔다. 마치 나를 의식하며 무언가를 뽐내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이 상황에서 도대체 무엇을 뽐낼 수 있단 말인가?

‘이놈은 대체 뭐지?’

나는 호기심어린 눈으로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뚱보 녀석은 어디를 가나 눈에 띌만한 외모였다.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은 돼지털처럼 짧고 뻣뻣했고, 눈썹은 소년만화 열혈캐릭터처럼 두꺼운 반면 눈구멍은 흰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두툼하고 짧은 코와 통통한 입술은 남에게 호감을 주기에 충분한 역량이 있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얄궂은 표정이 전체적인 인상을 괴팍하게 만들고 있었다. 얼굴에 듬성듬성 피어있는 여드름도 그렇고.

그를 다시 만난 건 그날 저녁, 새로 개강한 동네 보습 학원 종합반에서였다. 30년도 더 된 낡은 상가건물에 세 들어있는 이 학원은 동네에선 제법 유명했다. 몇 개 되지도 않는 강의실엔 매시간 아이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히 들어앉아 수업을 들었다.

조금 늦게 도착한 나는 강의실 정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새하얀 형광등 불빛이 누렇게 바랜 책상 위의 칼자국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세게 틀어놓은 에어컨에선 퀴퀴한 곰팡내가 났다. 낡은 건물의 이미지와 썩 잘 어울리는 냄새덕분에 보습학원은 묘한 면학분위기를 풍겼다. 이런 공간에서 영업해도 장사가 되는 업종은 학원이랑 스크린경마 정도일 것이다.

이윽고 독사처럼 찢어진 눈을 가진 중년의 학원 강사가 교단 위로 올라섰다. 우리는 거의 30분 동안이나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강사의 장광설을 들어야했다. 서울대학교를 나왔다는 동네 보습 학원 강사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금방 지루함을 느꼈다. 기지개나 켤 겸 앉은 자리에서 상체를 오른쪽으로 틀었다. 그리고 강의실 뒷자리에 앉아있는 그 놈을 보았다. 낮에 운동장에서 몰매를 맞던 그 놈을. 학원 강사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책상에 팔을 괴고 앉은 그의 모습에선 고등학생답지 않은 여유가 묻어나왔다. 마치 교실 맨 뒷자리에서 팔짱끼고 앉아 아이들 웅변대회를 구경하는 부모님처럼, 자신은 학원 강사가 말하는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무언가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의 곱슬머리와 작게 찢어진 눈, 후덕한 몸매가 마치 어느 고찰의 황금 불상처럼 빛나는 것 같았다.

그 놈은 학원 선생이 강의를 시작하고 30분이 지나도록 노트조차 펴지 않은 채 도도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만화책을 보고 있다거나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다면 차라리 이해가 갈 텐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칠판만 바라보고 있다니!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전설적인 수학자 폰 노이만의 머릿속에는 1헥타르 면적의 가상 칠판이 있어서 그가 천장만 올려다보고 있으면 아무리 복잡한 암산도 척척 해내곤 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어쩌면 이 녀석도 그런 부류의 천재가 아닐까?

‘그렇다면 굳이 학원을 올 필요도 없을 텐데.’

그러고 보니 낮에 봤던 기이한 광경의 실마리가 잡히는 것 같았다. 공부 잘하고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종종 이유 없이 매를 맞는다. 어쩌면 저 녀석도 공부 좀 한다고 거들먹거리다 따돌림을 당한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 뚱뚱한 놈을 다시 보았다. 교복차림인 걸 보니 학교 마치고 바로 학원에 온 모양이었다. 가슴에 달린 하얀 명찰이 눈에 띄었다.

‘김웅섭...... 처음 듣는 이름인데?’

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는 녀석들 중에 김웅섭이라는 이름을 들은 기억은 없다. 그러나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는 법. 어쩌면 김웅섭도 수능에 집중하기 위해 재야에 몸을 숨긴 은둔고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학원 강사는 쪽지시험을 쳤다. 독사눈의 학원 선생은 우선 학생들의 실력을 평가해보고 싶어 하는 듯 했다. 그게 아니라면 첫날이라 강의 준비를 많이 해오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나는 학원 강사들의 생리를 제법 잘 알고 있다. 고시를 오래 하다가 결국 학원 강사가 된 작은삼촌 덕분이다. 작은삼촌의 사람됨을 잘 아는 나는 그다지 학원 선생님들을 신뢰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다.

독사눈의 학원 선생은 무작위로 자리를 섞었다. 그리고 우연처럼 내 옆에는 김웅섭이 앉게 되었다. 공부 잘 하는 녀석의 옆 자리라니 나쁘지 않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들과 어울리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시험지 첫 장을 펼쳐보니 맙소사, 엄청나게 어렵다. 나는 금방 눈앞이 캄캄해졌다. 미리 짚고 넘어 가지만 나는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평균 점수만을 놓고 봤을 때의 이야기고, 수학실력은 과장 조금 보태서 백지라고 할 만큼 엉망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수학과목에서 80점 이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시험 끝나고 점수를 공개하겠다고 했는데 이를 어쩐담.’

나는 부지런히 펜대를 굴리며 어떤 문제부터 손을 대야할지 한참동안 고민했다. 고민한다고 모르는 문제의 답이 나오는 건 아니란 게 진짜 문제였다. 그때 옆자리의 김웅섭을 보았다. 김웅섭은 태연한 얼굴로 쓱싹쓱싹 문제를 풀어가고 있었다. 그의 시험지 위에는 여백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숫자들이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그렇게 거침없이 한 문제 한 문제를 풀어가고 있는 김웅섭을 보며 나는 직감했다. 저건 분명 백점짜리 시험지임에 틀림없다고. 나는 슬그머니 눈을 옆으로 돌려 그가 적은 답을 조심스레 따라 적기 시작했다. 뒤의 몇 문제는 뒷짐 지고 강의실을 순찰하던 강사의 시선이 두려워 직접 풀었지만 나는 대부분 문제의 답을 김웅섭과 동일하게 마킹했다. 김웅섭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주관식 다섯 문제를 다 풀었고 나는 그것마저 그대로 따라 적었다.

