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 구락부] 설악산 종주 (6)

admljy19(62)
Published in
#kr
Words
219
Reading
1 min
Listen
Play
9y

시간이 멈추긴 개뿔. 나는 옆 사람 잠꼬대에 기겁하여 잠에서 깨었다.

좁디 좁은 대피소, 남자들 발 냄새, 코 고는 소리. 거기다 난방이 안되는지 추운 날씨. 현실은 시궁창인데 꿈이나 꾸어봤자지.

어제 밤 그녀는 내게 전화를 하겠노라고 말했다. 하지만 산장에서는 8시에는 취침을 해야 한다. 본의 아니게 한번쯤 나도 튕겨볼 수 있을까, 핸드폰을 켰는데 그녀의 부재중 전화가 기록에 뜨면 무척 좋을 것 같았다. 난 카드를 뒤짚는 일을 잠깐만 늦추고 싶었다. 연락이 와있을 것 같은 막연한 확신이 들었고, 그 기대감을 좀 더 오래 동안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단 아침 식사를 위해 300미터를 걸어가 물을 떠왔다. 체인젠을 안한 탓에 몇번이고 미끌어질 뻔했다만 적잖이 신이 나 있는 상태라 신경 쓰지 않았다. 아침을 다 먹은 후 그제야 나는 천천히 핸드폰을 켜보았다.

부재중 전화 5통. 으흐흐, 여기 하나 있겠구나.

.......

친구가 한 통, 집에서 두 통, 두 통은 사채회사 번호.

머리 속이 새하얘졌다.

어제까지는 여자 쪽에서 튕긴다고 간주해볼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만 이제는 결과물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거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은 한 가지 더. 친구 D군이 대설특보에도 불구하고 공룡능선을 가겠다고 선언한 일이다. 이미 산장 안에 있던 다른 등산인들과 의기 투합하여 한국 등산 코스 중 가장 난이도가 높다는 공룡능선을 눈까지 맞아가며 가게 된 셈이었다. 원래 대설 특보에 가는 것 자체가 불법이고...... 종종 사고로 죽는 사람도 생긴다는데...... 아이고...... 그렇다고 나 혼자 안 가겠다고 말할 수도 없고. 기약 없이 산장 안에서 뒹굴거릴 수도 없고.

별 수 없이 따라나섰다.

  • 2011년 2월 10일 쓰다