독사눈의 학원 강사는 채점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왔다. 강사는 1등부터 3등까지를 호명해 강단으로 불러냈다. 1등은 예쁘장하게 생긴 여학생이었다. 강사는 만점자가 나왔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정작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표정했다. 겸손한 태도 덕에 도도함이 더욱 돋보였다. 나는 어쩐지 자괴감이 들었다. 성적 우수자들을 치하하던 강사가 이번에는 몽둥이를 집어 들고 다시 교단에 올라섰다.

“여러분. 아까 내가 했던 말 기억하나? 행복은 성적순이라고 말이야. 그런데 여기 여러분들 중에 앞으로 대단히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될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점수가 너무 낮아서 부득이하게 이름을 불러야겠다. 지금은 좀 망신스럽겠지만 앞으로 너희들이 겪게 될 세상은 이보다 몇 갑절은 더 가혹하고 치욕적일 거다.”

강의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냉랭해졌다. 얼음장 같은 침묵이 목덜미를 덮쳤다. 낡은 에어컨이 매서운 겨울바람처럼 웅웅거렸다. 독사눈의 강사는 침울하게 고개 숙인 학원생들을 쭉 둘러보더니 생각지도 못했던 이름을 불렀다.

“박규.”

그렇다. 그건 내 이름이다. 나는 혹시나 동명이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희망에 몇 번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고개만 숙인 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박규! 박규 학생 벌써 집으로 도망갔나! 박규!”

세 번이나 이름이 불린 탓에 당황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네! 여기 있습니다!”

“야 이놈아. 25점이 뭐야? 거기다가 주관식은 풀지도 않았네? 이래가지고 대학 가겠어?”

강사의 목소리에는 진심어린 경멸과 혐오가 스며있었다. 나는 강사의 따가운 시선과 나를 향한 아이들의 동정어린 눈빛을 한 몸에 받으며 서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서글펐다. 하지만 치밀어 오르는 의구심은 그 모든 감정을 뒤덮고도 남았다.

‘나는 분명히 김웅섭의 답안지를 베꼈는데!’

학원 강사는 아까보다 더 큰 목소리로 다음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김웅섭!”

“네!”

김웅섭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상체를 뒤로 기대고 팔짱을 낀 모습이 아주 당당해보였다.

“넌 15점이 뭐냐? 그냥 한 번호로 밀지 그랬어?”

그때,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김웅섭이 일성대갈 했다.

“이런 시험은 교육의 본질에 어긋납니다.”

김웅섭의 음색은 맑고 청아했으며 발성은 우렁차기 이를 데 없었다. 당당한 그의 모습은 마치 오나라 중신들의 힐난을 여유롭게 받아넘기는 제갈량의 환생인 것 같았다. 강사는 김웅섭의 태도가 자신의 예상과 다르다는 점에 적잖이 당황한 듯 했다. 작고 찢어진 독사눈이 제법 동그래져 있었다.

“교육의, 본질?”

한참동안 김웅섭의 말을 되뇌이던 학원 강사는 다시금 매섭게 눈을 치켜뜨며 소리를 질렀다.

“야 이놈 새끼야! 15점 맞은 네가 교육에 대해 뭘 알아?”

“교육제도를 비판하기 위해 교육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선생님은 정치가보다 정치를 잘해야만 정치비판을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미국에서는 결과보다 학생들이 답을 찾아 가는 과정을 더 중시합니다. 선생님께서도 보지 않았습니까? 답을 찾는 과정에서 이룬 제 학문적 성취가 답안지에 고스란히 적혀있는 것을요. 물론 점수는 낮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강사가 벙 쪄있는 틈을 타 김웅섭은 강의실의 학생들을 둘러보며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배우겠다는 자세와 열정! 그 열정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될 수밖에 없는 창의성은 제가 제출한 답안지에 그대로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오늘 당장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저에게 하등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요한 학생들 틈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내 정신을 차린 학원 강사는 몽둥이를 쥐고 교단을 걸어 내려와 성큼성큼 김웅섭과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딜 봐도 김웅섭의 열변에 감명 받은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야 이 개새끼야. 등비수열을 풀라고 했더니 여백에다 깨알같이 숫자 늘어놓고 있는 새끼가 무슨 창의성이야? 나와 이 새끼야!”

잔뜩 겁먹은 나와는 달리 김웅섭은 당당하게 강사를 향해 걸어갔다. 강사는 김웅섭이 사정권에 들어오자마자 단단히 알이 박힌 주먹으로 정수리를 쥐어박았다.

이 학원은 여전히 아이들을 거칠게 다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부모님이 굳이 이 학원을 택하고 기꺼이 학원비를 주신 것도 그 때문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학생을 때린다는 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학부모들도 그걸 잘 알기 때문에 이 독사눈의 막장 강사에게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아까 내가 베낀 김웅섭의 답안지가 모조리 틀렸다는 사실과, 미처 베끼지 못해 직접 푼 다섯 문제 덕분에 김웅섭보다 10점을 더 받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찰나, 학원 강사가 고함을 질렀다.

“김웅섭, 박규! 너희 둘은 수업 끝나고 남아. 내가 너희들 정신을 대한민국 입시에 맞게 뜯어고쳐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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